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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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2020.2.18.~​2020.9.2.)
국민의힘
(2020.9.2.~​2022.5.9.)
더불어민주당
(2022.5.10.~​2025.4.4.)
더불어민주당
(2022.5.10.~​2025.4.4.)
국민의힘
(2025.6.4.~​2026.6.3.)
(현재)
국민의힘
People Power Party (PPP)
國民의힘
깨끗하게! 유능하게!
지역이 올라갈 시간
고유번호
116-82-03628 (민주정의당)
등록번호
제214호
등록연월일
당명 변경
2020년 9월 2일 (국민의힘) (5주년)
2026년 6월 3일 이후 (예정)[1]
선행 조직
미래통합당
(당명 변경)
통합한 정당
,
시대전환
(흡수합당)
(비례위성정당)
장동혁 / 재선 (21·22대)
송언석 / 3선 (20-22대)
정희용 / 재선 (21·22대)
정점식 / 3선 (20-22대)
106석[3] / 석 (37.06%)
11석[4] / 17석 (64.71%)
127석[5] / 226석 (56.19%)
489석[6] / 872석 (56.08%)
1,432석[7] / 2,988석 (47.93%)
당 색
붉은색 (#E61E2B)
파란색 (#00B5E2)
흰색 (#FFFFFF)
중앙당후원회[8] (대표자: 안응수, 장동석)
4,439,796명 (2024년 기준)[자료]
1,029,735명 (2026년 3월 11일 기준)[12]
5,554,607,580원 (2026년 1분기)
24,013,674,406원 (2024년 기준)[자료]
재산총액
141,915,625,847원[14] (2024년 기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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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개요0.2. 기원0.3. 현황0.4. 역사0.5. 성향0.6. 정강·정책
0.6.1. 정강0.6.2. 10대 신념0.6.3. 기본 정책
0.7. 상징
0.7.1. 당명0.7.2. 당색 및 로고0.7.3. 슬로건
0.7.3.1. 역대 슬로건
0.7.4. 당가
0.7.4.1. 지금 다시 하나되어 (2021 ~ 2022)0.7.4.2. 다시 일어나 승리하리라 (2022 ~ 2024)0.7.4.3. 국민의힘 응원가 (2024 ~ 2026)0.7.4.4.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2026)
0.8. 당사0.9. 소속 인물
0.9.1. 국회의원
0.9.1.1. 4선 이상 다선 국회의원
0.9.2. 광역자치단체장0.9.3. 기초자치단체장
0.9.3.1. 3선 기초자치단체장
0.9.4. 광역의회의원0.9.5. 기초의회의원
0.10. 계파
1. 개요2. 목록
2.1. 제1차 전당대회2.2. 제2차 전당대회2.3. 제3차 전당대회2.4. 제4차 전당대회2.5. 제5차 전당대회2.6. 제6차 전당대회2.7. 역대 지도부2.8. 출신 대통령2.9. 상임고문단2.10. 조직도2.11. 청년의힘2.12. 개요2.13. 상세
2.13.1. 출범 전
2.14. 정식 출범2.15. 현황2.16. 논란 및 사건사고
2.16.1. 무개념 포스터 논란
2.17. 지지 기반2.18. 경향2.19. 지역별2.20. 세대별
2.20.1. 1987년생 이하
2.20.1.1. 남성2.20.1.2. 여성
2.20.2. 1970년생 ~ 1986년생2.20.3. 1960년대생2.20.4.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
2.21. 직업별2.22. 집단별2.23. 도농별2.24. 선거에서의 유불리
2.24.1. 이점
2.24.1.1. 부울경의 지속되는 경합 우세2.24.1.2. 30대 이하 남성의 보수화2.24.1.3. 노년층의 지지
2.24.2. 복합적
2.24.2.1. 서울특별시의 경합 열세화2.24.2.2. 민주당계 주요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2.24.2.3. 아직은 통제불능인 부동산
2.24.3. 약점
2.24.3.1. 50대 이하에서의 패배2.24.3.2. 경인권과 충청권 대도시에서의 약세2.24.3.3. 2번의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한 과거청산 문제
2.25. 다른 정당과의 관계2.26. 개혁신당2.27. 진보당2.28. 사회민주당2.29. 기본소득당2.30. 조국혁신당2.31. 민생당, 민주평화당2.32. 정의당2.33. 녹색당, 노동당2.34. 미래당2.35. 공화당2.36. 새미래민주당2.37. 극우정당2.38. 비판 및 논란2.39. 역대 선거2.40. 기타2.41. 관련 문서2.42. 지지율2.43. 둘러보기

0.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자 보수정당.

2020년 초,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등의 보수정당들이 신설 합당으로 창당한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의 전신이다.[19][20]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주도한 당 쇄신정책의 일환으로 2020년 9월 2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하였고, 이후 2022년 5월 3일 안철수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흡수합당하였고, 2023년 11월 9일에는 조정훈 의원이 대표였던 시대전환을 흡수합당하였다.

0.2. 기원[편집]

국민의힘에서는 한나라당을 당의 공식적인 기원으로 보고 있다.[21] 국민의힘이 한나라당을 공식적인 기원으로 보는 이유는 현대적 보수정당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과거의 부정적인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정당의 지속성과 통일성을 유지하고, 젊은 세대와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1963년에 창당한 민주공화당과 1981년 창당한 민주정의당에서부터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이 민주정의당의 고유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점과 법원의 판결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22][23]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의 여러 보수정당의 계보를 잇고 있다. 당장 당사에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세 대통령의 초상을 걸어놓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기리고 있으며 보수정당의 근본으로 본다. 이 세 대통령을 기리는 이유는 건국을 상징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산업화를 상징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화를 상징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배열하여 국민의힘이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 했으며 국민의힘은 이를 계승하는 정당으로서 이 정통성을 가졌음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공화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자유당을 거쳐 오늘날 국민의힘으로 이어졌다는 역사관을 내세운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은 오늘날 국민의힘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24], 이승만 전 대통령자유당은 사실 그렇지 않다. 자유당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으며, 이후 자유당 출신 인사들은 다양한 정당들로 뿔뿔히 흩어졌다. 민주공화당이 자유당을 계승한 정당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한 소수 인사들을 제외하면 자유당 출신 세력은 민주당 출신 세력과 함께 군부에 반대하는 야권에 참여했다.[25][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민주공화당은 강력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現 국민의힘의 기틀과 제도, 특성을 정립시켰다.[27] 1980년 신군부의 등장으로 민주공화당은 해체되었고, 이후 민주공화당 세력은 한국국민당신민주공화당으로[28]이어졌다. 국민의힘이 21세기 들어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정신적인 계승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했다 보니 전혀 상관 없는 정당임에도 자유당이 전신 정당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29]

1981년에는 전두환민주정의당이 창당되었다. 전두환은 독재 정권의 연장선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기가 모셨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등을 비민주적이었다고 비판하며 선을 그었고, 따라서 민주공화당을 계승하는 정당이 아닌 새로운 정당을 만든 것이다. 그 후 민주화가 이뤄지고, 민주정의당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형성된 여소야대 정국을 타파하고자 1990년 3당 합당을 단행하였다. 이는 노태우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정의당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 김종필을 주축으로 하는 신민주공화당이 통합하여 민주자유당이 된 것이다. 이후 민주자유당은 당내 계파 중 민정계가 축출되는 과정에서 신한국당으로 개편되며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배출, 1997년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하며 한국의 현대 보수 정당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고, 2020년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이 되었다.

이렇게 역사를 보면 국민의힘 당사에 존영이 걸려 있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은 정치적으로 같은 진영이기는 하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계보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공격하는 관계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원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군사정변을 결심했던 사람이고, 자연히 집권 후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부정적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적인 김구 임시정부 주석에 대한 재조명을 지시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과거 자유당 의원이었기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 우호적이었으나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계기로 탈당하고 비판 입장으로 변했다.[30] 세 사람을 한 데 모아놓은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얼마나 복잡한 역사 혹은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이승만 시절까지 포함해서도 더불어민주당 계열보다 더 많은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사망 시점까지 대통령 예우를 제공받은 대통령은 김영삼 혼자였다. 국민의힘 계열 대통령 중 마지막으로 정상 퇴임한 대통령은 김영삼 바로 다음인 이명박이었다.

0.3. 현황[편집]

2023년 3월 8일,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55.10%라는 사상 최고치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앞으로 2년 동안 국민의힘을 이끌어갈 신임 당대표에 김기현 후보가 52.93%라는 과반이 넘는 지지율로 당선되었고, 최고위원에는 김재원 후보가 17.55%, 김병민 후보가 16.1%, 조수진 후보가 13.18%, 태영호 후보가 13.11%, 청년 최고위원에는 장예찬 후보가 55.16%의 지지를 받아 당내 핵심 지지층인 친윤계 전원이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불과 9개월만인 2023년 12월 13일, 김기현 대표가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해 당대표직을 사퇴하였다. 김기현 대표의 사퇴에 따라 윤재옥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직을 맡게 됐다.

2023년 12월 26일, 한동훈 비대위가 국민의힘의 4번째 비대위로 출범하였다. 하지만 2024년 4월 10일에 펼쳐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한동훈 비대위 역시 100여일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고, 다시금 윤재옥 원내대표의 대표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지게 되었다. 이후 황우여 비대위가 출범하였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위한 황우여 비대위가 들어선 뒤, 2024년 7월 23일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가 진행되었다. 앞으로 2년, 2026년 7월까지 당을 이끌어갈 신임 당대표에 한동훈 후보가 62.84%라는 득표율로 과반 압승 당선되었고, 최고위원에는 장동혁 후보가 20.61%, 김재원 후보가 18.70%, 인요한 후보가 17.46%로 당선되었고, 여성 몫 최고위원으로 김민전 후보가 15.09% 당선되었다. 그리고 청년최고위원으로는 진종오 후보가 48.34%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친윤계와 친한계 지도부가 균형 있게 지도부에 입성하였다.

2024년 12월, 12.3 내란 사태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큰 위기에 처했다.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으나, 이 과정에서 탄핵에 찬성 의사를 표한 한동훈 대표에 대한 반발이 극심해졌고, 탄핵소추안 통과 직후 한동훈 지도부는 붕괴되었다.

2024년 12월 30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친한계가 몰락하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인데도 이전보다 더욱 친윤 색채가 강해진 지도부가 되었다.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인용되었고, 결국 여당 지위를 박탈당했다.

2025년 5월 3일, 전당대회를 통해 김문수고용노동부장관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하였으나,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 여부와 일정을 두고 김문수 후보 캠프와 권영세 지도부 사이에 마찰이 커져감에 따라, 단일화를 위해 불과 일주일만인 5월 10일에 6차 당대회를 예고했다. 그러나 비대위 지도부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야밤에 대통령 후보를 교체하려다가 실패한 후 실제 당대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25년 6월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문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27%p 차로 패배하면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제1야당이 되었다.

0.4. 역사[편집]

0.4.1. 2020년 이전[편집]

걸어온 길
국민과 함께 한 길, 국민의 힘이 되는 길
국민의힘 발자취 국민의힘이 걸어온 길은 한국 정치발전의 역사이며 한국인의 자랑입니다.
앞으로도 국민의힘은 국민만 바라보며 나아가겠습니다.

국민의힘은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의 [걸어온 길]을 통해 2020년 당명 변경 이전까지 이어져 온 전체적인 역사의 큰 흐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명시하였다.

0.4.2. 2020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미래통합당으로 치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더불어민주당에게 180석을 내준 뒤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왔다. 미래통합당으로 바뀐지 5개월 만에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하였다.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그리고 국민의힘까지 올해에만 당명이 당명이 3번이나 바뀐 셈이다. 그만큼 2020년 한 해동안 보수정당이 격변을 거듭해 왔음을 보여준다.

0.4.3. 2021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의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역사적인 초압승을 거머쥐면서 약 10년 만에 서울특별시를 보수정당이 탈환함은 물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속되던 선거에서의 부진을 끊어냈다. 이 해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다.

0.4.4. 2022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승리하고 이어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압승하면서 최고의 상반기를 보냈으나, 하반기에 들어서는 이준석 대표가 축출되는 과정에서 각종 잡음이 발생하고, 윤석열 정부가 일으킨 여러 논란으로 인한 유례없는 임기 극초반 지지율 대폭락이 일어났고, 유탄을 여당인 국민의힘 또한 맞게 되면서 때이르게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0.4.5. 2023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월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은 약간의 등락은 있지만 여전히 대체로 저조한 가운데, 친윤 지도부가 구성되면서 외견상으로는 지난해만큼의 격한 계파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반기 이후 당내 비주류를 중심으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수도권에서 대참패를 당할 수 있다는 소위 '수도권 위기론'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지도부는 이를 진화하려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중에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 대패로 김기현 체제는 한 차례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국민과 함께 혁신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역시 특별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결국 12월 13일, 김기현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고 12월 26일, 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했다. 12월 27일에는 이준석 전 대표가 탈당과 개혁신당 창당을 하며, 바른정당 이후 7년 만에 분당 사태가 일어났다.

0.4.6. 2024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202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윤석열 정부 심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108석밖에 획득하지 못하는 참패를 당하면서 윤석열 정부 전체 임기를 압도적인 여소야대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사퇴하였다.

잠깐의 황우여 비대위 체제를 거친 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하반기 동안 윤석열 대통령과 뜻을 맞춰 김건희 특검법채상병 특검법을 수차례 부결시켰다.[31] 이 과정에서 한동훈의 대통령실과의 갈등이 고조되며 관계가 틀어지고 있던 중, 12.3 내란이라는 친위 쿠테타 사건이 터졌고, 윤석열은 탄핵의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1차 부결, 2차 가결로 결국은 통과되었는데, 박근혜 탄핵 소추 때와는 달리 국민의힘 의원의 절대 다수가 윤석열 수호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총선에서 얻은 의석 수가 워낙 적다보니, 11%(12명)의 국힘 의원의 이탈만으로도 근소차의 가결이 된 것이었다.[32] 그리고 탄핵소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한 한동훈 대표는 이러한 탄핵 반대가 압도적이던 다수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강한 반발을 샀고, 결국 한동훈 지도부는 붕괴되었다. 이후 권영세 비대위 체제가 수립되었다.

0.4.7. 2025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202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결국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어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되었고, 대선 경선에서 김문수 후보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무소속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대선 후보를 무단으로 교체하려려 시도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김문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국민의힘은 3년 만에 야당이 되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송언석 의원이 당선되었다. 곧이어 치러진 제6차 전당대회에서는 '반탄파' 후보가 '찬탄파' 후보를 압도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었고, 최종적으로는 윤 어게인 집회를 옹호한, 즉 반탄파 중에서도 가장 강성이었던 장동혁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었다.

0.4.8. 2026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202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동안 대여 투쟁에 집중하느라 묻어두었던 당내 갈등이 연초 한동훈 전 당대표에 대한 제명 파동을 시작으로 다시 불거졌고, 한동훈은 끝내 제명당했다.

장동혁 대표는 연초에 12.3 내란 재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동의할 수 없다는 선언과 함께, '절윤(윤석열과의 절연) 주장을 하는 자야말로 당이 절연할 대상'이라는 초강경 메시지를 내놓았다. 윤 어게인이 주류가 된 국힘 당원들은 이에 환호했지만, 제9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지지율이 15%로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수치는 국민의힘이 2020년 9월 창당(당명 변경)한 이래 최저 지지율이다. 이 조사에서 기존 국민의힘 최저 지지율은 대선 패배로 상실감이 이어지던 작년 8월 1주 때의 16%였다. 이에 비당권파로부터 완전한 절윤 및 장동혁 지도부의 사실상의 2선 후퇴 압박이 강하게 들어오는 등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0.5. 성향[편집]

대한민국의 주요 보수주의 정당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비교해 상대적 진보적으로 평가되는 정도인 반면 국민의힘이 보수정당이라는 데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단적으로 말해 현재 제22대 국회에서 극우 정당이 없기에 국민의힘보다 더 보수적인 원내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국민의힘을 우파(Right) 정당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우파 빅 텐트 정당답게 스펙트럼 자체는 개혁보수에서 국민보수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주류는 해외의 주요 보수 우파 빅텐트 정당과 비슷하게 경제적 자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보수주의이며, 기본적으로 민간 중심의 시장경제와 전통적 가치를 중시한다. 또한, 일부 정치인은 극우적 성향을 띄기도 한다. 즉 국민의힘은 말하자면 중도 ~ 중도우파부터 극우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우익 빅 텐트 정당이다. 경제 면에서는 시장의 자율성을 중요시하며, 규제 완화를 비롯한 기업 친화적(Business Friendly) 정책을 추구한다. 경제 성장을 위해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규제 프리존, 창조경제단지 정책은 규제를 대폭 완화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기업 활동을 촉진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이명박 정부서울특별시 인근 개발제한구역(Green Belt)을 일부 해제하고 '보금자리주택'이라는 공공 주택 공급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물론 온건 보수주의 계파에서는 사형제 반대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사회보수주의 계파에서는 가족, 교육, 문화 등 사회 정책에선 전통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전통적 가족 구조와 수월성 교육 시스템을 지키려는 시도로도 나타난다.

법치주의를 중시하고, 엄격한 법 집행과 법적 절차 준수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검찰의 독립성과 수사권 보장을 지지하며, 따라서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으로서 여권의 검찰개혁에 반대하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의 상호 견제를 지지한다. 안보 면에서는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한다. 때문에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강경 대응, 이북 주민,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개선, 북한의 민주화를 지지한다. 통일 정책에서는 평화통일을 지지한다. 외교 면에서는 한미동맹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들과의 공조, 주한미군유엔군사령부의 국내 주둔 지지를 중시하고 추구한다. 킬체인한국형 미사일 방어 전략 추진, 한반도 THAAD(사드) 배치 결정,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 F-35 도입, 핵잠 보유, 파이브 아이즈 플러스AUKUS II 가입 등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서방 세계와 친한 만큼 반서방 국가와는 좀 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 핵무장 논의에 대해 긍정적인 이들이 많다.

통시적으로 보면 민주공화당(1963~1980)과 민주정의당(1981~1990) 시절에는 군부독재정권의 여당으로서 일명 개발독재 성장 모델을 내세워 국가주의 체제를 뒷받침했으며, 냉전이라는 시대상에서 비롯된 반공주의를 표방한 것이 주된 특징이었다. 그러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세력(통일민주당)과 결합한 3당 합당(1990)으로 실질적 뿌리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고,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화에 발맞춰 영미권신보수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제한된 정부자유시장 등으로 대표되는 재정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편으론 당 전체가 특정 유력 정치인에게 큰 영향을 받는 한국 정치 특성상, 중심 인물에 따라 방향성이 변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간동안 기본적으로 우파 빅텐트 정당으로서 경제적 자유주의를 핵심가치로 삼았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매우 강조했고, 후임 박근혜 정부 시기엔 경제민주화를 일부 수용하며 중도 노선과 일정부분 타협했다. 이후 홍준표 대표 체제에선 경제적 자유주의가 다시 강조되었고, 황교안 대표 체제에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항하는 민부론을 제시했다. 이준석 대표 체제에서도 경제적 자유주의를 중시하는 기존 기조를 이어지면서 젠더 갈등세대 갈등 등 다른 사회적 담론에 관한 당의 노선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있기도 했으며, 한동훈 대표 체제에서는 법치주의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행보를 보였다. 장동혁 대표 체제에서는 장동혁이라는 인물 자체가 입법, 사법, 행정,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요직을 맡은 인물이라 사법 면에서는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행정 면에서는 공정함과 도덕성, 사회 면에서는 규제 완화와 지속적 발전 등 분야마다 폭넓게 중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인다.

0.6. 정강·정책[편집]

2020년 9월 2일 미래통합당 시절의 첫 번째 정강·정책을 전면 개정해서 만든 두 번째 정강·정책은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 우리의 믿음, 기본정책 3가지 파트로 구성되어있다.

자세한 것은 국민의힘 정강·정책 페이지를 참조.

0.6.1. 정강[편집]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
[ 정강 펼치기 · 접기 ]
국민의힘은 모두의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정당이다. 반만년의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는 3.1 독립운동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난극복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 된 국민의 힘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경제를 이룩했으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민주화를 성취했다. 우리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앞장서 나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질서의 대전환북한의 핵무장, 지구환경 변화와 거듭되고 있는 질병과 재난, 경제의 질적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과 양극화의 심화, 인구절벽 등 중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국가적 위기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치는 국민이 부여한 권한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등 사회적 혼란과 함께 정치불신을 심화시켜 왔다. 이제 우리는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미래 변화를 선도하고, '기회의 나라, 공정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우리는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입시와 취업, 병역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칙과 특권이 허용되지 않도록 한다. 국민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할 것이며,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제도를 마련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회복한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새마을 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

우리는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선도한다. 제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경제·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미래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에 국가의 역량을 집중한다. 더 나아가 미래 세대와의 공존을 위해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저탄소 청정에너지에 기반한 친환경사회 건설에 앞장서 나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지향하며 국민을 위한 실용적인 정치,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정치를 실천한다.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유능한 정부를 만들고, 실질적인 권한의 분산을 통해 지방분권 시대를 연다. 법이 약자에게 드리운 그늘을 걷어내고, 공평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도록 사법제도를 개선해 나간다.

우리는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으며, 노력한 자에게 합리적 보상이 주어지는 노동시장 조성에 앞장선다. 안심하고 기업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경제적 성장을 돕는다.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쾌적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노동시장의 고용안전망을 강화해 나간다.

우리는 누구나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개인 중심의 복지 체계 개편에 앞장서고, 소외계층을 위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한다. 모든 영역이 성인지 관점에서 작동되는 양성평등사회를 지향하며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선다.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양육이 중심되는 사회제도와 문화를 마련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남‧북한 간의 개방과 대화, 교류 협력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추구한다.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를 통해 튼튼한 안보를 구축한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주변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확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세계 각 지역과의 경제 및 통상외교를 강화하고 대한민국의 국익 신장을 위한 전방위적 외교를 능동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국민의힘은 국민 모두를 위한 정당으로서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선언한다.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은 정강으로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국민 통합미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끄는 혁신과 개혁을 두 개의 기둥으로 역사관, 시대정신, 핵심 정책 기조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 보수 정당들의 강령과 달리 역사관의 변화로는 먼저 3.1 운동 정신과 임정 법통론을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역사 논쟁을 없애기 위해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33] 정신’을 계승한다고 썼다. 미래통합당 시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호남행과 맞물려 이해되는 대목이다.

여러 가지 국가적 위기에 맞서 '기회의 나라, 공정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을 시대정신으로 보고 핵심 정책 기조를 기회와 공정, 미래 변화 선도, 노동의 존중, 경제적 자립, 약자와의 동행,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외교 안보 등 6가지 주요 핵심 가치로 보면서 거시적인 당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

0.6.2. 10대 신념[편집]

우리의 믿음
  1.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인권을 보장받고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2. 우리는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3. 우리는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때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4. 우리는 쾌적한 환경과 안전한 일상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5.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한반도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0.6.3. 기본 정책[편집]

10대 약속이라고 불리는 10대 정책에 소주제로 총 33개의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각 정책별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10대 약속
1.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
  • 누구나 누리는 선택의 기회
  • 모두에게 공정한 대한민국
  • 맞춤형 교육 기회 보장
  • 다양성 기반의 미래 교육 생태계 조성

2. 변화를 선도하는 경제혁신
  • 메가트렌드 예측과 규제 인식 전환
  • 과학기술 기반 융합 산업 발전
  • 지역의 재탄생

3. 약자와의 동행, 경제민주화 구현
  • 사회 양극화 해소
  • 경제민주화 구현
  • 국민 주거 안정

4. 일하는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
  • 미래의 노동
  • 안정적이고 유연한 노동시장 조성
  • 양질의 일자리 창출
  • 생명을 최우선 하는 노동환경 조성

5.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 개혁
  • 국민과 함께 만드는 정치 개혁
  • 유능한 정부 혁신
  • 국민에 의한 권력기관 개혁
  • 언론자유를 지키는 개혁

6. 모두를 위한 사법 개혁
  • 법의 그늘이 없는 사회
  • 권력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 미래형 사법제도 도입

7. 깨끗한 지구,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 미래세대와의 공존
  • 저탄소 청정에너지 혁명
  •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8. 내 삶이 자유로운 나라
  • 국민 행복 구현
  • 모두가 함께 행복한 돌봄 공동체
  •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이 행복한 사회

9. 남녀 모두가 행복한 양성평등사회
  • 양성평등사회의 실질적 구현
  • 성폭력 없는 사회

10. 우리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하는 외교안보
  • 더 크고 더 좋은 나라 통일 대한민국
  • 북한의 비핵화와 외교지평의 확대
  • 힘을 통한 평화
  • 헌신과 희생에 대한 예우

0.7. 상징[편집]

0.7.1. 당명[편집]






총 1만 7천여 건의 조사 중 가장 선호하는 단어는 국민, 자유, 한국등이 있었다. 최종 후보는 국민의힘, 한국의당, 위하다였으며, 비대위 의결과 의원총회 등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국민의힘이 채택되었다. #

당명 변경 실무를 주도해온 김수민 홍보본부장은 2020년 8월 3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위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국민 대다수의 간절한 소망을 당명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별도 약칭 없이 있는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공식 약칭이 없다. 다만 여론조사 및 언론에서 편의상 국힘이라는 약칭을 사용하고 있다. # 정당을 나타낼 때 더불어민주당은 '민주', 국민의당은 '국민' 등 2음절 약칭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보니 국민의힘 또한 이렇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특별히 비하적인 의미가 있는 약칭은 아니기 때문에 비공식 약칭이지만 널리 통용되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이전 명칭인 미래통합당의 경우 공식 약칭인 '통합당'과 두문자어인 '미통당' 중 무엇으로 부르냐로 시비가 있었다.

또한 당명에 '당' 내지는 '연합'이라는 말이 붙지 않는 것도 주류 보수정당 쪽에서는 새로운 시도이다.[34] 원내정당으로 있던 시대전환이 이처럼 4음절에 '당'이 붙지 않는 명칭이다. 처음에는 다수의 국민과 언론이 당이 붙지 않는 이름에 익숙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의 이미지의 개선 그리고 중도세력을 결집하는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35] 또한 비대위의 출범에 맞추어 만들어진 이름이기 때문에 당의 과거 새누리당이나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과 완전한 선긋기에 기여하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영문 명칭은 '피플 파워 파티'(People Power Party, PPP)로 하기로 했다.[36] 영문 명칭에 파티가 붙는 것에 대해서는 "외국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등 필요성에서 파티를 붙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유사한 영문명의 정당으로는 싱가포르의 인민역량당(People's Power Party)[37]도 있다. 또 다른 유사한 영문명의 정당으로는 홍콩의 민주파 정당인 인민역량이 있다. 또 National Assembly of People's Power라는 쿠바 의회 이름과 유사하기도 하다.[38] 브라질의 진보정당 인민의 힘도 있다. PPP라는 같은 약자를 쓰는 정당 중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당은 파키스탄파키스탄 인민당[39]이다.

더불어 이미 한 차례 존재했던 정당 국민의 힘이나, 참여연대의 사이트 주소에 포함된 Peoplepower와도 유사하다. 정청래 의원의 시민단체 '국민의 힘'도 있다. 요컨대, 해당 용어 자체가 대부분 진보 성향의 정당/단체에서 쓰인 이름임을 감안하면 특이한 편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 이름이 매우 비슷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안철수가 2020년에 '국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창당하려고 했는데 선관위가 국민새정당과 비슷한 이름이라며 반려했기 때문에 '국민의당'이 되었다. 하지만 국민의당과 글자 수까지 같은 '국민의힘'은 승인을 받았다. '국민의힘' '국민의당' 헷갈리는데..선관위는 승인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과거 선례, 법조문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국민의당 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실제 충돌의 여지는 없었다. 원내대표인 권은희 전 의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통합당이 결정한 당명 '국민의힘'을 "좋은 이름이다"라고 호평하며 "국민의당과의 통합과 연대를 하고 싶다는 의중이 깔려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이어서 "양당간 정책연대와 관련해서 공식 논의 중에 있고, 9월 중에 관련해서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편 안철수 전 대표도 "다른 당 이름에 대해 내가 의견을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 언뜻 듣기로는 유사 당명 같지는 않다. 선관위에서 판단이 있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

영어 명칭을 잠깐 동안 Force of People로 표기했던 적이 있다. Force가 힘으로 번역되는 단어이긴 하지만 문맥에 맞지 않는 단어 선정[40]으로 논란이 있었다. 인민무력당 드립[41][42], 국민의 일률(Power) ÷ 국민의 속력(Velocity)[43]이나 국민의 질량 × 국민의 가속도(F=ma) 등 물리학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별개로 Force of People일 경우 페루의 전직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를 계승하는 보수우파 정당 민중권력당(Fuerza Popular)과 같은 이름이 되기도 한다.

북한 로동신문에서는 문화어겹화살괄호와 띄어쓰기를 적용해 《국민의 힘》이라고 표현한다. 중국공산당공산권 국가의 정당에는 이런 표시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이른바'라는 의미로 저렇게 쓰는 것이 유력하다. 최근에는 띄어쓰기 없이 《국민의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44]
파일:20220311505196.jpg

0.7.2. 당색 및 로고[편집]

2020년 9월 24일 국민의힘 홍보국은 당색으로 빨강·파랑·하양을 발표했다. 빨간색을 기본으로 파란색, 흰색을 보조로 사용하며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구도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국민을 통합하는 포용력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하고자하는 의지를 담았다. 또한 로고의 경우 '국민'이라는 단어의 'ㄱ'과 'ㅁ'을 조합한 평면 사각형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해 국민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표현했다. # 기존 노란색을 대체한 흰색은 '새롭게 시작하다', '백의종군’ 등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색깔이 노란색에서 흰색으로 바꾼 것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의도한 대로 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프랑스 국기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국민의힘 비대위 관계자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애초부터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하는 프랑스 삼색기는 국민주권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노란색 대신 흰색을 쓰자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

이후 2023년 9월, 로고 변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기존 로고와 달리 'ㄱ'과 'ㅎ'을 형상화했으며, 하늘색보다 파스텔톤의 파란색으로 부색을 살짝 바꾸어 로고에 반영했다. # 진중권 광운대학교 특임교수는 "미학적으로 빵점"이라고 혹평했다.# 이후 별다른 소식 없이 기존의 로고를 계속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변경안은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핑크색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 나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장제원 전 의원은 "왠지 모르게 마음에 생채기가 난 것 같다. 당색 하나 의원들 다수 의견에 따라 주지 못하나"고 비판 의견을 밝혔다. #

빨강·파랑·하양은 각각 대한민국 보수정당들이 쓴 적이 있는 색깔이다. 미국 공화당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의 색깔인 빨간색,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이 사용해 온 보수주의의 색깔인 파란색, 근대 이전엔 왕당파 등 보수주의를 상징했던 색깔이자 지금은 평화주의를 상징하는 색깔인 하얀색을 같이 사용한다.

이 외에 공식 매뉴얼을 통해 큰 글자에는 Sandoll격동고딕, 본문에는 Sandoll고딕Neo1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
  • 주요색상
    • 흰색 (#FFFFFF)
    • 붉은색 (#E61E2B)
    • 파란색 (#00B5E2)
  • 보조색상
    • 40% PANTONE 4050 UP (#EDB19D)
    • 60% PANTONE 2344 C (#F18070)
    • 80% PANTONE 2348 C (#E5554F)
    • PANTONE P 115-3U (#BDE4F8)
    • PANTONE 7694 U (#004C7E)
    • PANTONE 20-0145 TPMGalactica (#112C56)

0.7.3. 슬로건[편집]

0.7.3.1. 역대 슬로건[편집]

아래의 슬로건들은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 2025년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 아파트 대박 김병기, 주식 대박 민중기
"꼭꼭 숨겨라"
관세협상 내막 | 48시간의 비밀 | 애지중지 현지
헌법 위 대통령
새로운 미래로
다시 뜁니다
국민의힘/제6차 전당대회에서 사용한 슬로건이다.
야당탄압 정치보복
압수수색 즉각 중단하라
더불어독재정당
국민과 함께 막아 내겠습니다
기업옥죄기법 | 불법파업조장법 | 방송장악3법
악법에 경제가 무너집니다
악착같이 막겠습니다
국민이 어려울때
국민 곁에 국민의힘
국민이 원하는 변화
이제는 제대로
국민을 위한
변화 쇄신
포용 통합
책임, 반성, 변화
답하겠습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인한 슬로건이다.
알고보니 진짜는
김문수
제21대 대통령 선거 김문수 후보의 두 번째 슬로건이다.
새롭게 대한민국!
정정당당 김문수
제21대 대통령 선거 김문수 후보의 첫 번째 슬로건이다.
국민을 향해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앞으로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사용한 슬로건이다.
대한민국

이제 바로 잡을 시간
국민께 죄송합니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오직 국민나라
국민의힘은 산불진화와
수습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산불은 특정 지역을 넘어선 전국적인 재난 상황입니다. 지금은 산불진화와 수습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국민의힘은 소방·구조 당국과 협조하여
산불 예방 활동 및 자원봉사, 주민 불안 해소, 민심 수습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입니다
2025년 3월 12일까지 사용
국민진심입니다
2025년 3월 5일부터 2025년 3월 11일까지 사용
피고인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한민국이 무너집니다
탄핵 남발 / 입법 독재 / 국정 마비 / 특검 중독 / 카톡 검열 / 여론조사 탄압
민심검열로 바꿀 수 없습니다
  • 2024년
국민기만 사기탄핵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 이후 사용한 슬로건이다.
국정안정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사용한 슬로건이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와 그 가족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수습과 대책 마련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민생 살피겠습니다
경제 키우겠습니다
변화와 쇄신
멈추지 않고 해내겠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
차이는 좁히고 기회는 넓히고
NEXT 보수의 진보
국민의힘/제4차 전당대회에서 사용한 슬로건이다.
국민과 함께 미래로 갑니다
국민의 회초리 겸허히 받겠습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패배 후 사용한 슬로건이다.
국민의힘은 일하고 싶습니다
준비된 미래 지금! 합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두 번째 슬로건이다.
  • 2023년
선민후사 국민이 우선입니다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첫 번째 슬로건이다.
낮은 자세로 더 치열하게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의 뜻대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사용한 슬로건이다.
경제는 국민의힘
우리의 대답은 오직 민생입니다
힘내라!
대한민국
국민의힘/제3차 전당대회에서 사용한 슬로건이다.
  • 2022년
새로운 힘 새로운 해 국민을 위한 2023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 애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습과 대책 마련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한 슬로건.
다함께 새롭게 앞으로
혁신변화로 거듭나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무한 책임지겠습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승리 이후 슬로건이다.
지역을 새롭게
시민을 힘나게
2022년 5월 2일부터 사용.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슬로건이다.
하나되는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
윤석열 정부 출범 슬로건이다.
국민의힘의 이름으로
빠르게, 더 새롭게, 더 젊게
통합의 힘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제20대 대통령 선거 윤석열 후보의 메인 슬로건.
국민의 뜻대로 새롭게
제20대 대통령 후보 윤석열
2022년 1월 10일부터 사용.
  • 2021년
뜨겁게 회복하는 시간
국민과 함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윤석열
윤석열이 확 바꾸겠습니다
공정과 상식의 나라 되찾겠습니다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윤석열
바꿀 준비 되셨습니까?
Are you ready for change?
2021년 8월 30일부터 사용.
다 태우GO 정권교체
2021년 8월 5일~2021년 8월 29일 사용
공존의 힘으로 새로운 내일을
2021년 6월 14일~2021년 8월4일 사용
새로운 미래가 온다
2021년 5월 24일~2021년 6월 13일 사용
2021년 5월 7일~2021년 5월 23일 사용
이제 국민의 시간입니다.
2021년 4월 20일~2021년 5월 6일 사용
우리에겐 내일을 바꿀 힘이 있다
2021년 3월 29일~2021년 4월 19일 사용
이번 명절 회복 하기를, 행복 하기를, 힘내기를.
2021년 2월 8일~2021년 3월 28일 사용
위기를 넘어 미래로
2021년 1월 22일~2021년 2월7일 사용
일상의 회복을 넘어 더 나은 내일로!
2021년 1월 4일~2021년 1월21일 사용
  • 2020년
GO 가자. 국민이 있는 곳으로.
변화, 그 이상의 변화
국민의힘 당명 변경 후 첫 번째 슬로건이며, 미래통합당의 마지막 슬로건이었다.

0.7.4. 당가[편집]

국민의힘의 공식적인 당가들보다는 다른 노래들이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더욱 익숙하다. 더불어민주당의 당가는 더더더 송이지만 실제로는 상록수에 인지도가 밀리는 것처럼 국민의힘 당가도 조국찬가, 나의 조국 등의 인지도에 밀린다. 자유한국당 로고송으로 조국찬가가 사용된 적이 있다. 2025년부터는 국민의힘 및 보수진영 집회에서 양양가, 휘날리는 태극기 등도 많이 사용된다.

다만 세 번째 당가인 '다시 국민의힘'은 선거나 당 행사에서 상당히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인지도가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0.7.4.1. 지금 다시 하나되어 (2021 ~ 2022)[편집]

지금 다시 하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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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아픔을 겪었어
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거야
이제 그 누구도 탓하지 말고
나의 부족함을 다시 생각해

우리에겐 아직 희망은 있어
어려울수록 강해지는 믿음
그래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다시 태어나는 그런 맘으로

우린 해낼 수 있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 시련도
우리 하나되어 이겼어

세상이 우릴 모두 지켜보고 있어
우리의 시작을 의심할 거야
그런 그들에게 보여줘야 해
우리도 몰랐던 또 다른 힘을

우린 해낼 수 있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 시련도
우리 하나되어 이겼어

저 높이 떠오르는 태양을 봐
우릴 비춰주고 있잖아
우리 모두 손을 잡고
희망의 미랠 향해

우린 해낼 수 있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 시련도
우린 하나되어 이겼어


해당 음원은 2021년 4월 21일 공식 발매되었다. 작사 임기훈, 최준영 작곡 최준영, 정진향 편곡 김한년이 맡았다. 노래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과 배우자 송현옥 교수, 박성중 전 의원, 이준석 의원[48], 허은아 전 의원[49], 김웅 전 의원, 태영호 전 의원, 윤희숙 전 의원, 권영세 의원, 유경준 전 의원, 김병민 전 최고위원, 유승민 전 의원, 오신환 전 의원, 박진 전 의원, 김재섭 의원, 이재영 전 의원과 청년들이 함께 불렀다.

2022년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앨범 소개
국민의힘, 22년 만에 국민송 '하나 되어'다시 부른다.
- 국민의힘 서울특별시장 선거캠프 음원 '지금 다시 하나되어'제작
- 오세훈, 유승민 등 국민의힘 정치인 2030청년들과 함께 노래 불러
- 원곡 '하나되어' 발표된 22년을 기념하며 같은날 공개 예정

4‧7 재보궐선거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선거 캠프 참여자들이 모여 변화된 국민의힘과 새로운 서울특별시를 약속하기 위한 음원을 제작했다.

'국민의힘 위드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번 음원 제작팀은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을 비롯하여 유승민 전 의원 등 캠프에 참여한 정치인, 그리고 청년 유세단에 올랐던 청년 등 30여 명이 동참했다.

'국민의힘 위드 서울'이 이번에 함께 부른 노래는 IMF 여파로 힘들어하는 대한민국을 위로하기 위해 이선희, 신승훈, 김경호, HOT, 핑클 등 인기가수 60여 명이 참여한 곡 '하나되어'이다.

'지금 다시 하나되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불러진 이번 곡은 원곡이 발표된 1999년 4월 21일을 기념하며 22년 후인 2021년 4월 21일에 국민의힘 유튜브 계정인 '오른소리'와 참여한 의원들의 SNS 계정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지금 다시 하나되어'는 '국민과 하나 된 국민의힘', '서울시민과 하나 된 국민의힘', '청년과 하나 된 국민의힘'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국민의힘 출신 정치인과 2030 청년들이 1대1로 짝을 이뤄 함께 녹음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국민의힘 서울특별시장 선거캠프 뉴미디어본부에서 공동 본부장을 지낸 허은아 전 의원과 이준석 전 위원장이 기획했다. 허은아 전 의원은 ‶지난 선거 당시 국민의힘에 기회를 주신 국민과 청년들에게 감사와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을 전하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19 상황이지만 하나 되어 이겨 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위원장은 ‶앞으로 국민의힘에 모든 행보에 2030이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번 기획을 했으며, 선거와 노래뿐만 아니라 정치와 정책 양면에서 청년들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음원은 참여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유승민 전 의원을 비롯하여 현역 의원 권영세, 박진, 박성중, 김웅, 유경준, 윤희숙, 태영호, 허은아 의원이 참여했으며, 오신환 전 의원을 비롯해 김병민, 김재섭, 이재영, 이준석 당협위원장 등이 2030 청년들과 함께 참여했다.

한편 이번 음원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방역이 완비된 스튜디오에 가창자들이 순차적으로 입실해 녹음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0.7.4.2. 다시 일어나 승리하리라 (2022 ~ 2024)[편집]

다시 일어나 승리하리라
2019년 9월 26일, '거리의 성악가' 노희섭의 노래 'KOREA'가 발매되었다.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를 맞아 노래를 커버했다.[50] 이 노래는 국민의힘의 두 번째 당가가 되었고 전당대회에서 축하공연을 하였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선거송으로 사용하였다.

총선 이후에는 후술할 다시 국민의힘이 당가로 사용되며[51] 이 곡은 국민의힘/제4차 전당대회에서 윤석열의 입장곡으로 쓰였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다시 쓰일 일이 없어졌다.

0.7.4.3. 국민의힘 응원가 (2024 ~ 2026)[편집]

국민의힘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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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국민의힘 우리 함께 승리하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

지금 국민의힘 가슴속에 큰꿈을 향해
우리 함께 달려가 국민의힘 손잡아

우리 곁에는 항상 국민의힘 뿐이야
거친 세상에 부딪혀 다 이겨내리라
절대 포기는 없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시련이 와도 다 모두 이겨낼꺼야

보다 나은 미래 우리 함께 만들어가
다시 하나되어 가자 국민의힘 손잡아

다시 국민의힘 우리 함께 승리하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

지금 국민의힘 가슴속에 큰꿈을 향해
우리 함께 달려가 국민의힘 손잡아

(2절)

우리 곁에는 항상 국민의힘 뿐이야
거친 세상에 부딪혀 다 이겨내리라
절대 포기는 없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시련이 와도 다 모두 이겨낼꺼야

보다 나은 미래 우리 함께 만들어가
다시 하나되어 가자 국민의힘 손잡아

다시 국민의힘 우리 함께 승리하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

지금 국민의힘 가슴속에 큰꿈을 향해
우리 함께 달려가 국민의힘 손잡아

우리 함께 달려가 국민의힘 손잡아


여성 Ver. / 남성 Ver.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메인 로고송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자체 제작곡이며 국민의힘/제4차 전당대회, 국민의힘/제5차 전당대회, 국민의힘/제6차 전당대회에서 당기 입장 곡으로 쓰여 사실상 국민의힘의 공식 당가가 되었다.[52]

총선 이후로도 2025년 재보궐선거에서 상당수의 후보들이 사용하였으며,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간간이 사용되었다.[53] 이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면에서 다시 부활하여 메인 로고송으로 쓰였다.

0.7.4.4.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2026)[편집]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 펼치기 · 접기 ]

목소리에 맞춰 발을 구르자
오늘이 광장의 심장이다

깃발 아래 우리가 모이면
두려움은 뒤로 사라진다

굳은 결심의 눈빛 손을 맞잡고
자유를 향해서 뛰어본다

다시 한번 시작되는 외침
이 나라의 주인은 우리다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자유가 숨 쉬는 우리의 땅
땀 흘린 만큼 꿈이 자라고
공정한 내일이 밝아온다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정의가 흐르는 이 길위에
끝까지 함께가는 이 순간
오늘도 국민이 승리한다

작은 한표들이 물결이되어
거대한 파도가되어 친다

열심히 산사람 웃게 만드는
정직한 세상을 되찾자

다시 국민의힘
자유 대한민국
평화가 머무는 우리의 집
눈물의 세월은 뒤로 남기고
미래를 향해서 걸어간다

다시 국민의힘
자유 대한민국
공정한 기회가 열려있는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
오늘도 국민이 승리한다

자유여 이 땅 위에 다시 서라
정의여 이 가슴에 다시타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따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리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자유와 정의가 함께 뛰는
이 순간 노래하는 우리 모두
역사의 주인이 되어산다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 혼이 빛이되는
하나 된 목소리 하늘에 외친다
지금도 끝까지
국민이 승리한다

다시 국민의힘
자유 대한민국
함께 가면 우리는 이긴다
자유의 불빛을 높이 들어라
국민이 승리하는 그 날까지


0.8. 당사[편집]

0.8.1. 국민의힘 중앙당사[편집]

국민의힘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4길 12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 중앙당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0.8.2. 시도당사[편집]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개혁정책으로 기존에 있던 시·도당사를 매각하고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광주광역시당, 부산광역시당은 원래 민주정의당 시절 당사를 30년 이상 그대로 사용해 왔는데[54] 광주광역시당사는 김 전 비대위원장이 광주광역시 국립5·18민주묘지에 무릎 꿇고 참배한 것을 계기로 매각한 뒤 서구로 이전하였다. 이외에 경기도당, 인천광역시당 등도 매각, 이전했다.
서울특별시당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4길 12[55]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부산광역시당
부산광역시 수영구 황령대로 497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대구광역시당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대구로 382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인천광역시당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동대로 750, 6층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광주광역시당
광주광역시 서구 시청로 57 402호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
대전광역시당
대전광역시 동구 대전로 887 화성빌딩 3층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울산광역시당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로 3층ㆍ5층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세종특별자치시당
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245 에스알파크원빌딩 805호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경기도당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944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강원특별자치도당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금강로 28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충청북도당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공단로 97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충청남도당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원성1길 19, 303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전북특별자치도당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충경로 102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전라남도당
전라남도 나주시 상야1길 7 예가람타워 319호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경상북도당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대구로 382, 4층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경상남도당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원이대로 275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제주특별자치도당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삼로 10, 2층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0.9. 소속 인물[편집]

0.9.1. 국회의원[편집]

0.9.1.1. 4선 이상 다선 국회의원[편집]

0.9.2. 광역자치단체장[편집]

0.9.3. 기초자치단체장[편집]

0.9.3.1. 3선 기초자치단체장[편집]

0.9.4. 광역의회의원[편집]

0.9.5. 기초의회의원[편집]

0.10. 계파[편집]

현재 국민의힘에는 크게 두 부류의 계파가 존재한다.

  • 과거에 존재했던 국민의힘 계파

==역대 전당대회 ==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국민의힘

0.1. 개요0.2. 기원0.3. 현황0.4. 역사0.5. 성향0.6. 정강·정책
0.6.1. 정강0.6.2. 10대 신념0.6.3. 기본 정책
0.7. 상징
0.7.1. 당명0.7.2. 당색 및 로고0.7.3. 슬로건
0.7.3.1. 역대 슬로건
0.7.4. 당가
0.7.4.1. 지금 다시 하나되어 (2021 ~ 2022)0.7.4.2. 다시 일어나 승리하리라 (2022 ~ 2024)0.7.4.3. 국민의힘 응원가 (2024 ~ 2026)0.7.4.4.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2026)
0.8. 당사0.9. 소속 인물
0.9.1. 국회의원
0.9.1.1. 4선 이상 다선 국회의원
0.9.2. 광역자치단체장0.9.3. 기초자치단체장
0.9.3.1. 3선 기초자치단체장
0.9.4. 광역의회의원0.9.5. 기초의회의원
0.10. 계파
1. 개요2. 목록
2.1. 제1차 전당대회2.2. 제2차 전당대회2.3. 제3차 전당대회2.4. 제4차 전당대회2.5. 제5차 전당대회2.6. 제6차 전당대회2.7. 역대 지도부2.8. 출신 대통령2.9. 상임고문단2.10. 조직도2.11. 청년의힘2.12. 개요2.13. 상세
2.13.1. 출범 전
2.14. 정식 출범2.15. 현황2.16. 논란 및 사건사고
2.16.1. 무개념 포스터 논란
2.17. 지지 기반2.18. 경향2.19. 지역별2.20. 세대별
2.20.1. 1987년생 이하
2.20.1.1. 남성2.20.1.2. 여성
2.20.2. 1970년생 ~ 1986년생2.20.3. 1960년대생2.20.4.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
2.21. 직업별2.22. 집단별2.23. 도농별2.24. 선거에서의 유불리
2.24.1. 이점
2.24.1.1. 부울경의 지속되는 경합 우세2.24.1.2. 30대 이하 남성의 보수화2.24.1.3. 노년층의 지지
2.24.2. 복합적
2.24.2.1. 서울특별시의 경합 열세화2.24.2.2. 민주당계 주요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2.24.2.3. 아직은 통제불능인 부동산
2.24.3. 약점
2.24.3.1. 50대 이하에서의 패배2.24.3.2. 경인권과 충청권 대도시에서의 약세2.24.3.3. 2번의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한 과거청산 문제
2.25. 다른 정당과의 관계2.26. 개혁신당2.27. 진보당2.28. 사회민주당2.29. 기본소득당2.30. 조국혁신당2.31. 민생당, 민주평화당2.32. 정의당2.33. 녹색당, 노동당2.34. 미래당2.35. 공화당2.36. 새미래민주당2.37. 극우정당2.38. 비판 및 논란2.39. 역대 선거2.40. 기타2.41. 관련 문서2.42. 지지율2.4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국민의힘전당대회에 대한 문서.

국민의힘의 걸어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한나라당을 당의 시초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13차례 있었던 한나라당의 전당대회와 4차례 있었던 새누리당의 전당대회, 3차례 있었던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와 합쳐서 계산한다면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는 한나라당 이래로 21번째 전당대회라고도 할 수 있다.

첫번째 전당대회 때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1차 전당대회는 새누리당을 포함해서 2010년대 이래로 보수 정당의 전당대회의 당원 투표율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첫 대통령 후보자를 지명하는 두번째 전당대회에서도 363,566명의 선거인단이 투표하며 역대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투표한 수치를 기록하면서 이명박을 대통령 후보자로 지명했던 한나라당의 제9차 전당대회 다음으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러한 흥행답게 20대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이 승리를 거두며 당선되었다.

2. 목록[편집]

2.1. 제1차 전당대회[편집]

새로운 미래가 온다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제1차 전당대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2021년 재보궐선거 후 4월 8일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사퇴하면서 새로운 당 지도부를 뽑기 위해서 6월 11일 치러졌다.
    2일간 시행했던 모바일 투표 첫날인 6월 7일은 25.8%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자유한국당이 2019년에 치른 3차 전당대회의 최종투표율인 25.4%를 뛰어넘었고 두 번째 날인 8일에는 36.16%를 기록하면서 2010년대 이후로 치러진 역대 보수 정당 전당대회에서 기존의 가장 높은 기록이었던 31.7%를 뛰어넘어서 역사상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ARS 투표가 진행된 3번째 날인 9일에는 42.4%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하였다. 어쩌면 마지막 투표일인 10일에는 50%를 넘는 투표율을 기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나왔으나, 45.36%로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치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 당대표 선거 결과 헌정사상 주요 정당 당대표로서는 처음으로 30대 당수가 나오게 되었다. 특히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으로서는 이례적인 결과였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다.[64]
  • 임기는 3차 전대가 시작되는 2023년 6월까지로서 대략 2년이 될 것이다.

2.2. 제2차 전당대회[편집]

바꿀 준비 되셨습니까?
Are you ready for change?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2021년 11월 5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를 지명하는 전당대회다. 총 12명의 후보자 중에서 8명을 추리는 1차 컷오프, 4명을 추리는 2차 컷오프를 거쳤으며 초반에는 윤석열을 사실상 추대하는 형식으로 흐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8월부터 홍준표의 지지율이 치고 올라오면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경선 종반부에는 대체적으로 민심은 홍준표, 당심은 윤석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11월 1~2일 이틀동안 모바일 투표, 11월 3~4일 이틀동안 ARS 투표가 실시되었다. 모바일 투표 첫날인 11월 1일에는 43.82%의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1차 전당대회에 살짝 못 미치는 투표율을 기록했고 둘째 날인 2일에는 54.49%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ARS 투표 첫날인 3일에는 61.46%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마지막날인 4일에는 63.89%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최종적으로 569,059명의 책임당원 선거인단 중에서 363,566명이 투표했다. 이 수치는 역대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투표한 수치이며 이명박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자로 지명했던 한나라당의 제9차 전당대회 다음으로 높은 투표율이였다.
  • 최종적으로 국민의힘 첫번째 대통령 후보자로 윤석열을 지명했다.
  • 국민적 관심을 끌며 성공적으로 흥행했던 1차 전당대회에 이어서 2차 전당대회에서는 TV조선에서 시청률이 6~8%까지 올라갔었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끝에 뽑힌 윤석열 후보는 한나라당의 9차 전당대회 때 지명 받은 이명박 대통령 다음의 투표율을 받은 것 답게 20대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통령 당선자로 뽑히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2.3. 제3차 전당대회[편집]

힘내라!
대한민국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제3차 전당대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국민의힘 2대 당대표를 뽑게 될 전당대회로서 2023년 6월에 열릴 예정이였지만 이준석 대표가 성상납 증거인멸 의혹으로 인해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자 조기전당대회 가능성이 높아졌다. 2대 당대표는 윤석열 정부 2년차에 치러지는 선거로서 중간 평가에 해당하는 22대 총선을 이끌 사령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는 2025년 6월까지로서 2년이다. 이후 3대 당대표가 2026년 치러질 9회 지선과 2027년 치러질 21대 대선을 책임질 것이다.
  • 8회 지선 이후 이준석 초대 대표의 지시로 최재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혁신위에서는 전반적인 개혁사안을 다루는 와중에 총선 공천 개혁에 대해서 다룬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2대 당대표를 노리는 차기 당권주자 중 한 사람인 친윤 핵심의 정진석 의원이 크게 반발하면서 비판했다. 차후 혁신위에서 가져올 정치 개혁안이 어떤 식으로 2대 당대표에게 반영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편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조원씨앤아이가 수행한 여론조사에 따르자면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출범 필요성에 대한 조사에서는 '긍정'이 51.3%, '부정'이 37.1%로 나왔다. '잘 모름'은 11.5%였다. 필요하다는 의견은 광주·전라(42.8% 대 46.0%) 지역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33.2% 대 55.3%)을 제외한 전 지역과 전 연령층, 국힘 지지층, 그리고 남녀 모두에서 높게 나왔다.
  • 아래는 2022년 7월 현재, 이준석 대표의 차기 당권출마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해진 시점에선 언론에서 거론되는 당권주자 목록이다.
  • 원외인 유승민[4선,원외] 전 의원이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계속 거론되고 있다. 여론조사도 꾸준히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저번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민심(민주당원 포함)으로 6대4으로 이긴 것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66] 문제는 당심에서 밀리는 상황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 원외인 나경원[4선,원외] 전 의원 역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거론되는 중이다. 여론조사에서 9% 내외의 성적을 보이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장관으로 갈 가능성도 있으나, 아직까지 본인이 얘기한 바는 없다. 문제로는 중도층들에게 이미지가 안 좋다는 것과 황교안 대표 시절 참패의 주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들 수 있다.
  • 현재 성남시 분당구 갑 지역구 국회의원인 안철수[3선] 의원도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유승민을 이은 2위, 혹은 유승민, 이준석을 이은 3위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 역시 본인이 시사한 바가 없다. 문제로는 '간철수' 이미지와 국민의당 출신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 2023년 3월 8일 김기현 전 원내대표가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그와 동시에 원내 당대표이다. 전신 새누리당의 원내 당대표인 이정현 전 당대표 이후의 6년만이다.
  •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도 당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해서 국정운영이 편해질 없이 힘들게 운영한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입당한지 1년 7개월만에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에서 모든 친윤 후보들이 모두 당선되어서 당을 완전히 장악하여 국정을 편하게 운영 할 수 있게 되었다.

2.4. 제4차 전당대회[편집]

NEXT 보수의 진보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제4차 전당대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5. 제5차 전당대회[편집]

국민을 향해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앞으로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6. 제6차 전당대회[편집]

2.7. 역대 지도부[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지도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8. 출신 대통령[편집]

2.9. 상임고문단[편집]

2.10. 조직도[편집]

파일:국민의힘 조직도.jpg
전당대회 산하 최고위원회의전국위원회, 중앙당 사무처 등이 소속되어 있다. 출처

2.10.1. 여의도연구원[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의도연구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로 1995년 2월 3일 민주자유당 시절 여의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새누리당 시절인 2013년 10월 10일 여의도연구원으로 승격되었다.

2.11. 청년의힘[편집]

파일:다른 뜻 아이콘_블루.svg   이 문서는 에 대한 문서입니다. 홍준표 전 대구광역시장이 개설한 청년 정치 플랫폼에 대한 내용은 청년의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청년의힘
영문명
Youth People Power Party
출범일
모정당
주소
대표
사무국장
대변인
상징색
빨간색 (#E61E2B)
파란색 (#00B5E2)
흰색 (#FFFFFF)
국제 조직
0.1. 개요0.2. 기원0.3. 현황0.4. 역사0.5. 성향0.6. 정강·정책
0.6.1. 정강0.6.2. 10대 신념0.6.3. 기본 정책
0.7. 상징
0.7.1. 당명0.7.2. 당색 및 로고0.7.3. 슬로건
0.7.3.1. 역대 슬로건
0.7.4. 당가
0.7.4.1. 지금 다시 하나되어 (2021 ~ 2022)0.7.4.2. 다시 일어나 승리하리라 (2022 ~ 2024)0.7.4.3. 국민의힘 응원가 (2024 ~ 2026)0.7.4.4. 다시 국민의힘 함께 대한민국 (2026)
0.8. 당사0.9. 소속 인물
0.9.1. 국회의원
0.9.1.1. 4선 이상 다선 국회의원
0.9.2. 광역자치단체장0.9.3. 기초자치단체장
0.9.3.1. 3선 기초자치단체장
0.9.4. 광역의회의원0.9.5. 기초의회의원
0.10. 계파
1. 개요2. 목록
2.1. 제1차 전당대회2.2. 제2차 전당대회2.3. 제3차 전당대회2.4. 제4차 전당대회2.5. 제5차 전당대회2.6. 제6차 전당대회2.7. 역대 지도부2.8. 출신 대통령2.9. 상임고문단2.10. 조직도2.11. 청년의힘2.12. 개요2.13. 상세
2.13.1. 출범 전
2.14. 정식 출범2.15. 현황2.16. 논란 및 사건사고
2.16.1. 무개념 포스터 논란
2.17. 지지 기반2.18. 경향2.19. 지역별2.20. 세대별
2.20.1. 1987년생 이하
2.20.1.1. 남성2.20.1.2. 여성
2.20.2. 1970년생 ~ 1986년생2.20.3. 1960년대생2.20.4.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
2.21. 직업별2.22. 집단별2.23. 도농별2.24. 선거에서의 유불리
2.24.1. 이점
2.24.1.1. 부울경의 지속되는 경합 우세2.24.1.2. 30대 이하 남성의 보수화2.24.1.3. 노년층의 지지
2.24.2. 복합적
2.24.2.1. 서울특별시의 경합 열세화2.24.2.2. 민주당계 주요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2.24.2.3. 아직은 통제불능인 부동산
2.24.3. 약점
2.24.3.1. 50대 이하에서의 패배2.24.3.2. 경인권과 충청권 대도시에서의 약세2.24.3.3. 2번의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한 과거청산 문제
2.25. 다른 정당과의 관계2.26. 개혁신당2.27. 진보당2.28. 사회민주당2.29. 기본소득당2.30. 조국혁신당2.31. 민생당, 민주평화당2.32. 정의당2.33. 녹색당, 노동당2.34. 미래당2.35. 공화당2.36. 새미래민주당2.37. 극우정당2.38. 비판 및 논란2.39. 역대 선거2.40. 기타2.41. 관련 문서2.42. 지지율2.43. 둘러보기

2.12. 개요[편집]


국민의힘 소속 당내 당 형태의 청년 조직.

정식 명칭은 청년국민의힘이며, 유럽의 보수정당들이 '당내 당' 형태로 청년 조직을 두고 젊은 보수 정치인들을 육성해온 시스템을 본떠 당이 젊은층으로 대표되는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더 귀기울여 듣고 청년 정치인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자는 취지로 창설되었다. 이는 창설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였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의 당내 쇄신 행보와 연계된 조치였다.

하지만 출범식 전후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지 얼마 안 되어 인지도와 당내 역할론은 거의 소멸하다시피 했고, 현재까지도 이름만 존재할 뿐 대표와 사무국장 등 주요 직책이 모두 공석인데다 활동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2.13. 상세[편집]

2.13.1. 출범 전[편집]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보수대통합'을 기치로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브랜드뉴파티, 같이오름, 젊은보수 등 범보수 정당들과 청년 보수 정당 창당준비위원회 조직, 시민단체들을 합쳐 신설 합당 형식으로 창당하였고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심판론을 내세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임했으나 2020년 4월 15일 선거 결과 103석에 그치며 참패하였다. 이후 황교안 대표 지도부가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같은 해 6월 1일 김종인 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였으며, 해당 비대위 체제에서 9월 2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꾸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총선 참패의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대대적인 당내 개혁과 쇄신을 천명했고, 이 작업의 일환으로 "그동안 보수정당이 청년층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홀했던 점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 당내외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청년 정치인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당내 청년당' 조직 창설을 추진했다. 이는 중앙청년위원회 등 당내 기존 청년 기구들과 한국대학생포럼 등 당 외부의 보수 청년 단체들을 아울러 '청년국민의힘'이라는 명칭의 독자적인 당내 기구로 구체화되었다.

독자적인 당헌당규(내규)를 만들고 자체적으로 전당대회를 열어서 대표를 선출하는 등 독자적으로 지도부를 꾸리는 당내 당으로 운영되는데 이런 청년대회국민의힘 전당대회 하루 전에 개최할 예정이며, 감사, 회계, 자문위원단, 대변인단 등이 포함되어서 구성될 예정이라고 밝혔다.[135]

독일 기독교민주연합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융에 우니온(Junge Union)과 영국 보수당젊은 보수당(Young Conservatives)이 존재하는 유럽의 청년 정치 환경을 본떠서 당내당으로서 독자적인 의결권과 사업권, 예산편성권 등을 가지는 당내 기구로서 자당의 성격을 가질 예정이다. 39세 이하의 당원으로 구성되고 18살 미만인 청소년과 정당에 가입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예비 당원제도도 도입할 것이라고 알렸다.

2.14. 정식 출범[편집]

2020년 12월 6일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 비대면으로 진행된 창당식에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직접 참석하였다. 다른 당이지만 같은 당내 청년조직인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회장경태 의원, 국민의당의 전국청년위원장인 구혁모[136], 청년정의당의 창준위원장인 강민진을 비롯한 청년 정치인들이 축사를 보냈다.

로드맵에 따르자면 당헌과 당규를 재개정한 후 청년의힘 내규를 확정짓고 청년의힘 당원 및 예비당원 명부를 정리한 다음 전당대회할 시기에 청년대회를 통해서 2021년 4월 청년의힘 당대표를 자체적으로 선출한다고 한다. 청년의힘의 제1호 법안으로 정치권의 다른 정당에서 논의된바 있는 청년기본법과 비슷한 청년정치참여 3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외 청년봉사단을 발족하고 청년정책연구소를 개설할 것이라고 한다. 대기업의 사내벤처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의힘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멤버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멤버십에 해당되는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국민의힘 당원 중 39세 이하의 청년이 참여가능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39세가 넘어가도 유예기간으로 5년이 주어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예비당원제도인 청소년당원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하는데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16세~18세의 예비유권자에게 다양한 참여 및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2.15. 현황[편집]

출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활동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가 되어, 현재 이름만 남은 조직으로 전락했다. 출범을 주도한 김종인 비대위는 2021년 6월 11일자로 물러났고, 그 뒤를 보수정당 사상 최초의 30대 젊은 당대표 이준석 지도부가 이어받으며 역할론에 힘을 얻나 싶었지만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면에서 당이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대선과 지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집권여당의 청년조직으로서 드디어 영향력을 발휘하나 싶던 찰나 이준석 대표가 징계를 받아 물러나고 연이은 비대위 체제의 갈등이 불거졌으며, 친윤 중심의 계파 논리가 당내 주류로 떠오르는 등 청년 정치 현안에 귀기울이는 분위기가 거의 사라지며 존재감과 인지도 자체가 크게 위축되어버렸다.

현재 대표와 사무국장, 대변인 등 주요 직책이 모두 공석이다. 그리고 당내 원로와 주류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에게도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사장된 조직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탈당하여 창당한 개혁신당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공천관리위원장으로 합류하고, 출범식 당시 초대 대표를 맡기로 했던 황보승희 의원은 개인가정사와 도덕적 문제로 국민의힘을 탈당했으며 이후 자유통일당에 입당하는 등 출범 당시 주요 인물들도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사실상 국민의힘의 청년 당원 조직이라는 대표성을 상실한 상태로, 중앙대학생위원회와 중앙청년위원회 등 과거에 존재했던 당내 기구가 다시 청년 대표 조직으로 간간이 활동하는 모양새다. 여러모로 정의당의 청년조직 '청년정의당'과 비슷한 결말.[137]

2.16.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2.16.1. 무개념 포스터 논란[편집]

2020년, 청년의힘의 전신인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 지도부가 페이스북에 게재한 자기소개 포스터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되었다. # # #

2.17. 지지 기반[편집]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을 정리한 문서.

2.18. 경향[편집]

2025년 기준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은 성별 무관 60대 중반(1962년생 이상) 이상과 30대 이하(1987년생 이하) 남성이다. 대구/경북에서 초강세[138]를 보이고 있으며 이와 함께 부울경, 강원도, 서울특별시 강남3구이촌동, 여의도동, 목동 등의 부촌을 중심으로 우세를 가진 정당이다.

지역별 지지도를 대략 나열하면 대구·경북 >> 부산광역시 & 경상남도 >= 강원도 & 울산[139] > 충북 & 충남 >= 서울[140] > 대전[141] > 인천 >= 경기도 > 세종시 & 제주도 >> 호남권 정도이다.

2.19. 지역별[편집]

2.19.1. 수도권[편집]

2.19.1.1. 서울[편집]

2.19.1.1.1. 개관[편집]
원래는 강남3구, 이촌동, 여의도동, 목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거의 더불어민주당의 우세 지역이였어서,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약우세 지역이었으나, 문재인 정부부동산 정책 중 종부세임대차 3법 등의 과도한 규제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서울의 보수세가 강해졌으며, 집값 높은 곳일수록 보수정당 지지세가 높다는 말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때문에 집값이 높은 한강 근처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

민주당이 서울에서 약우세였을 때에도 이러한 양상은 꾸준히 나타났는데, 실제로 시사IN에서 18대 대선부터 20대 대선까지 10년 간 모든 전국 단위 선거의 데이터를 놓고 지역 토지 공시지가 및 아파트 건물 공시가격과 선거 투표 결과의 진보-보수 성향을 분석한 결과, 일제히 지역 내 투표구별로 공시가격/공시지가가 높아질 수록 보수정당 계열 후보들의 득표 결과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이 관찰될 정도였다. 특히 21대 총선에서도 미래통합당이 참패했음에도 불구, 한 지역구 내의 읍면동에서 부동산 가격이 높을수록 득표율도 높은 것이 관찰되었을 정도다. 기사
2.19.1.1.2. 강남3구용산구[편집]
고소득층, 고학력층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 최고의 부촌이라 원래부터 보수세가 강한 강남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와 용산구는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게 매우 높은 지지를 보내는 중이며, 그 중에서도 강남구서초구는 압도적인 지지세를 보여주고 있다.[142] 영남 출신 비율도 높다. 용산구 또한 동부이촌동, 한남동부촌들의 존재로 인해 서울에서 강남3구 그 다음으로 강한 전통적인 보수 텃밭 지역이다.
2.19.1.1.3. 한강 벨트와 도심 지역[편집]
용산구 다음으로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한 곳은 강동구, 성동구, 영등포구, 재개발이 완료된 지역과 한강 인접한 지역, 중구종로구다.

성동구성수동 트리마제, 갤러리아 포레,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등 고가 아파트가 여러 곳 있는 성수동왕십리뉴타운(텐즈힐, 센트라스)이 있는 왕십리도선동, 그리고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 래미안 옥수 리버젠, 한남 하이츠가 있는 옥수동에서는 중산층 이상 계층의 비율이 높아 보수정당이 우세하지만, 이외 동네들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이 우세하다.

마포구마포 래미안 푸르지오로 대표되는 아현동이나 도화동, 용강동 같이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된 지역은 모두 윤석열이 승리해 보수세가 강해졌음을 보여줬으나 상대적으로 연립주택 비율이 높은 망원동, 상암동, 성산동, 연남동 일대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광진구재건축, 재개발된 아파트 단지가 많고, 소득수준이 상위권인 광장동, 자양3동, 구의3동은 보수표가 꽤 많이 나온다. 자양4동은 일부 지역이 신속통합구역으로 지정되었고, 롯데캐슬 리버파크 시그니처와 같은 신축 고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21대 총선부터 계속 보수진영이 승리하고 있다. 자양2동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많아 경합 양상을 보인다. 한강에 직접적으로 인접한 동은 모두 보수세가 강하거나 경합이다. 그 이외의 지역인 중곡동, 화양동, 군자동은 연립주택 비율이 높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영등포구에서는 전통적인 부촌인 여의도동과 직업군인 비율이 높은 신길7동에서는 보수정당이 거의 항상 승리하고 있고, 당산역 역세권 지역인 당산2동이 여의도에 인접한데다 중대형 평수 위주 고가 아파트단지 영향으로 보수정당이 우세한 편이다. 반면 나머지 동네들은 전반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편이다.

동작구에서는 흑석뉴타운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흑석동이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아크로 리버하임롯데캐슬 에듀포레를 비롯한 비싼 아파트들이 있어 종합부동산세의 영향을 꽤 받는 지역이다. 사당동7호선사당로를 기준으로 행정동마다 투표 성향이 갈린다. 7호선과 사당로 위쪽에 있는 사당2 · 3동은 고가 아파트들이 많은 관계로 보수 성향이 우세한 반면, 이남에 있는 사당1 · 4 · 5동은 다세대주택이 많은 관계로 진보 성향이 우세하다. 상도동, 노량진동, 대방동 또한 양당이 경합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강동구에서는 경제력이 좋은 명일, 고덕, 상일, 암사3동 등은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하다. 반면 강일동, 암사1동, 2동, 길동은 대체적으로 단독주택 위주인 데다 젊은 층들과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여 민주당계 정당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명일동이 보수정당 지지가 상당히 강한 편인데 40 ~ 50평대 대형 평수가 몰린 데다 이 지역에 위치한 대형교회 명성교회가 보수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2.19.1.1.4. 그 외의 지역[편집]
서대문구연세대 신촌캠퍼스, 이화여대가 있어 마포구와 동일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서대문구 내 주택지는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하다. 에서는 이성헌, 에서는 정두언이 당선되기도 했다.

성북구는 예전에는 경합지였으나 고려대 운동권 등으로 인해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각종 실책으로 국민의힘도 지지율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중구, 종로구, 동대문구 역시 집값이 상승한 아파트, 타 행정동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선 승리를 거두며 보수세가 많이 확대되었다.

양천구는 원래 보수세가 강했던 목동신시가지아파트 일대(목1·5동신정 1·6·7동)는 보수세가 강화되어 확실히 국민의힘 우세 지역이 되었으나, 그 밖의 동들은 경합지가 되어 전체적으로는 보수정당이 약간 우세를 보이게 되었다.

강서구도 한강에 접한 지역에서 지지세가 강한데, 에서는 승리하고 에서는 초접전 끝에 패배하였다. 그러나 관악구 을보다 더 진보세가 강해지면서 보수정당에게 험지로 변했다.

금천구, 관악구, 구로구는 반대로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하다. 이 지역은 호남 출신 비율이 높고, 진보정당 조직도 어느 정도 있는데다 서울대 캠퍼스가 있기 때문에 험지다. 그래도 구로구신도림동이 재개발되면서 국민의힘 지지세가 예전에 비해 강해지고 있다.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역시 호남 출신들의 비중이 높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물론 노원구는 중산층 비중이 높은 아파트단지가 많고 도봉구토박이 비중이 높아 어느 정도 보수 성향은 있지만 전자는 호남 출향민들의 표심이 강하다. 그러나 김선동이 인물론과 토박이의 지지로 승부를 걸고 있고, 종부세 이슈로 노원구와 도봉구에서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다.

은평구이재오 상임고문이 의원이던 시절에는 지역구 관리를 잘해서 어느 정도 강세였으나 정계은퇴한 이후에는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2.19.1.1.5.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예전에는 민주당계 정당의 경합 우세 지역이었으나, 2021년 재보궐선거 이후부터 보수정당의 경합 우세 지역으로 변모했다. 경기도가 보수정당의 우세 지역이였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민주당계 우세 지역으로 변모 중인 것과는 정반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50.56%,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5.73%를 득표하여 17대 대선 이후 2번째로 보수정당이 서울 대선에서 승리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14구에서 윤석열 후보가 앞섰으며,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30대조차 영남을 제외하면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이 가장 높았다. 이는 서울의 높은 집값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3040이 경기도로 이주하고, 보수세가 늘어난 20대가 서울에 꽤 거주하고 있기에 나타난 현상으로 본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압승해 4선을 달성했으며, 시의회 선거에서도 112석 중 76석을 흽쓸어 완승했다. 또한 구청장은 25석 중 17석을 흽쓸었다.
2.19.1.1.6.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편집]
그러나 윤석열 정부지지율이 점점 떨어지더니,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이 서울에서 37석을 차지해 압승했고, 국민의힘은 4년 전보단 나은 수준의 참패를 다시 마주했다.

서울에서 2년 전 대선과 지선 때 부동산 표심에 힘 입어 승리했고, 22대 총선에서도 여세를 몰아 20석 이상의 대박을 목표로 했던 것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의 서울 성적은 대실패가 명백하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정부 여당의 의석 예상수를 163석으로 잡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선에서의 득표율로 계산해봐도 서울에서 27석이 나오고 지역구 포함 157석을 얻기 때문에 과반을 살짝 넘기는 수준이였다는 것이다. 당장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범여권이 183석이였다.[143]

국민의힘의 서울권 패배에 특히 결정적이었던 선거구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10% 이상의 격차로 승리했던 이른바 '한강 벨트'(중구·성동구 을, 영등포구 을, 양천구 갑, 강동구 갑)이었다. 이들 선거구는 2020년대 들어 부동산 이슈가 크게 부각되면서 보수세가 강화된 덕에 국민의힘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이 지역구들도 결국 수도권 전반에서 나타난 민심 이반을 피하지 못하면서 국민의힘이 탈환에 실패한 것이다.

다만 경향신문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서울 지역 동별 아파트 실거래가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에 나타난 진보-보수 정치 성향의 상관관계는 0.76으로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0.74보다도 높아졌다. 즉 아파트 실거래가가 높은 지역일 수록, 국민의힘에 힘이 실린다는 것이 유력해진 것이다. 기사

오마이뉴스에서도 표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지만 부동산 표심이 점차 강화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을 정도다. 보수 성향 한국경제신문에서도 출구조사를 뒤집고 국민의힘이 당선된 선거구들의 공통점으로 고가 아파트 밀집지구가 존재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기사 중도보수 성향 머니투데이에서도 집값 비싼 동네일 수록 보수 성향으로 바뀐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재명의 득표율이 3년 전에 비해 1.4% 올랐고, 이준석이 9.9%가 넘는 득표율을 얻어 41.55%에 그친 김문수가 5.58%p 차로 2위에 그쳤다. 이재명의 과반 득표는 저지했으나, 개혁신당으로의 반민주당 지지층 이탈을 막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은 패했다.

세부적으로 25개 지자체 중 강남구서초구에서는 55% 이상을 얻으며 22%p 차이로 여유롭게 승리하였고, 송파구용산구도 강남서초보단 확연히 적은 차이지만 어쨌든 5%p 차이로 승리했다. 이는 서울특별시 내 고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 국민의힘 지지도가 높다는 특성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용성으로 분류되는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에서는 김문수 후보가 용산구에서는 전술했듯 아예 6%p 차이로 승리, 성동구에서는 패배하긴 했으나 그 표차가 4천여표에[144] 불과해 타 한강벨트 지역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마포구에서는 민주당세가 강하고 정청래가 있는 마포구 을 지역의 영향으로 인해 김문수가 9%p라는 적지 않은 차이로 패배하였다.

2.19.1.2. 인천[편집]

중구, 동구, 미추홀구, 연수구[145], 옹진군, 강화군이 지지세 강세 지역으로 꼽힌다.

중구, 동구, 미추홀구는 구도심과 황해도미수복 경기도 출신 실향민, 재한 화교의 영향으로, 연수구는 부촌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구는 영종도의 개발로, 동구는 재개발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고, 미추홀구는 윤상현 의원의 탄탄한 기반이 한 몫 하고 있다.

북한 접경지라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노년층이 많은 농어촌 지역인 강화군옹진군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인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둘 다 잃었으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지세를 완전히 회복했다.

남동구, 서구는 엇비슷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후보를 내면 항상 당선될 만큼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서구는 청라와 검단, 남동구는 논현, 서창에 신규 택지지구가 건설됨에 따라 젊은 층이 이곳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민주당 지지세가 근소한 차이로 더 강해졌다.

부평구계양구는 젊은 층과 서울 통근자들이 많다. 그래서 부평구는 경합 열세, 계양구는 열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부평구의 경우 단독주택과 고령 부유층이 많이 살았던 이 한때 보수의 텃밭으로 손꼽혔으나 2000년대 들어 서울 통근자들이 들어오며 민주당 지지[146]가 강해졌다. 도 본래는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로 인천에서 가장 큰 공장인 GM 한국사업장 부평공장의 영향을 받고 열세가 되었다. 계양구도 고령층이 많이 살고 있지만 충청·호남 출신 인구가 많아 민주당계 정당에 밀리고 있다. 본래는 보수 성향도 있었지만 2000년대를 기점으로 민주당계 지지세가 강해졌으며, 특히 계양구는 2010년 6월 재보선을 제외하면 전패를 이어오고 있다. [147]

경합 우세 지역이였던 서구, 남동구, 연수구가 점점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어, 이전처럼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21대 총선에선 텃밭으로 분류됐던 연수구 을[148]조차 여당에 내줬을 정도.

하지만 8회 지선에서 부평구계양구 등의 험지만 탈환하지 못했고, 이외 8곳의 구청장·군수와 의회 의석을 전부 빼앗아왔다. 심지어 인천시장 선거에서는 부평구에서도 전임 시장이 앞섰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원도시도서 지역 사수에 그쳤다. 또한 대선과 지선에서 압승했던 연수구를 모두 내주었다. 연수 갑에는 인천 촌구석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승연을 또 공천했고, 연수 을에는 대통령실 출신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결국 4년 전과 변한 것이 없는 막장 공천으로 12석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주었다.

21대 대선에서는 아예 도서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패했으며, 국회 선거구 기준으로는 14곳 전멸이라는 참패를 목도했다.[149]

2.19.1.3. 경기[편집]

2.19.1.3.1. 서남권[150][편집]
수원시는 의외로 토박이들이 많고 남경필 부자의 지역구였던 만큼 보수세가 꽤 있다. 역시 꽤 보수적이었으나 지금은 지지세가 많이 하락했다. 정미경의 지역구였으나 떠난 이후 지지세가 많이 하락했다. 당시에도 인물론으로 승부를 봤으나 21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은 남경필 부자의 지역구였고 구도심인만큼 텃밭이었으나 수원 자체가 진보적으로 변하며 지금은 수원에서 가장 선전하는 지역구 정도로 지지세가 하락했다. 은 수원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광교가 있지만 의외로 보수 정당 지지세는 다소 약했다. 또한 거기서 분구된 역시 험지이다. 19대 대선, 7회 지선과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4개 구에서 모두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뒀고, 20대 대선에서도 민주당 이재명이 4개 구 모두 승리하였으나 약간의 표심 변화가 생겼는데, 기존의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던 영통구가 광교신도시 일대의 집값 상승 등으로 이전에 비해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해졌다.

안양시는 심재철 전 의원의 지역구가 동안구 을이었고, 5선을 했다. 그러나 21대 총선에서 만안구와 동안구 을은 통합당 후보가 40%대 초반의 득표율에 그치며 낙선했다. 만안구이종걸의 20년 임기 중 보여줬던 모습이 좋지 못했다.[151] 이에 보수표가 어느 정도 나오기는 하지만 당선시킬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동안구 을평촌신도시 내에서 부촌인 귀인동, 범계동과 갈산동의 영향으로 보수표가 많이 나온다. 심재철이 꽤 의정 활동을 잘했고 민주당의 후보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5선까지 했지만, 2010년대 초중반 이후로 평이 나빠지며 20대 총선에서는 겨우 이겼다. 20대 국회에서는 논란이 더 많아졌고 평가는 더 떨어졌다. 안양교도소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해 이재정에게 패배[152]했다. 동안구 갑은 진보세가 강해 계속 고전하는 중이다.

부천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차명진의 지역구였고 당시 토박이, 고령자의 비중이 높아 보수 성향이 강했으며, 한나라당이 40% 이상을 얻었다. 물론 원혜영 의원의 지역구와 같이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김문수 - 차명진이 당선될 정도로 보수정당의 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들어 크게 논란이 되는 발언들이 나오며 민주당 지지는 강해졌다. 그리고 중동, 상동조차 오랫동안 교통편이 좋지 않았던 것 때문에,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실제로 득표율이 매년 떨어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

광명시도 신도시의 영향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개발이 거의 되지 않은 학온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민주당 우세 지역이다. 다만 광명역 주변 개발로 고가 신축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일직동은 보수세가 강해지고 있다.

안산시는 호남 출신이 많이 살고 있어 전체적으로 볼 때, 대부도를 제외한 지역은 보수 정당이 약세인 지역이다. 다만 인물론, 후보 분열로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153]은 있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는 차명진의 세월호 관련 발언이 문제되며 4개 지역구를 모두 내줬으며, 2년 후에 치러진 대선에서도 이재명이 넉넉한 차이로 승리했다.[154]

의왕시는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던 곳이었지만, 집값 상승으로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해졌다. 다만 아직까지는 민주당이 약우세를 보이고 있다. 과천시는 부유층, 고위 공무원의 비중이 높아 보수정당이 우세했지만, 국회의원은 인구가 더 많은 의왕시 영향으로 19대 이후로는 민주당이 가져갔으며, 20대 총선 이후에는 지지세가 더 커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이 드러나며 21대 총선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에 대한 평가가 나빠지며 20대 대선에서는 경기도 내 지자체 중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이 제일 높게 나왔다.

오산시는 안민석이 5선을 한 지역구로, 지역구 관리도 잘하며,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민주당의 지지세가 매우 강하다.

시흥시는 기본적으로 민주당이 우세를 보이긴 했지만, 보수정당도 인물론으로 선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배곧신도시 개발로 민주당의 초강세 지역으로 변했다. 실제로 20대 대선에서 비호남권 기초단체들 중에서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이 제일 낮았다.

군포시도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다만 산본2동은 고가 아파트의 영향으로 보수세가 강하다.

화성시는 과거 개발이 거의 안 된 시절에는 보수 정당이 우세했으나, 동탄, 병점 일대 개발이 이뤄지며 민주당의 지지세가 매우 강해졌고, 서부의 농어촌 읍, 면 일부에서만 우세를 보이게 되었다. 서청원이 지역구를 잘 관리했지만 친박 몰락 이후로 지지를 잃었다. 하지만 동탄 일부 지역이 부동산 폭등의 영향을 받고, 서부권에서도 개발이 이뤄짐에 따라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동탄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그동안 보수 정당 지지세가 높았던 읍, 면 지역에서의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평택시의 외곽 농촌 지역은 보수세가 강했다. 캠프 험프리스가 있어 안보 정책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도 한 몫 했다. 그러나 고덕 지역의 개발과 KG모빌리티, 삼성전자 공장이 있어 최근에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도지사 선거에서 김은혜 후보가 평택에서 이겼으나, 시장 선거에서는 인물론으로 민주당을 밀어주었다.
2.19.1.3.2. 동남권[155][편집]
성남시는 대체적으로 구시가지는 민주당이, 분당권은 보수정당이 선전하는 편이었다. 수정구는 성남시에서 보수정당 지지세가 가장 약한 곳이다. 그래서 13, 18대 국회를 제외하고는 민주당계 정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156] 신촌동, 고등동, 시흥동 3군데에서만 보수정당이 강세고, 나머지 동은 민주당이 강세를 보인다. 다만 송파구와 연계되어 있는 위례 일대의 집값이 오르며 위례동도 보수정당이 해볼만한 곳으로 변했고, 실제로 20대 대선에서도 윤석열 후보가 50%를 넘기며 승리하였다. 중원구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많아 약세다. 그럼에도 보수정당에 몸담던 신상진이 이곳에서 4선 의원이었다. 이는 신상진의 개인기와 범진보(민주당/민노당)계열 표분산이나 다른 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재보선에서 당선되었다.[157] 분당구는 경기도에서 소득과 생활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또한 강남3구와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다보니 비슷한 정치 성향을 보여주었고, 보수정당 후보가 많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는 박근혜와 친박 세력이 현역 의원을 컷오프하고 그 자리에 다른 후보를 공천했는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결국 두 선거구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이 드러나며 21대 총선에서는 지역에서는 김은혜가 당선되었고, 20대 대선에서는 구 전체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했다.

하남시는 개발제한구역이 많아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강했다. 2010년대 들어와서 미사강변도시와 위례신도시를 비롯한 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10만 명 이상 증가했음에도 보수정당이 우세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완전히 민주당의 지지 기반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때의 집값 상승, 송파구, 강동구 출신 이주민들의 증가로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회복되는 중이다.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초접전 끝에 패배했다.

용인시는 1990년대 이전에는 농촌 지역이라서 보수정당 강세 지역이었다. 그래서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이 2석을 모두 가져간 것 말고는 21대 총선 이전까지는 민주당이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면서 기흥구수지구에 젊은 층이 많이 유입되어 상황이 바뀌었고, 19대 총선까지는 보수정당이 유리했으나 용인시의 인구 증가로 을 선거구가 분리된 이후인 20대 총선에서는 2 : 2로 접전을 보였다. 결국 21대 총선에서는 갑 선거구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선거구를 민주당이 싹쓸이하며 민주당에 조금 더 유리한 지역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대 대선에서는 국민의힘이 초접전 승리를 했다. 수지구는 강남과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다보니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며 다시 보수세가 강해졌고, 기흥구에서도 집값 폭등으로 보수정당의 지지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택지 개발과 산업단지 확장이 진행 중인 처인구는 민주당이 접전 승을 거두었다.

이천시는 농촌 지역이 많아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지역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 연구소와 공장이 건설되면서 젊은 층들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어 보수정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경기도 내에서는 토박이 비중이 높아 총선에서는 국민의힘이 이겨왔다. 그러다 21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게 되었다.

안성시도 농촌 지역이 많아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강했으나, 공도읍의 개발로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해졌으며, 21대 총선과 20대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접전승을 거뒀다. 다만 농촌 지역은 여전히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인다. 그러나 8회 지선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전반적으로 승리했다.

광주시도 이천, 안성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강했으나, 택지 개발이 많이 이뤄지며 성남 본시가지에서 이주한 유권자가 늘어나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졌다. 면 지역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 21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잘못하여 갑, 을 모두 큰 차이로 보수정당에서 낸 후보가 졌다.

여주시도 농촌 지역이 많아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강하며, 정병국의 강한 존재로 새누리당이 패배한 20대 총선 당시에는 수도권 내 최다 득표율을 기록했다. 최근에도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하지만 7회 지선에서는 보수 분열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

전체적으로 도농복합 지역을 제외하고 대도시 권역들 중에서는 신분당선이 지나가는 분당구-수지구-광교신도시위례신도시 지역에서 경기도 타 지역들에 비해 국민의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이것도 경기도 내에서 그나마 해볼 만한 지역일 뿐, 분당을 제외한 수지, 광교, 위례는 국민의힘 우세지역이라기보다 초접전에 가까운 양상이다.
2.19.1.3.3. 서북권[158][편집]
고양시는 과거에 보수 텃밭이었으나 한때 진보 텃밭으로 변했던 지역이었다. 19대~21대 총선까지 한 번[159]을 제외하면 단 한 석도 얻지 못하였다. 덕양구는 심상정이 다선을 할 정도로 진보세가 두텁긴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 단일 후보를 내지 않았을 경우에는 국민의힘이 경쟁은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일산동구는 세 개의 구 중에서 보수정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160] 일산서구는 동구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다. 다만 8회 지선에서 일산서구의 경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0.04%p라는 매우 적은 표차로 져, 보수세가 확실히 강해졌음을 보여주었다. 진보세가 강한 덕양구도 시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접전승을 거두었지만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여유롭게 앞섰다.

파주시는 과거에 전방 지역이라 한나라당 시절까지는 우세했으나, 운정신도시 개발 이후에는 열세 지역이 됐다. 읍·면 지역에서는 보수세가 어느 정도 강하지만,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운정신도시에서 민주당에게 몰표를 주기 때문이다. 20대 대선에서도 10%p 이상으로 졌다. 하지만 8회 지선에서는 파주시를 제외하면 국민의힘이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이겼고 파주시에서도 국민의힘이 상당히 선전하였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고양시 일산서구, 덕양구와 파주시를 빼면 다 앞섰다. 그렇지만 22대 총선에서는 크게 패했고, 21대 대선에서도 크게 패해 굉장한 험지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농촌이 붙어있는 파주 을 지역구도 생각보다 격차가 클 정도이니.

김포시는 김포 도시철도 가지고 삽질을 한 유영록 전 시장 때문에 민주당에게 불리할 거라 생각됐지만, 김두관을 양산시 을로 보내버리고 민주당 득표율을 들고 나를 거라 생각한 유영록이 선거에서 보여준 실책[161]으로 인해 10%도 넘기지 못했다. 20대 대선에서는 이재명이 약 8%p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개표 결과를 보면 읍·면 지역은 보수 성향이 역시 강하지만, 시민 대다수가 거주하는 한강신도시 일대는 민주당 지지세가 훨씬 강해, 전체적으로 민주당이 어느 정도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
2.19.1.3.4. 동북권[162][편집]
의정부시는 2010년대 중반까지는 보수와 진보가 상황에 따라 승리를 골고루 가져가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대체로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의 인구 유입이 많은 다른 경기도 도시들에 비하면 안보에 예민한 특성상 보수 성향이 어느 정도 강한 편이었다. 실제로 양측 진영이 1:1로 붙었던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약 3%p 차로 신승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후 젊은층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민주당 강세 지역이 되었다.

동두천시는 군사도시답게 전체적으로는 보수성향이 강하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이 붙은 지역의 표심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며, 대선에서는 16대 대선을 제외하면 보수정당이 승리했고, 탄핵 대선이었던 2017년 대선 때도 경기도 전체 판세에 비해선 자유한국당의 표가 좀 더 나왔다. 하지만 2022년 대선에선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50%에 살짝 모자란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주당 대선 후보의 득표율을 갱신했고, 2025년 21대 대선에선 격차가 더 벌어졌다.

연천군은 최전방 지역에 있는 만큼 안보 이슈에 민감한데다, 농촌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높은 지역이다. 20대 대선에서도 윤석열 후보가 10% 이상 차이로 승리했으며, 두 차례의 탄핵 대선에서도 모두 보수 정당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구리시는 민주당이 대부분 이겼다.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윤호중이 압도적인 격차로 당선됐다. 그러나 2022년 대선에서는 격차가 3%p까지 줄었다. 구리시도 서울과 인접한 지역답게 인구 유출, 집값 상승 때문에 서울과 비슷한 지지세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5년 대선에선 다시 격차가 두자릿수 이상으로 벌어졌다.

남양주시는 2000년대 이후에는 20대 총선에 주광덕이 당선된 것을 제외하면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다. 물론 3회 지선 - 6회 지선은 한나라당 -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원래는 전통적인 경합지역이었지만 별내와 다산 개발 이후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163] 보수정당은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 22대 총선에선 그나마 강세를 보이던 남양주 병에서도 두자릿수 이상의 격차로 패배했고, 21대 대선에선 최외곽 조안면을 제외하면 모두 패배했다.

양주시는 한나라당 시절까지는 보수 텃밭이었으나, 양주신도시 개발 이후에는 단 한번도 당선되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긴 게 마지막 승리다. 2020년 총선에서는 거의 25%p 차이로 졌으며, 20대 대선, 22대 총선, 21대 대선에서 모두 패배했다.[164]

포천시는 북한과 가깝고 군부대가 많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매우 강하다. 7회 지선에서 민주당이 이긴 것을 빼고는 대부분 보수 정당이 승리를 거뒀으나, 최근에는 득표율 차이가 많이 줄었고, 21대 대선에선 결국 민주당이 깃발을 꽂게 되었다. [165]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포천과 관련이 있는 후보를 공천해 21, 22대 총선 모두 포천에선 승리했으나, 같이 붙은 가평의 보수세를 못 이기고 모두 패했다. 다만 격차는 크지 않았다.

가평군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보수 정당의 지지세가 강해서 2017년 대선에서는 도내에서 연천 등을 제치고 홍준표 득표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에도 경기도 전체에서 보수 진영의 득표율 1위를 하는 지자체이다. 덕분에 경기도 내 보수 진영의 최후 보루라고 불린다.

양평군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라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하다. 또 정병국의 지역구 관리도 한 몫을 하였다. 별칭도 경기도 내의 TK다. 그렇지만 21대 총선 이후부턴 민주당의 득표율도 어느정도 올라온 편이긴 하다.

2.19.1.4. 정리[편집]

간단히 말하면 더불어민주당과는 반대로 부촌 지역에서 우세하다. 부촌 이외의 지역에서도 중산층 위주의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약우세를 기록한다. 반대로 항구, 공단 등이 혼재되어 있는 서민층 거주 지역에서 열세다.

거주 인구가 가장 많은 수도권은 호남 지역에서 상경한 이주민들과 젊은 유권자들의 영향, 그리고 지역주의 구도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있어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강남3구를 제외한 서울특별시 대부분 지역과 수도권 근교 위성도시, 그리고 대부분의 신도시 지역에서 경합우세에서 경합열세를 보이는 편이다. 그래도 열세라고 해봤자 더불어민주당이 약간 앞서는 정도에 불과하며 정치 상황에 따라 항상 지지율이 변하는 곳이다.

그러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특히 인구가 제일 많은 경기도에서는 무려 12%p 격차로 참패했다. 20대 대선에서도 경기도에서 패했는데, 22대 총선에서의 참패로 인해 경기도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점점 험지가 되어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문수가 이재명에 무려 14.25% 차로 참패하면서, 경기도의 험지화가 더욱 짙어지고 말았다.

2.19.2. 부산·울산·경남[편집]

기본적으로 국민의힘이 우세한 편이다. 우세를 깔고 가되 부산, 울산, 창원[166], 김해[167], 양산, 거제[168] 등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세가 그렇게 강하지 않아 이 쪽을 중심으로 경합을 펼친다.

특히 낙동강 벨트, 울산 동구, 울산 북구, 창원시 성산구는 결코 만만한 지역이 아니다. 저쪽에서 야권 단일화가 나오면 대부분 넘어가는 수준이라 전국적인 격전지로 꼽히는 동네다. 실제로 국민의힘 지지세가 회복되었다는 울산 동구에서 38.36%로 권명호 후보가 승리했으나 득표차는 매우 적었다.

김영삼통일민주당 대표일 당시에는 야도였다고 하지만, 사실 이 것도 부산과 일부 경남 동부에서만 해당되며, 울산과 경남 서부는 당시 민정당의 텃밭이었다. 실제로 13대 대선 결과를 보면, 부산, 창원, 마산, 진해, 거제, 현 울주군에선 김영삼이 이겼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노태우 후보가 이겼다. 그러다가 3당 합당 이후 부울경 지역의 지지세력이 통합되면서 대구, 경북 수준의 텃밭이 되었다.

한동안 텃밭이었지만, 국민승리21 - 민주노동당 등의 진보정당이 생기고 이들이 부울경의 일부 공업 지역에 있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결정적으로 노무현의 지역주의 타파가 통하면서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이후로도 친노 세력의 적극적인 낙동강 벨트 공략이 통하면서 보수세가 많이 희석되었다.

대경권이강철, 이재용의 활약을 시작으로 18대 총선 당시 대구에서 유시민주호영을 상대로 32%를 얻고, 19대 총선 당시 대구에서 김부겸이 민주통합당 당적을 달고 40% 이상을 얻는 성과가 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수정당 지지세는 강했다. 그러나 부울경에서는 40% 이상을 얻었거나 양당 후보의 득표율 차가 10% 미만인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18대 대선에는 박근혜가 60%의 득표율을 얻어서 새누리당이 민주당을 이겼지만 문재인도 부울경에서 30% 후반대의 득표율을 얻은 적이 있다. 물론 박근혜가 경상도에서 전체적으로 강세를 보였지만 민주당도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박근혜의 탄핵 이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부산, 울산과 일부 경남 동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경남 서부에서도 일부 군 지역을 제외하면 3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다. 7회 지선에서는 부울경의 진보세가 정점에 이르렀다. 부산에서는 보수세가 많이 강한 구도심만 빼면 이겼다. 심지어 경남 서부 일부 지역은 민주당이 40% 이상을 얻었다.

21대 총선에서는 전체 40석 중 부산 남 을, 사하 갑, 북구·강서구 갑, 울산 북, 김해 갑, 김해 을, 양산 을을 제외한 지역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들은 대체로 30% 이상 얻었으며, 김태호강석진의 표 분산이 발생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민주당, 정의당의 단일화가 실패한 창원 성산에서만 10%대였다.

부산, 울산, 창원, 김해 등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40%를 기록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총선 직후에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후 완전히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폭주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민주당 심판 여론이 강했던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민주당 김영춘를 30% 이상 차로 꺾었다.

세 달 뒤에는 경남에서도 김경수 지사의 드루킹 사건 유죄 확정 판결로 수감됨에 따라 앞으로 부울경이 견고한 텃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8회 지선에서는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었다. 기초단체장은 경남 남해군수, 울산 동구를 빼고 국민의힘이 다 가져왔다.

22대 총선에서는 약간 변했는데, 낙동강 벨트와 공단지역에선 울산 북구, 김해시 갑/김해시 을, 부산 북구 갑은 아예 근소열세가 되었고, 창원시 성산구, 울산 동구는 백중세로 변했다. 나머지도 우세인 양산 갑사하 을을 제외하면 근소우위가 되었다. 그래도 낙동강벨트와 공단지역을 제외한 부산지역은 근소우세인 부산진 갑기장군을 제외하면 모두 우세이다. 울산 도심권에서도 울주군은 근소우세, 중구와 남구는 우세다. 중서부 경남에서는 창원의창과 진주갑은 우세, 나머지는 압도우세이다.

2.19.2.1. 부산[편집]

부산에서는 원도심인 서구, 동구, 중구금정구, 남구, 동래구, 수영구, 해운대구에서 강한 편이다. 남구, 동래구, 수영구, 해운대구는 부촌이며, 원도심과 금정구 지역은 토박이 중노년층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반면 낙동강 벨트 지역과 부산진구 갑[169], 일광, 정관 지역에 신규 택지지구가 개발된 기장군에서는 외지인들의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약하다.

2.19.2.2. 울산[편집]

울산에서는 원도심인 중구, 울산 소재 대기업, 중견기업의 직원,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남구, 농어촌 지역이 많고 노년층 비율이 높은 울주군 지역은 국민의힘이 강세다. 21대 총선에서는 김기현의 지역구인 남구 을은 국민의힘이 울산지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은 곳이다.

반면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강한 북구, 동구는 진보정당[170],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다. 실제로 20대 대선때 북구에서 이재명이 이겨서 윤석열 대통령의 부울경 싹쓸이를 막았다. 현재 남구, 중구, 울주군에서도 혁신도시 개발, 언양읍, 범서읍 등으로 외지인들이 유입되고 있어서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2.19.2.3. 경남[편집]

경남에서는 부산, 울산의 영향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청년층이 많은 경남 동부는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약하고, 대구의 영향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고령층이 많은 경남 서부에서는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강하다.

경남 동부에서는 국민의힘이 약우세인 지역이 많다. 창원시 성산구, 의창구, 진해구, 거제시는 대기업의 본사, 연구소, 공장과 진해 해군기지이 있어 경합우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양산시와 같이 신도시가 조성돼서 외지인의 비율이 높은 지역, 김해시와 같이 신도시, 공단으로 인해 외지인의 비율이 높으면서도 노무현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은 경합지역으로 분류된다.

반면 원도심이고, 토박이 비율이 높은 창원시 마산합포, 마산회원, 농어촌 지역인 거제시 내 구 거제군 지역, 통영시·고성군은 국민의힘 우세지역으로 분류된다.

경남 서부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지만 경남 서부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진주혁신도시로 인해 외지인들의 유입이 많은 편인 진주시여수시, 순천시, 광양시 등과 교류가 많은 사천시·남해군·하동군은 경남 서부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사천시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본사, 연구소,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과 같이 대구, 경북과 교류가 많은 지역은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대경권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함안군은 부산, 창원의 영향을 강하게 많이 받고 산업단지가 있어 젊은 층이 많아서 진보세가 강하고, 사천시·남해군·하동군은 민주노동당 출신인 강기갑이 승리한 적이 있는 지역구다.[171]

2.19.3. TK[편집]

대경권의 중심도시인 대구는 과거 제1공화국 시기만 해도 '조선의 모스크바'라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반이승만/반자유당, 진보 성향이 짙은 도시[172]였다. 비록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박정희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긴 했으나, 이는 보수양당제 구도에서 동향 사람인 박정희에 대한 지역 내 혁신 계열의 지지가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6.25 전쟁을 기점으로 피난민들과 챰전용사들의 가족들이 모여오기 시작하면서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자유당 지지세가 강해지기 시작했고, 박정희 정부 집권 이후 민주공화당의 성향에 맞추어 지역사회 분위기의 전반적인 보수화가 이뤄졌다. 이후 인혁당 사건으로 지역 내 혁신 계열이 와해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173]에 따라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확고해졌다. 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의 중진급 인사들이 연고를 많이 두고 있어 보수세가 제일 강하다.[174]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박상희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기에 박상희가 살아있을 적에는 진보정당이 우세했지만 동생인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후 보수정당 우세지역으로 변했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시종일관 박상희박정희 형제를 지지하는 것만큼은 변함없는 지역이라 나름대로 지조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기는 13대 대선에선 60% 이상이 노태우 후보에게 표를 던졌으며, 박근혜가 출마했던 18대 대선에선 무려 80% 이상이 박근혜에게 표를 던졌던 지역이였고, 탄핵 이후 치른 19대 대선에서도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홍준표가 47.1%를 얻었다. 그리고 20대 대선에서도 윤석열 후보가 73.9%를 얻었다.

19대 총선에서는 전 지역[175]에서 승리했으며, 21대 총선에서도 수성구 을을 제외한 전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나마 수성구 을도 통합당을 탈당했던 홍준표가 당선되었다. 사실상 전 지역 압승으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나름 이변이 난 지역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1990년 4·3 재보궐선거[176] 당시 서구 갑[177]에서 민주당 백승홍 후보가 42.5%의 득표율을 기록하였으며 1회 지선 때 포항시에서 민주당 박기환 후보가 당선[178]되었다.

20대 총선에선 민주당계 무소속이였던 홍의락[179]과 위에서 언급한 김부겸이 입성해 화제가 되었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의 7회 지선에선 구미시에서 민주당 장세용이 당선되고 포항시에서도 허대만이 40% 이상을 얻어서 선전했다. 대구에서도 동구, 북구, 수성구, 달서구에선 민주당 후보가 40% 이상 얻었다.

8회 지선에선 저 위에 언급된 포항, 구미에서도 70%대 득표율을 얻었고, 대구에선 무투표 당선되거나 최소 70%대 득표율을 받으며 보수의 텃밭인 게 재증명되었다. 광역의회, 기초의회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2.19.3.1. 대구[편집]

대구는 경북 기타 지역과 달리 젊은 인구가 많아서 보수세가 조금 약하지만, 원도심 지역인 중구·남구이재용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당시의 활약, 남구청장 재임시기와 환경부장관 재임 시기의 활약, 성실한 지역구 관리로 인해 원도심인데도 의외로 민주당 고정표가 30% 정도 나온다. 북구 갑토박이와 노년층이 많아 보수세가 강하긴 하지만 재개발로 부촌이 생겼으며 경북대 캠퍼스의 존재로 청년층의 인구 비율이 높다. 그래도 토박이, 노년층의 보수세 때문에 영향력은 크지 않다. 달서구 병은 원도심과 가까워 달서구 내에서 보수세가 가장 강하다. 특히 서구[180], 동구 갑, 수성구 을, 달성군[181]등은 기본적으로 60% 이상 득표하기에 민주당 등은 기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동구 을은 신규 택지지구 개발로 더불어민주당이 대구 내에서 30% 이상 득표한 지역 중 한 곳이다. 그러나 유승민의 지역구 관리 능력이 뛰어나 국민의힘의 득표율이 높다. 북구 을 또한 신규 택지지구의 영향으로 보수세가 약하다. 수성구 갑은 부촌이지만 젊은 인구, 외지인들이 많다. 달서구 을도 동구 을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 국회의원[182]이 지역구 관리를 잘 해 달서구의 다른 선거구에 비해 보수세가 약하기는 하나 대구는 대구인 만큼 국민의힘이 항상 60% 이상 득표한다. 이렇게 젊은 인구가 많은 지역에선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9.3.2. 경북[편집]

경북 기타 지역은 전체적으로는 대도시인 대구보다 노년층이 많은 지역으로 보수세가 강하지만 우촌좌도의 모습이 드러난다.

포항시는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고향이다. 또한 포스코, 포스텍의 영향력이 강하다. 북구는 그럭저럭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남구는 포스코 공장과 연구소 직원, 포스텍 교수, 외지인들의 표심이 보수세를 약화시킨다. 21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55.8%를 기록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경주시는 안동과 같이 역사가 깊은 도시다보니 토박이 비중이 높고, 국민의힘 vs 무소속 구도로 선거전[183]이 진행되며, 여기서 친박친이의 공천 대결도 있다. 그리고 권영국 변호사의 활약으로 대구 다음으로 정의당 지지율이 강하며, 타 대경권 선거구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역할을 여기서는 정의당이 하고 있다. 총선 때는 권영국과 무소속 후보의 존재로 인해 국민의힘이 과반의 득표율을 겨우 얻는 곳이다.

김천시는 군 지역 수준으로 보수세가 강하지만 혁신도시가 개발돼 외지인들이 유입되면서 조금이나마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표심이 혁신도시 대 농어촌과 원도심으로 대비되며, 혁신도시 지역은 구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안동시는 전통 문화나 불교와 유교 문화, 특정 가문의 영향력이 강하고 토박이 비율이 높아 무소속[184]이 자주 출마한다. 더불어 보수 성향도 크게 우세하다. 그러나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와 공장 입주, 경북도청신도시의 개발로 외지인들도 유입되며 표심에 변화가 보이고 있다.

예천군은 농촌 지역으로 전형적인 대경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경북도청신도시가 건립되고 중앙정부 기관경상북도청 및 관련 유관기관들이 입주하며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이들을 위한 주거단지가 있는 호명읍 만큼은 대경권 어느 지역보다도 진보세가 강하다.

구미시는 박정희의 고향이지만 7회 지선에서 시장직을 민주당에게 뺏기고 말았다. LG디스플레이의 파주 이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남유진김관용의 부정적인 여파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에서 구미시장을 차지한 이유가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과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으로의 보수세 분열도 있지만 남유진의 실책이 큰 원인이다.

반도체 산업 등 IT 제조업[185]이 발달한 은 원도심이라서 보수세가 강할 것 같지만 박정희의 고향이라는 점으로 인해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다. 은 농어촌 지역 + 도심 지역의 복합 선거구인데, 농어촌 지역의 보수세를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연구소와 공장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상쇄한다. 그래서 갑보다 을의 보수 성향이 더 약하다.

경산시는 도심, 압량읍, 하양읍은 대구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고 있고, 대학교가 많아 타지에서 온 청년층이 많다. 또 진량읍에는 산업단지가 있어 보수세가 조금은 약하다. 그러나 나머지 지역은 매우 보수적이다.

칠곡군은 공업 지대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아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다만 고령군, 성주군과 같이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때문에 보수세가 엄청나게 강한 것처럼 나타난다.

반면 상주시·문경시, 의성군·청송군·영덕군·울진군[186], 영주시·영양군·봉화군과 같은 경북 북부 지역과 경주시, 영천시·청도군, 고령군·성주군[187], 울릉군[188]과 같은 경북 남부 지역 내 중소 도시나 농어촌 지역의 경우 보수세가 강하다.

2.19.4. 호남[편집]

지역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인 80년대 중반까지는 보수여당인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이 매우 우세하였다. 1970년대까지 만 해도 일부 투표소에서는 보수여당(민주공화당) 후보가 90% 이상의 몰표를 득표하기도 할 정도로 보수정당은 호남에서 지지도가 높았다. 하지만 1987년 대선과 13대 총선 이후로는 보수정당에게는 사지와도 같은 지역이 되었다. 그래도 지지세는 있어서 소선거구제인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전북에서도 당선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정계에 복귀하고, 지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지지율은 거의 없어졌다.

다만 2010년대 중반 새정치민주연합의 극심한 갈등으로 전북은 새누리당 지지세가 커졌다. 심지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에는 전북에서 몇 석을 가져갈 가능성도 존재했으며 20대 총선에서도 전주시 을에서 정운천이 당선되고, 후보들이 호남치고는 꽤 높은 득표율을 득표했다. 호남치고 높았다는 것이지 타 지역에 비하면 현저히 낮았다. 또한 순천시에서 이정현이 지역구 재선을 하기도 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지율은 바닥을 찍었다.

2020년 한반도 폭우 사태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구례를 찾아 수해복구를 도와주는 등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있고 구례군 옆 지역구 당협위원장인 천하람, 이 지역과 가까운 국회의원 선거구인 사천시·남해군·하동군 하영제 의원은 물론이고, 김종인, 주호영, 정희용, 양금희, 강대식 등 당 지도부나 현역 국회의원들도 이 지역의 수해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김종인주호영 등의 당내 지도부는 전라도 공략을 고려하여 아예 정당 강령에 5.18 민주화운동을 넣어놨다. 추가적으로 과거와 달리 호남 지역에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제2 지역구 운동에 참여하면서 본인 지역구와 같이 관리하고 있다.

2021년 12월 7일, 호남의 유일한 非민주당 의원이던 무소속 이용호가 윤석열 지지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제21대 국회의원 중 국민의힘의 유일한 호남 의원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름값이 높은 조배숙과 이정현이 각각 8회 지선에서 선거비용 전액 보전이 가능한 15%를 넘는 득표율을 올리고, 주기환도 15%를 넘는 득표율을 얻었다. 3곳 모두 선거 비용 전액 보전에 성공했고, 일부 지역에서 비례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얻어 김종인이준석의 서진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인 듯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6년 만에 호남에 걸린 28개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게 되었다. 그러나 28명 중 20% 이상은 이정현과 정운천, 15% 이상은 이인숙, 10% 이상은 9명에 그쳤으며, 한 자릿수 득표율에 머문 16명은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호남권 전체에서 두 자릿수의 정당 득표율을 얻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후보 개개인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평을 피하기 힘들다. 특히 토론회에서 종이만 뒤척이거나, 술 먹고 토론 온 듯한 행태는 이를 본 유권자들이 눈과 귀를 의심케 했을 정도로 함량 미달이었다. 전 지역구 공천이라는 목표를 위해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을 컷오프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 적어도 민주당은 대경권에서 선거비용 보전선인 15% 정도는 넘은 곳이 상당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처참한 성과.

2.19.5. 충청[편집]

충청도는 김영삼, 김대중과 같이 삼김시대의 일원이였던 김종필의 근거지[189]였고, 김종필이 중심이 된 자유민주연합의 존재로 인해 타 지역들과는 정치공학적 구도가 다소 달랐던 곳이다. 정치 성향적으로는 3당 합당의 결과로 보수의 텃밭이 됐고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자당에서 갈라져 나온 자민련도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에 속하는 만큼 보수정당의 지지 기반이라고는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곧 민자당계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DJP 연합의 출범이 가능했던 이유도 이것이며, 17대 총선에서는 자민련이 몰락한 가운데 충청권 의석 대다수를 석권한 건 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이었다. 다만 지역적인 보수성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이회창 총재가 17대 대선을 바탕으로 자유선진당을 창당한 후에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자유선진당에 주로 표를 던지고 한나라당은 여전히 재미를 못봤다. 이후 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이 몰락한 19대 총선까지 와서야 민자당계 정당이 충청권에서 의석을 대거 가져가기 시작했으며,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으로 흡수되면서 현재와 같은 구도가 형성됐다.

대전은 농촌 지역도 어느 정도 있는 충청남도의 기타 지역들과는 달리 수도권의 30대 중반~40대 인구의 유입[190]으로 인하여 충남보단 민주당세가 어느 정도 강하다. 대전은 서쪽 vs 동쪽의 일명 대를린 구도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동쪽[191] vs 서쪽[192][193]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여러모로 전국 민심을 알아볼 수 있는 캐스팅 보트의 성격이 짙은 지역으로도 꼽히는데, 20대 대선과 이어진 8회 지선에서는 국민의힘이 연전연승을 거뒀으나 윤석열 정부 부임 후 R&D 예산 대거 삭감 등 실정에 다시 대전 시민들이 등을 돌리며 22대 총선과 21대 대선에서는 패했다.

세종은 전라도 다음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지역이 되었다. 연기군 - 공주시 시절에는 충청권 보수정당 세가 컸으나 외지인이 많아지며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다. 8회 지선에서 국민의힘 최민호가 윤석열 정부 허니문 선거의 효과를 등에 업고 세종시장에 당선됐으나 이것도 이춘희 시장의 낮은 평가가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향후 전망은 지켜봐야 한다.

충남13대 대선에서 김종필이 승리한 지역이였다. 하지만 3당 합당 이후 보수정당의 텃밭이였다가, 김종필DJP연합으로 김대중과 손을 잡으면서 민주당 우세 지역이었던 적도 있지만, 충청권 보수정당의 우세지역이기도 했고, 이들이 새누리당으로 흡수되면서 경합지역이 되었다.

충남에선 천안, 아산 vs 나머지로 가는데, 특히 노년층이 많은 홍성군·예산군, 김종필의 고향인 부여군, 원래부터 보수적인 청양군, 농촌이면서 고령층이 많은 태안군이 영향을 끼치는 서산시·태안군 등의 보수세가 강하다. 이 가운데 홍성군·예산군내포신도시가 개발 중이어서 보수세가 약해지고 있으며[194] 서산시·태안군의 경우 태안의 보수세가 커서 그렇지 서산만 놓고 보면 경합지역에 해당한다.

충북은 위의 두 지역과 달리 노태우가 승리한 지역이었지만, 위의 DJP연합의 영향과 경부선 벨트를 중심으로 전라도와 n86세대, 젊은층의 유입으로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낮아지더니 경합지가 되었다. 단 대전·충남과 다르게 보수정당과 민주당 양당이 경합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충청권 보수정당은 자민련의 전성기 시절이던 90년대 중반에만 텃밭이었고 그 후로는 그렇게까지 표를 많이 주지 않았다.

충북에선 보수세가 약한 청주 vs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비청주 구도로 이어지는 가운데, 증평군·진천군·음성군과 같이 청주시의 영향력을 받는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청주에서도 농촌 지역이나 원도심 비중이 높은 서원구상당구는 보수세가 강하다.

반면 나머지 시군, 특히 청주와 달리 상주시·문경시와 인접해있고, 이천시, 여주시·양평군과 같은 경기도 외곽지역의 영향력을 받는 충주시,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의 영향을 받는 제천시·단양군육영수의 고향인 옥천군이 포함되어 있으며, 영동군, 보은군과 같이 경상북도의 영향력이 강한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에선 보수세가 강하다.[195]

단 제천시나 증평군은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의 평가가 좋아서 어느 정도 보수세가 약해지고 있고, 괴산군도 소지역주의의 영향으로 민주당 표가 어느 정도 나오기도 한다. 거기다가 육영수의 고향인 옥천군은 오히려 지역주의 영향력이 강해[196] 국민의힘 계열이 보수정당이 승리한 건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 1번이다!![197]

2.19.5.1. 정리[편집]

20대 총선에서는 충청도 전체 의석 27석 중 새누리당이 14석, 민주당이 12석을 차지했다. 세종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복당했던 이해찬이 당선 후 민주당에 복당했기에, 사실상 14:13으로 야권에 근소하게 앞섰다.

21대 총선에선 대전세종에서는 전패, 충북에서는 8석 중 3석, 충청남도에서는 11석 중 5석으로 8석만 얻는 데 그쳤다. 특히 대전, 청주, 천안에서 전패한 것이 화가 되었다. 그나마 따낸 8석도 1곳을 제외하면 여당 후보와 10% 내외 접전을 보였다.

한편 20대 대선 후보로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은 윤석열이 선출되면서 훗날 충청도 민심의 귀추가 주목되었다. 실제로 대전은 5개 자치구에서 전승했고, 충북은 청주시 청원구와 진천군에서만, 충남은 천안시 서북구와 아산시에서만 패했다. 세종에서도 7%p 격차로 석패하는 등 선전했다.

8회 지선에선 국민의힘이 충청도 광역단체장을 싹쓸이하고, 기초단체장과 광역의회, 기초의회에서도 전부 압승했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선 다시 민주당에 참패했다. 대전은 7석을 전부 내주었고, 충남과 충북에서 각각 3석을 얻는 데에 그쳤으며, 세종도 2석을 전부 야권에 넘겨주었다.

21대 대선에서는 직전 총선 시기 패배한 공부청 탈환을 성공하였고, 금산옥천을 수성하면서 금산과 옥천의 대선 족집게 타이틀을 상실시키는 등 어느정도 성과를 보이긴 했으나, 직전 총선에서도 이긴 서산충주는 이번 대선에선 패배하였다. 또한 여전히 경부선이 지나다니는 대전, 세종, 천안, 아산, 청주는 모두 패배하였다.

2.19.6. 강원[편집]

강원특별자치도북한과 가까운데다 노년층이 많고 젊은층 중심으로 인구 유출이 많아 보수 성향이 강하다. 실제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60% 이상의 표를 얻은 지역이다. 그리고 7회 지선 전까지만 해도 기초단체장-기초의원-광역의원 선거에서는 특히 보수세가 강했던 지역이다. 실제로 6회 지선 때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를 보면 새정치연합 1석, 새누리 17석으로 압승을 하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보수정당은 영남권에 신경을 많이 쓰고 강원권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겼기에 불만이 강했고, 그래서 광역단체장 한정으로 지선에서 3회 연속으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198]된 바 있고, 17대 총선18대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한나라당과 엇비슷한 의석을 확보했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보수 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빠져서 강원도에서 문재인이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문재인 정부의 평화무드로 인하여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특히 춘천시, 원주시는 사실상 경합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민주당세가 강해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다시 보수세가 강해졌다.

세부적으로 보면 영서, 영동, 전방 지역의 정치 성향이 많이 차이난다. 영서 지역은 수도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춘천과 원주를 중심으로 청년층이 많이 유입되어 민주당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반면 영동 지역인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199], 강릉시, 속초시·인제군·고성군·양양군은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적고[200] 토박이 비율이 높아서 보수세가 강하다.

그리고 전방 지역인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등은 안보문제 때문에 보수세가 강하지만, 군복무를 하는 장병들의 표심에 따라 상대적으로 유동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전방지역 + 영동 vs 영서의 경향이 강하며, 21대 총선 결과도 이렇게 나타났다. 단 이광재의 후광으로 인하여 영동 지역과 전방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꽤 선전했다.

20대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을 13% 차로 꺾고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8회 지선에서도 광역단체장에선 김진태 후보가 평창, 원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이겼고,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선거도 승리했다.

22대 총선 기준으론 전방지역[201]과 영동 남부 지역 선거구[202]에선 표를 벌렸지만, 영서 도시 지역에선 더민주에게 밀리거나[203], 아님 근소우세 정도까지 좁혀졌다.

2.19.7. 제주[편집]

제주도수도권처럼 어느 특정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성향이 없지만, 그동안은 제주도 특유의 인맥을 중시하는 "궨당"[204]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이 궨당 정서는 1948년 제주 4.3 사건의 영향이 크다.

요즘은 궨당 정서가 약해졌다고 허나 여전히 제주도에서는 궨당의 영향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따라서 제주도 정치는 정당보다는 인물론이 더 중시됨을 알 수 있다. 총선에서 2000년대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약진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현오봉, 양정규(이상 6선), 현경대(5선)가 국회의원이었다. 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이었던 우근민이 도지사직을 잃고 탈당한 뒤로 민주당계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오랫동안 당선되지 못했다.[205]

그리고 7회 지선 때는 원희룡이 승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도의회 선거에서 압승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5명만 당선됐다.

지역별로는 서귀포시 읍면 지역[206]에서 가장 강하며, 이 는 세대 차이의 영향이 크다. 노년층이 많은 읍면 지역에선 지지율이 높아 도의원도 배출하지만 젊은 층이 많은 시내 지역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서귀포에서 지지도가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원희룡의 고향이라는 요인도 존재한다. 즉 서귀포시가 대체적으로 제주시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다. 선거구별로는 서귀포 - 제주 을 - 제주 갑 순으로 강하다.

하지만 원희룡의 실책과 외지인의 유입, 그리고 여러 가지 논란 등으로 인해 20대 대선에서는 11%p 격차로 민주당에 패배하였고 8회 지선에서도 제주지사 선거, 제주도의원 선거, 제주시 을 재보궐 선거 모두 패배하였다.

22대 총선에서도 3석 모두 민주당이 가져가며 보수정당 약세는 지속되고 있다.

2.19.8. 재외국민[편집]

재외국민들 대부분이 저연령층 유학생이거나 해외 근무 주재원인 경우가 많아 진보세가 강하다. 대경권 재외 투표도 민주당 후보 우세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한국계 미국인, 한국계 캐나다인 등 재외 동포 중 고령층들은 보수세를 보이고 있지만 재외투표는 대한민국대사관과 총영사관, 대표부외교공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들의 득표율이 낮다.

대체적으로 2030대의 유학생들, 해외 근무 주재원과 가족들은 진보세가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고령층들은 보수세를 보이고 4050들은 중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파독 근로자의 경우 60대 이상이라는 고령층이라는 점 + 산업화로 인해 보수세가 강하다.[207]

2030 중 보수세가 강한 집단은 실향민 후손이거나 북한이탈주민 출신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북한 정권을 피해 해외로 이주한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그곳에서도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미국, 일본이나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보수 정당과 해외 거주 북한이탈주민과의 교류가 많다.

2.20. 세대별[편집]

22대 총선 기준 70대 이상 남녀에서는 초강세, 60대 중후반 전체와 60대 초반 여성에서는 강세, 10대 후반 ~ 30대 중반 남성과 60대 초반 남성 그리고 50대 후반 여성은 근소 우위, 50대 중반 여성과 50대 후반 남성 그리고 30대 후반 남성에선 근소 열세를 보이고 있다. 50대 초반 여성, 50대 중반 남성 그리고 40대 초반 남성과 30대 여성은 열세이다. 나머지 10대 후반 ~ 20대 여성과 40대 중반~50대 초반 남성 그리고 40대 전체 여성에선 압도 열세를 보이고 있다.

20대 남성의 정치성향 역사를 정리하면 정부수립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고졸 이하는 절대치 민주진보 우위지만 대졸 이하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을 보였고, 대졸은 민주진보성향이 압도적이었다.(당시에는 6.25 전쟁을 겪은 대졸들도 민주진보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민주당계 정당도 이 때 당시는 반공보수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가 구성원들 중에서도 보수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긴 했다.) 당시만 해도 일제강점기6.25 전쟁 또는 북한의 도발을 겪은 세대의 남성들이 20대에 포함되어 있어서 보수성향이 있는 20대 남성들도 볼 수 있었다. 다만 2000년대부터는 학력 무관 민주진보 압도우위 성향을 보이다가 2000년대 말~2010년대를 기점으로 북한의 도발이 빈번해지면서 안보이슈 등에서 보수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보수정당 지지율도 어느정도 올랐지만 여전히 선거결과상 민주진보 압도우위였다. 하지만 젠더분쟁이 복구불능 급으로 격화된 2018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민주진보진영에 대한 반감이 강해져 진보세가 서서히 약해졌고, 2021년부터는 보수정당이 아예 압도우위를 차지했으며, 윤석열 정권 심판론이 주축이 되어 보수세가 약해진 현재도 보수 근소우위이다.

20대 여성의 정치성향 역사를 설명해 보면 과거 정부수립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절대적으론 민주진보 우위지만 상대적으론 당시 20대 여성들이 20대 남성들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이는 지금보다 가부장적인 사회였고 여성이 교육을 받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까지는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겪었던 세대의 여성들이 20대였기 때문에 보수성향이 어느정도 있었다. 그리고 여자대학교도 과거에는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시 여자대학교가 지금과는 달리 엘리트 성향이 강했고 구성원들이 보수성향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 다만 90년대 중후반부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영향으로 여성들의 본격적인 대학진학 및 취업을 하게되고 운동권이 몰락하면서 동세대 남성보다 진보성향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2008년 광우병 파동을 기점으로 진보성향이 더욱 강력해지기 시작했고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여러 사건사고들을 기점으로 진보성향이 더 막강해졌다. 그래도 이후로도 약 20년간 정치혐오 무당층, 정치무관심층이나 단순 반보수 성향을 보이는 정도였지만 젠더갈등이 복구불능 수준이 된 2018년을 기점으로 민주당 적극 지지층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2020년 당시 n번방 사건을 기점으로 민주당 적극 지지층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가(2018년 이후 젠더분쟁의 복구불능급 격화와 2020년 당시의 n번방 사건 등을 거치면서 보수진영이 여대에서도 입지도가 점점 줄어들어갔다.) 한 때 박원순 성추행 사건으로 무당층으로 다시 가는 듯 했지만 현재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다시 완전히 강해지고 게다가 학창 시절부터 페미니즘 교육을 받아온 세대까지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 텃밭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0대의 정치성향 역사를 정리하면 정부수립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겪은 세대도 30대에 포함되어 있어서 보수성향이 꽤 있었다. 90년대 중후반에도 86세대의 30대 유입으로 보수가 약해졌긴 했지만 절멸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완전한 진보성향을 보였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서는 무당층 비율이 약간씩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진보성향이 강력했다. 그러다가 2020년에 들어서면서 남성의 경우 부동산과 젠더갈등의 영향으로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고 무당층 비율도 조금씩 늘어났으며, 2021년부터는 남성 한정으로는 보수성향이 우세하며, 여성도 일부는 보수성향을 보이고 있다.

40대의 정치성향을 역사적으로 정리해보면 먼 옛날 정부수립부터 80년대까지는 보수정당이 명백한 우위였으며 1950년대생이 40대였던 90년대까지만 해도 꽤 보수성향을 보였고 1960년대생이 40대였던 2000년대 당시만 해도 캐스팅보트 성향을 보였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생이 50대가 되고 1970년대생이 40대로 진입하기 시작한 2010년부터 슬슬 진보화되기 시작하여 2010년대 후반부터는 민주당계 정당의 압도우위가 되다가 2020년대 후반부터는 50대에게 압도우위를 내 줄 예정이고, 성별 격차나 민주당세가 중화될 가능성이 있다.

50대의 정치성향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정부수립부터 80년대까지는 보수성향이 현 70대 이상 수준으로 매우 강력했고 90년대~2000년대만 해도 현 60대 수준으로 보수성향이 강력했으며 201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2015년까진 보수가 우위였다.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강해진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캐스팅보트 성향이었으나 2022년부터 진보성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1970년대생들이 유입되면서 진보성향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60대의 정치성향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정부수립부터 2010년대까지만 해도 매우 강력한 보수성향을 보였다. 2020년대에도 2024년까지는 압도적인 보수성향을 계속 유지했지만 586세대의 60대 진입과 더불어서 12.3 비상계엄 이후부터는 슬슬 캐스팅보트 성향으로 옮겨가는 듯 보인다.

70대 이상의 정치성향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정부수립부터 현재 2020년대까지 일관되게 매우 강력한 보수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2.20.1. 1987년생 이하[편집]

1987년생 이하의 경우, 젠더분쟁 격화 이전인 6회 지선 시기까지는 성별 및 직업과 무관하게 민주진보계열 압도우위[208]지만, 무당층이나 정치무관심층 비율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이 때도 약간정도의 차이는 있었다.[209]

민주진보계열이 압도우위를 차지하는 1980년대 초중반생[210]과 1970년대생 남녀와 다른점은 비교적 남북관계가 평화로웠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기 때의 기억이 희미하거나 없고, 반면에 연평도 포격전, 천안함 피격 사건,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서부전선 포격 사건과 같은 북한의 도발이 심했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내거나 청년기였기에 반북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211]

젠더분쟁이 본격적으로 튀어오르기 시작한 2015년 이후로도 국민의힘의 전신 중 하나인 새누리당 말기 ~ 자유한국당 중반 시절 때는 박근혜 정부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토가 매우 강하고 다른 세대에 비해 정치혐오 무당층 비율이 높았다.[212] 다만 2018년 하반기[213]부턴 이 세대에선 페미니즘 이슈가 정당 지지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에 남성에선 전세대 평균에 비해 매우 우호적이지만, 여성에선 전세대 평균에 비해 매우 열세이다.[214][215][216]

다만 윤석열 정부의 실책으로 취임덕이 발생하면서 2022년 하반기부터 전방위적으로 국민의힘 지지율이 떨어지더니[217],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각종 실책들이 누적되면서 20대 전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이 59.3%, 국민의힘의 득표율이 35.4%를 기록하여 국민의힘이 20대에서 열세인 것이 확인되었다. 30대 전체에서도 국민의힘의 득표율이 민주당보다 11%p 정도 뒤쳐지면서 열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세대에서는 성별 차이가 매우 상당하기에, 이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단에 후술한다.[218]

2025년에 치른 21대 대선에서는 범보수 vs 범민주진보로 보면 20대에선 범보수가 55%를 득표하며 범보수정당이 범민주진보 진영에 비해 11%p 정도 우위를 점하는 이변을 보여주었고, 30대에서도 범보수가 50%를 득표하면서 범민주진보 진영보다 미세하게 앞섰으나, 성별 차이가 2021년~2024년의 선거들보다 더 심해진데다 근본적으로 이런 결과는 개혁신당이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약민주~보수표의 상당량을 가져간 덕분에 나올수 있던 것임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보수(개혁신당)와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을 뺀 순수 친이재명계 민주정당(더불어민주당) vs 민자당계 보수정당(국민의힘)으로 하면 22대 총선 시기보단 차이가 좁혀지긴 해도 절대적인 20대 남녀 합산 득표율이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비해 10%p 정도 우위를 점하게 된다.[219] 그리고 30대 남녀 합산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비해 15%p 정도 우위를 보인다. 즉, 국민의힘은 청년층의 반민주진보 표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2.20.1.1. 남성[편집]

현 1980년대 후반생 이하 남성 중에는 북한소련 해체 이래 가장 강한 수위로 대남 도발을 자행했던 2010년대 초중반 당시에 군 복무를 했던 세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동세대 여성보다 반북 성향[220]이 매우 강하다. 그리고 전교조민주노총을 비롯한 각종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이 꽤 있으며, 뿐만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이고 안티페미니즘 성향이 매우 막강하기에 전장연, 여성단체, 환경단체 등 각종 시민단체에 대한 반감도 많다. 고로 국민의힘보수정당과 비교하면 페미니즘에 기반한 각종 여성우대 정책들과 북한에 우호적인 정책들을 펼치는 더불어민주당진보 정당들에 대한 반감이 강한 것이다. 또한 공정 이데올로기에도 매우 민감하다.[221] 이러한 경향은 2026년 기준으로 1987~1992년생 남성에서는 약우세[222], 1993년생 이하 남성에서는 강세이며[223], 이들 세대에서 지지기반이 상당히 있다.[22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에 있었던 이명박 정부[225]박근혜 정부 때는 무당층 비율이 많으면서도, 남북관계와 안보 이슈 등 일부 요인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 등의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제법 존재하였고[226] 안보 이슈나 대북문제에서는 보수성향을 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는 보수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보였으며, 당시 야당의 지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지지층으로 3분할되었다가 19대 대선 이후 바른정당유승민이 선거비 보존 반액선에 미달하고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이 터지며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으로 분화되었다.

그러다가 2018년 상반기엔 남북 단일팀 논란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당시 자유한국당의 이부망천 발언 등으로 인해 7회 지선 당시에는 20대 여성과 3040보단 덜하긴 해도 어느정도 반등하였다. 하지만 2018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탈원전 논란, 소득주도성장 관련 논란 등 정책 논란과 젠더 이슈, 정규직 전환 이슈들, 문재인 정부 낙하산 인사 논란 등 온갖 공정성 논란과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무죄 판결의 여파와 강릉선 KTX 탈선 사고 등의 사건사고[227], 통계청장 경질 논란,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논란, 환경부 블랙리스트문재인 정부의 각종 악재가 불거진 2018년 후반을 기점으로 재차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228]

손혜원 부동산 투기 의혹, https 검열, 설훈 20대 비하 사건, 중국발 미세먼지, 윤지오 거짓말 논란, 대북정책 실패, 국가안보 문제, 6.25 참전용사 비하에 대한 방관, 군필자 홀대, 각종 보훈 정책 논란, 김원봉 서훈 발언 논란으로 지지도가 계속 급감하더니 조국 사태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 논란, 우리들병원 대출무마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보배드림 곰탕집 성추행 판결 논란 등으로 문재인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더욱 낮아졌다.

다만 2021년 재보궐선거 이전에는 투표율, 정치적 영향력, 결집력 등지에서 86세대는 물론이고, 같은 세대 여성보다도 뒤쳐져서 보수정당에서도 관심을 안 가졌고, 오히려 친박 청산 부재, 탄핵에 대한 사과 부재, 태극기 부대 세력과의 유착 등으로 20대 남성의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았다. 그래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에 40% 가량 득표하여 조금씩 반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 이후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 논란, 추미애 아들 논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문재인 정부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 이용구 택시기사 폭행사건, 대북전단 금지법 등으로 인해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더니 북한 원전 추진 사건,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승진에 군경력 반영 금지 논란, 문재인 정부의 천안함 재조사 논란, LH 사태 등으로 문재인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더욱 높아졌다.

그 외에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참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국민의힘2021년 재보궐선거 전후로 극우 세력과의 손절, 친박 청산, 청년의힘 설립, 2021년 재보궐선거 캠프에 이준석, 하태경, 홍준연, 정병국, 유승민, 태영호 등 소위 2030 남성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정치인들이 참여하면서 20대 남성의 결집력을 강화시켰다.[229]

이는 국민의힘의 압승에 기여한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정치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거기에다가 2021년 6월 11일 전당대회에서 만 36세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역사상 최연소 당대표[230]가 되면서 청년 남성층을 중심으로 국민의힘 돌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어 이들이 향후 국민의힘에게 노년층 이상으로 압도적 지지를 보내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특히나 국민의힘 당대표로 이준석이 선출된 뒤로, 국민의힘의 주요 지지 세력으로 젊은 남성층이 편입되는 모습과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여론에서도 어느 정도 우위를 나타나는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로 제1차 전당대회를 전후로 이들 세대의 유입이 상당하다고 한다.#[231]

향후 행보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정치혐오로 인해 무당층이 적지 않았던 20대 남성표를 다수 흡수할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 한국 갤럽 6월 조사에선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 다음가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되어서 기정사실화가 되었다. 오히려 2030 덕에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기 때문에,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만큼 중요한 지지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박성민 청년비서관 임명 논란, 청해부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F-35 도입 반대 운동 간첩 개입 사건, 2021년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 논란, 2021년 법무부 과잉 의전 논란으로 지지율이 낮아졌고 거기다가 당시 당대표였던 이낙연 남자는 엄마 경험 못해 철 안 들었다.", "남성들이 군복무에 따른 피해의식이 있는 게 사실이다."는 망언을 여러번 하며 불난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바람에 20대 남성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세는 더욱 낮아졌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는 60대 남녀보다도 더 커졌다.

그런데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20대 남성들의 지지가 많은 홍준표유승민이 낙마하고 노년층의 지지로 윤석열이 당선되면서 지지를 철회하고 무당층·부동층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했다. 일부 당원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탈당하거나, 이럴바에는 이재명을 찍겠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이들은 윤석열, 특히 그를 둘러싼 친윤 세력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2021년 국민의힘 2030 당원 집단 탈당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는데, 20대 남성 지지층들은 '당원'이라 할지라도 국민의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탈당해버리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232]

그러나 인터넷 검열감시법 시행 사태, 김진국 민정수석 아들의 입사지원서 제출 논란, 인재교육원 레깅스 사건, 춘천교대 재학생 성범죄 무고 의혹 및 자살사건, 박나래 성희롱 논란, 서울 대림동 여경 논란진명여고 위문편지라는 초대형 사고가 일어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토 여론이 상당히 높아졌다. 심지어 2022년 들어 윤석열의 기존과 대비되는 파격적 행보로 윤석열에 대한 여론이 호전되고 있었으며 10대 공약중에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233]이라는 결정적인 공약 발표(제출)로 경선 당시의 홍준표 지지율 수준까지 끌어올려 10대 후반 ~ 2030 남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성공을 거두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가 20대 남성에서 58.7%의 득표를 기록했다.

그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논란 등으로 인해서 1980년대생 중반 이하 남성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더욱 떨어지고 있으며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더욱 상승을 하고 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1980년대 중반생 이하 남성들은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몰표[234]를 던졌다. 다만 투표율은 매우 낮았는데[235] 이는 1980년대 중반생 ~ 2000년대 초반생 남성들 중에서도 정치저관여층보다는 정치고관여층이 많이 투표한 것으로도 추정된다.

그러나 2022년 3분기부터 1980년대 중반생 이하 남성층의 지지율이 상당히 낮아졌는데, 대표적으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을 비롯하여 국민의힘 지도부가 1980년대 중반생 이하 남성층의 지지를 많이 받는 이준석을 토사구팽한 행위가 있고, 그외에도 여성가족부 폐지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와 병사 봉급 월 200만원과 같이 청년 남성층들이 좋아하는 공약들의 이행 여부와 관련된 잡음[236][237]들이 1980년대생 이하 남성층의 지지율 하락에 기여하였다. 2023년 초에도 주 69시간 근무제 논란,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가해 논란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적이 있다.

다만 여전히 더불어민주당보다는 지지율이 높다. 2022년 12월 당시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요구 파업 당시에 법과 원칙을 내세워서 업무개시명령 조치를 내리고 강경대응을 하면서 지지율이 잠깐 일부 오른 적이 있고, 2023년에도 2월~3월 초에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관련 이슈와 국민의힘 3차 전당대회로 인한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였다. 그리고 2023년 5월~6월 중순에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지지율이 약간 올랐는데, 김남국 가상화폐 보유 논란, 이재명-싱하이밍 회동 논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티베트 방문 논란, 대학교 예비군 불이익 논란 등의 여파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6월 말부터 윤석열 정부 수능 출제 방침 지시 관련 파문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논란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홀대 기조잼버리 부실 운영 논란 등 20대 이하 남성들이 예민한 분야들[238]에서 실책을 거듭하고, 여기에 202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참패까지 거치면서 다시 지지율이 꽤 하락했었다가 2023년 말에 잠깐 다시 지지율이 약간 상승하였는데 스튜디오 뿌리의 남성혐오 작업물 대규모 유통 사태를 비롯한 2023년 남성혐오 표현 연쇄 파동의 여파가 꽤 영향을 미쳤다.

2024년 1분기에도 약간씩 여러차례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했는데 2024년 2월까지는 더불어민주당 제22대 총선 공천 갈등의 반사이익과 윤석열 정부 의과대학 정원 대폭 확대 지침의 효과를 보며 지지율이 안정적이었으나 2024년 3월부터는 전술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갈등이 얼추 정리되고 역으로 국민의힘에서 공천갈등이 일어난데다, 런종섭 사건으로 채상병 관련 이슈가 재점화되고 초기에 지지율 상승 요인이었던 의대 증원 관련 이슈도 장기화되며 윤석열 정부 책임론이 제기됨으로 인해 다시 지지율이 낮아지기 시작해 결국 22대 총선 기준으로는 근소우위긴 하나 더불어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세부적으로 보면 윤석열 정부의 여러 실책이 누적된 결과, 굳건했던 20대 남성 지지층들이 이탈하면서 투표 양상이 변해버렸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20대 이하 남성에서 23%p에 달했던 국민의힘의 압도적 우위는 22대 총선 지역구에서 불과 2%p밖에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서 체면을 구겼고[239], 비례대표에서도 국힘 31.1: 더민련[240] 26.6으로 나와 대선 당시 23%p의 우위가 총선에서는 4.5%p 우위로 지지세가 전보다 줄었으며, 여기에 대안 보수정당으로 나온 개혁신당의 득표율 역시 대안 민주당계 정당으로 나온 조국혁신당보다 조금이나마 뒤쳐졌기에 더 이상 20대 남성은 보수정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님을 보여주었다.[241] 게다가 2024년 5월에는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직구 규제,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242] 등의 여파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더 줄어들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다가 이탈한 20대 남성들은 대다수가 더불어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243], 개혁신당[244]으로 이탈했으며, 극소수는 자유통일당[245]이나 새로운미래, 무당층(투표 기권)으로 이탈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20대 남성의 주요 지지층은 개혁신당의 창당으로 유동적으로 변한 이준석계[246]유승민 전 의원을 지지하는 친유 지지층[247]이 있으며, 그 외에는 친오, 친홍, 친안 지지층도 존재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역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일단은 어느정도 다시 높아졌는데 2024년 6월~7월에는 화성동탄경찰서 성범죄 누명 사건, 르노코리아 남성혐오 표현 사용 논란 등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책임소지가 없는 젠더이슈 및 국민의힘 4차 전당대회를 거치며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올랐고, 이후 2024년 응급실 대란, 명태균 게이트로 다시 국힘 지지율이 하락한 뒤에도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논란 당시 동덕여대생들과 외부 페미니스트들이 행한 폭력사태와 이를 옹호하는 일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248]의 행태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조금 상승하였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을 완전히 이탈하고 다시 2016년 4분기[249]~2018년 상반기처럼 20대 남성에서도 명백한 더불어민주당의 우위를 보이는듯 하였으나, 2025년 1분기 시점에서는 예상과 달리 의외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2024년 8월~9월 수준으로 복구되었다.[250][251] 다만 이게 지속되는 현상인건지, 일시적인 현상인건지는 이후 지지율 추세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다.[252][253] 그리고 여전히 정권교체를 원하는 비율이 높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2024년 12월에 비해서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찬성하는 비율이 높으며 무당층이나 유보층 비율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현재는 유동적인 정치성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254][255]

2025년 4월에 들어서서도 의외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낮은 편이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더 높은 편이었으나 대선 직전인 2025년 5월 들어서서는 개혁신당의 지지율이 압도적이게 되었다. 이 기간동안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의 감소와 개혁신당의 약진에는 선거 기간을 앞두고 여러 이슈에 민감한 상황에서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논란에서 불거진 더불어민주당의 외압 의혹 등의 영향과 호텔경제학 논란, 2025년 국민연금법 개정에 대한 반감 등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있다.

2025년 치뤄진 21대 대선에서 20대 남성층에서 3사 출구조사 기준 김문수 후보가 36.9%의 득표를 얻었다. 다만 페미니즘 정책에 반대하는 등의 이유로 국민의힘을 지지하던 유동층, 온건파 중 상당수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로 (37.2%) 빠져나간 것을 감안하면[256] 해당 계층에서의 보수화가 꼭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은 세대와 성별을 통틀어서 24%로 가장 낮았다.[257]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성별 무관 86세대 ~ 1986년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도도 1960년대생 이하 여성과 1960년생 ~ 1986년생 남성과 1987년생 이하 여성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 또한 이재명 정부의 인사 정책에도 상당히 부정적이며, 이춘석 주식 차명거래 논란, 2025년 제80주년 광복절 특별사면, 그리고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교육 정책과 2025년 미국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 대규모 이민 단속 사건 등의 외교 행보와 관련해서도 부정적 반응이 많다. 그리고 조국의 2030 남성 극우화 발언 논란으로 조국혁신당에 대한 비토 또한 높아졌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여전히 근소하게 1위이고[258] 개혁신당의 지지율도 꽤 있지만 무당층의 비율이 다시 매우 높아졌다. 다만 2025년 9월 들어서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약간 올랐는데 이재명 정부 검찰 수사권 분리에 관한 논란과 2025년 사법·선거법 입법 논란조희대-한덕수 회동설 진위 논란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 당시 이재명 냉부해 촬영 논란, 양평군 공무원 사망 사건,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의 제1연평해전 참전 수병 비하, 2020년대 캄보디아 범죄단지 사태, 김현지에 대한 논란김현지 비선실세 의혹, 민중기 특검의 주식 내부자 거래 의혹, 최민희 언론인 퇴장 지시 논란, 최민희 장녀 결혼식 청첩장 관련 논란, 최민희 방심위 비판 보도 차단 문의 및 사과요구 사건에 대해서도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매우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2025년 10월에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더욱 올라갔다.

이후로도 대장동 사건 관련 검찰 항소 포기 논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마재윤 발언 논란,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이재명 정부 공직자 핸드폰 조사 논란에 대해서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2025년 11월 들어서서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약간 하락했다.[259] 2025년 12월 들어서서도 마찬가지로 문진석 김남국 인사청탁 논란, 범여권 정치권의 허구연 총재 축출 시도 등에 대해서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반응을 계속 보이고 있는 중이며 범여권 일부 정치인들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발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또한 통일교 게이트 관련 더불어민주당 연루 의혹이나 이재명 환단고기 언급 논란, 이재명 이학재 업무보고 논란, 김민석 국무총리의 "5년 짧다" 발언 논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2025-2026년 원화 고환율 사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각종 논란에 대해서도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태도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내려갔다. 다만 국민의힘의 지지율도 1위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정체상태에 있으며 개혁신당 지지층이나 무당층으로 분산이 되어있다.

2026년 1월 들어서서도 이혜훈 기획예산처장관 후보의 과거 각종 논란[260], 강선우 김경 공천 헌금 의혹, 김병기 공천 뒷돈 수수 의혹, 2026년 국방비 미지급 사태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261] 이로 인해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했다. 다만 2026년 2~3월 들어서서는 여전히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1위이긴 하지만 국민의힘의 각종 공천내홍으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다시 하락 추세를 보였다. 물론 여전히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2026년 4월 들어서서도 이재명 이스라엘 비판 사건, 이재명 정부 미국 대북정보 공유 중지 사건에 대해서도 이재명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2.20.1.2. 여성[편집]

한편 1987년생 이하 여성도 역시 반북 성향이 다소 강하긴 하지만,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이유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욱 성평등한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지를 한 것[262]이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 때는 20대 여성들 또한 아무리 보수 정당이나 보수정권에 대해 반감이 많았어도, 민주당계에 대해서도 반감을 갖는 정치혐오 무당층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정치 무관심층이 많았다. 그리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의 20대 여성들도 어느 정도 조금이나마 존재했었다.[263][264]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19대 대선을 기점으로 민주당 지지층이 주류가 되었고 각종 페미니즘 이슈가 많이 불거지고 미투 운동과 혜화역 시위가 일어났던 2018년부터는 예전보다 지지층이 더욱 굳어졌고 완전한 적극 지지층으로 변했다.[265] 실제로 문재인 정부도 이에 호응을 해서 여성친화적인, 소위 페미니즘 정책을 많이 펼쳤다.

한 때 조국 사태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초반기에 지지율이 잠시 낮아지기도 했으나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철저한 대응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효과를 보면서 1990년대생 여성들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64%의 표를 주었다. 그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세가 더욱 견고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정부/정당이라고 외쳤던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오거돈 성추행 사건, 박원순 성추행 사건[266] 같은 성추문이 줄줄이 드러난데다가 여기에 결정적으로 코로나 3차 대유행,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 정인이 사건 관련 대통령 기자회견 발언 논란 등으로 지지세를 더욱 까먹더니 LH 사태와 같은 다른 정책에서의 대실책 등으로 이들 세대 여성의 지지세를 상당히 까먹었으며, 결국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으로 5%p, 여성주의 정당/진보정당으로 13%p, 국가혁명당으로 2%p 정도 이탈하고 여대 권역에서도 전부 오세훈 후보에게 밀리면서 대참패를 하게 되었다.[267]

그나마 이후 국민의힘에선 이준석이 당대표로 당선되며 20대 남성의 지지에 호응이라도 했지,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청년은 커녕, 입이 가벼웠고, 새천년 NHK 사건으로 논란이 된 송영길이 당대표가 된 이후 언행에 관련된 논란이 벌어짐으로써 무당층이 늘어났고 여성층 중에서 1959년생 이상 여성 다음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낮은 계층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보수정당에 대한 반감은 심하기에 정치혐오 무당층 비율이 대다수가 되었다. 이후로도 남페미 성향의 이낙연이 아닌 여러 논란이 많던 이재명이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본인과 가족들의 논란들이 드러나며 무당층의 비율이 더욱 높아졌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이준석 성상납 의혹과 이준석 여성 투표 의향 폄하 논란박지현의 등장 등으로 인해서 대선 투표일 직전 무당층이나 정의당 지지층으로 남아 있었던 2030대 여성의 표심이 민주당 측에 결집되었다. 그 결과로 제20대 대통령 선거/개표 결과/세대별에서 20대 여성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가 확인되었다. 다만 1980년대 중반생~1990년대 초반생 여성들은 1990년대 중반생~2000년대 초반생 여성들에 비해선 국민의힘 지지세가 높았다. 그리고 여대 권역 중에서 이화여대나 서울여대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앞섰다.

그러나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나 보좌관들이 저지른 성범죄 논란으로 인해서 다시 무당층으로 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만 수치상으론 아직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에 안정적으로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결국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예측과는 달리 20대 대선보다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다.[268][269]

그러나 의외로 여대 권역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전부 이겼으며 구청장 선거나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여대 권역에서 선전을 하거나 이긴 지역이 꽤 많았다. 그리고 전술했듯 1980년대 중반생 이하 여성들의 투표율 또한 상당히 낮았는데 기권을 한 1980년대 중반생 이하 여성들이 많으며, 또한 이는 1980년대 중반생 이하 여성들 중에서 정치저관여층보다는 정치고관여층이 많이 투표를 한 것으로 볼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한 2022년 하반기~2023년에 들어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 낮아지고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높기는 하지만 무당층의 비율도 많이 높아졌다.

이후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정춘숙, 권인숙 등 비명계, 친페미니즘 성향 인사들을[270] 가차없이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김준혁에 대한 각종 성 관련 논란이 터지면서 여성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가 떨어지고 무당층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였으나 막상 22대 총선 결과를 까보니 국민의힘이 1994년생 이하 여성에서는 압도열세, 1980년대 후반생 ~ 1993년생 여성에선 열세로 나오며 큰 영향이 없는것으로 밝혀졌다.[271] 총선 이후로 2024년 5월부터는 다시 무당층의 비율이 좀 늘어났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안정적으로 높은 지지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272][273]

12.3 비상계엄 이후로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져 이제는 아예 완전한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자 국민의힘의 사지로 자리잡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274][275] 특히 윤석열 파면 4일 전 발생한 장제원 전 의원 사망 사건 또한 악재가 되었다.[276]

2025년 21대 대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이재명 후보에게 여전히 높은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의외로 1년 전이던 22대 총선에 비해서는 득표율이 낮아졌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도 꽤 표가 갔고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도 꽤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의외로 1987년생(만 38세)~2002년생(만 23세)의 경우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전체 2030 여성 득표율보다 낮았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및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도 상당한 표가 갔다.[277][278] 반면 2003년생(만 22세)~생일 지난 2007년생(만 18세)은 더불어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줬다. 물론 그 쪽에서도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꽤 지지를 받았다.[279][280] 여대 권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전부 앞섰지만 이화여대, 숙명여대, 서울여대 권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에 미달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로도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은 추세를 보이지만 무당층 비율도 만만치는 않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김민석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 강선우 보좌진 갑질 의혹을 비롯한 강선우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에 대한 논란, 이춘석 주식 차명거래 논란, 전치영 공직기강비서관의 버닝썬 사건 성범죄자 변호 논란, 2025년 제80주년 광복절 특별사면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또한 조국혁신당 당내 성비위 사건이 터지면서 조국혁신당에 대해서도 점점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25년 9월 들어서서는 무당층 비율이 높아졌는데 조희대-한덕수 회동설 진위 논란이재명 대통령의 여적여 발언 논란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2025년 10월 들어서서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 당시 이재명 냉부해 촬영 논란, 김현지에 대한 논란김현지 비선실세 의혹, 최민희 언론인 퇴장 지시 논란, 최민희 장녀 결혼식 청첩장 관련 논란, 최민희 방심위 비판 보도 차단 문의 및 사과요구 사건 등으로 이재명 정부에 대한 반감도 적지는 않아 무당층 비율이 여전히 높은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11월 들어서서도 대장동 사건 관련 검찰 항소 포기 논란에 대해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2025년 11월 들어서서는 여전히 무당층의 비율이 많긴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약간 올라갔다. 2025년 12월 들어서서도 장경태 성추행 혐의 피소 사건, 문진석 김남국 인사청탁 논란, 범여권 정치권의 허구연 총재 축출 시도[281] 등에 대해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범여권 일부 정치인들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발의통일교 게이트 관련 더불어민주당 연루 의혹이나 이재명 환단고기 언급 논란, 이재명 이학재 업무보고 논란, 김민석 국무총리의 "5년 짧다" 발언 논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2025-2026년 원화 고환율 사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각종 논란 등에 대해서도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서 2025년 12월에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국정지지율이 다시 내려갔고 여전히 무당층 비율이 높은 성향을 유지하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여전히 높은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2026년 1월 들어서서도 이혜훈 기획예산처장관 후보의 과거 각종 논란, 강선우 김경 공천 헌금 의혹, 김병기 공천 뒷돈 수수 의혹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여전히 무당층 비율이 높은 성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2.20.2. 1970년생 ~ 1986년생[편집]

1970년생부터 1986년생까지는 노무현에 대한 우호도가 높은 세대로, 이명박근혜 9년의 기억으로 인해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이 가장 강한 세대다.

다만 1987년생 이하와는 달리 다른 이슈에 민감한데 바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교육 관련 실책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말기에 참여정부의 인기가 완전히 내려갔을 때 보수정당을 잠시 지지하거나 투표를 포기한 경우가 많았고 이후 한동안 잠시 무당층이 되었다가 다시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 되었지만 2021년에 다시 LH 사태와 오거돈 성추행 사건, 박원순 성추행 사건, 부동산 실책이 문제가 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선 꽤 적은 격차로 선방한 바 있다. 즉, 이념적으로는 일단은 민주당 계열의 굳건한 지지자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동산 문제 등 실생활적 문제에 따라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는 것.

2021년과 2022년 상반기에는 1983년생~1986년생들은 오거돈과 박원순의 성범죄로 치루어진 4.7 재보궐선거의 여파로 남성은 국민의힘 근소우위[282], 여성은 무당층~더민주 근소우위[283]로 돌아섰지만 1980년생~1982년생과 1970년대생은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세가 상당히 높았었다. 1970년생~1972년생의 경우는 본래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으나 이후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높아졌고 1973년생~1979년생만큼은 아니어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꽤 강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과 LH사태가 터지면서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에 다시 보수정당에 표를 줬다.

그러나 2022년 7월 윤석열 대통령과 박순애 교육부장관이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출 것을 추진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세대의 표심을 확실하게 자극하였다. 결국 박순애는 교육부장관직을 사퇴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박순애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기는 커녕 오히려 2023년 1월 초등학교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2025년부터 저녁 8시까지로 연장하겠다고 발표함으로서 노년층을 중심으로 힘겹게 끌어올린 지지율을 영유아~초등학생 학부모를 통해 완벽하게 까먹게 되었다.#

현재는 세부적으로 보면 1983년생~1986년생 여성들은 무당층의 비율이 나름 적지 않고, 1985년생~1986년생 남성들은 무당층의 비율이 꽤 있으면서도 대체적으로 민주당 근소우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1983년생~1984년생 남성은 대체적으로 민주당 약우세 내지 우세 성향을 보인다.이들의 경우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있지만 경우에 따라 무당층도 약간 볼 수 있고 1980년생~1982년생 남성의 경우에는 민주당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높지만 상황에 따라서 민주당 우세 정도로 지지세가 내려올때도 있거나 무당층 성향을 보일 때도 없지 않고, 1980년생~1982년생 여성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높지만 역시 상황에 따라서 무당층 성향을 보일 때가 가끔 있다. 남성 기준 1970년대생[284], 여성도 1970년대생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데 이 중에서 1973년생~1979년생 여성들이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추세다.

22대 총선 기준으로는 압도열세이다. 단 1983년생~1986년생 여성과 1980년생~1982년생 남성 그리고 1970년생~1972년생 여성은 열세이고, 1983년생~1984년생 남성은 약열세,1985년생~1986년생 남성은 근소열세이다.[285][286]

종합하면 12.3 내란 이후 반보수+친민주 성향이 더욱 강해지고 말았다.[287][288][289]

2025년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이 발생하자 국민의힘은 영유아~초등학생 학부모의 비중이 높은 이 연령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일명 하늘이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290]

21대 대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다만 세부적으로 보면 이 쪽도 차이가 약간씩 있는데 1985년생~1986년생 남성은 더불어민주당에 지지를 꽤 보내면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도 지지를 어느정도 보내줬고,1983년생~1984년생 남성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우세하면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 약간씩 지지를 보내줬다.1983년생~1986년생 여성들은 더불어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면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도 약간씩 지지를 보내줬다. 1980년생~1982년생 여성들은 더불어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그러면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도 살짝씩 지지를 보내줬고 1980년생~1982년생 남성들은 더불어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면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도 살짝씩 지지를 보내줬다. 1970년생~1972년생 여성들은 더불어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도 약간정도의 지지는 보내줬다. 1970년대생 남성과 1973년생~1979년생 여성은 더불어민주당에게 매우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매우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1970년대생이 매우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강선우 보좌진 갑질 의혹을 비롯한 강선우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최동석 인사혁신처장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보기도 했다. 또한 이들 연령대 중에 1980년생~1986년생의 경우에는 조희대-한덕수 회동설 진위 논란에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태도를 약간씩 보이고 있으며 최민희 언론인 퇴장 지시 논란, 최민희 장녀 결혼식 청첩장 관련 논란, 최민희 방심위 비판 보도 차단 문의 및 사과요구 사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반응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2025-2026년 원화 고환율 사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발의, 범여권 정치권의 허구연 총재 축출 시도, 이재명 환단고기 언급 논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통일교 게이트 관련 더불어민주당 연루 의혹,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각종 논란, 이혜훈 기획예산처장관 후보의 과거 각종 논란, 강선우 김경 공천 헌금 의혹, 김병기 공천 뒷돈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1970년대생은 여전히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굳건한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291]

2.20.3. 1960년대생[편집]

1960년대생, 소위 86세대는 아주 강력한 지지층은 아니지만 그래도 40대에 비해서는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인생주기에서 재산이 가장 많은 시기인 덕에 보수화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고, 20대 자녀를 두고 있기에 입시나 공정 등 20대와 관심사를 같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 분야에서 많은 실책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논란, 부동산 정책 관련 논란,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논란, 조국 사태 등도 86세대가 문재인 정부를 더욱 안 좋게 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논란도 86세대를 보수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다만 n86세대친박 성향이라고 볼 순 없는데, 애초에 n86세대는 군사정권을 위시로 한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 민주화를 이끈 세대다.[292][293][294][295]

결국 국민의힘의 86세대 지지층을 당내 계파로 갈라보자면 대부분이 상도동계, 친이 성향을 띈다. 아무래도 이들이 김영삼을 지지했던 것[296][297]도 있고, 이명박 정부 당시 40대로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 버스 환승제도, 자녀의 장학금 제도, 부동산 정책의 성공 등 민생 관련해서 많은 정책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298] 22대 총선 기준 근소 열세다.[299] 단 1960년생~1962년생은 남성 근소 우세, 여성 우세고 1963년생~1966년생도 여성은 근소우세다. 그리고 1967년생~1969년생 남성은 열세다.

최근 들어서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윤 성향, 한동훈을 지지하는 친한 성향,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을 지지하는 친오 성향, 안철수 의원을 지지하는 친안 성향으로 나뉘고 있다.[300][301]

12.3 비상계엄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에 이 연령대는 탄핵소추 직후 당시는 탄핵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고 국민의힘의 지지를 철회할 것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과 달리 탄핵반대비율도 올라와서 탄핵반대비율과 탄핵찬성비율이 엇비슷하게 되었으며 국민의힘의 지지율도 많이 올라와서 경합세를 이루게 되었다.[302][303]

21대 대선에서는 1967년생~1969년생 남성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상당한 지지를 보냈고 1963년생~1966년생 남성과 1967년생~1969년생 여성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상당한 지지를 보내면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에게도 꽤 지지를 보냈다. 1960년생~1962년생 남성과 1963년생~1966년생 여성은 더불어민주당에 약간정도 지지를 보내면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에게도 적지 않게 지지를 보냈으며 1960년생~1962년생 여성들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약간 더 지지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21대 대선 출구조사 기준 1960년대생은 이재명 후보를 52.3%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304][305]

다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2025년 제80주년 광복절 특별사면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2.20.4.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편집]

1950년대생 이상은 일제강점기 - 6.25 전쟁의 상처와 반공 교육, 박정희 시절 경제성장에 대한 향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이 많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옛날 자유당 지지층이나 민정계, 공화계 지지층 역시 이 쪽 비율이 상당수 많다.[306] 게다가 국민의힘의 주요 지지층인 실향민의 비율도 이 세대가 가장 높다.

물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엔 이탈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이후 잠시 지지세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가 한 때 다시 이탈하기도 했었지만, 2018년 후반 이후 지지세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해서 21대 총선에서 상당수 복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매우 강력한 지지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현재도 여전히 탄탄한 지지세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태극기 부대의 주류 계층이 이들 세대임을 알 수 있듯이 친박 성향[307][308]도 강하며, 친황 성향을 보인 경우도 많다. 현재 그 친박 세력들은 대부분 친윤으로 전향했다. 소위 박사모, 극성 윤석열 지지자도 1950년대생 이상 고령자가 많다. 여담으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알 수 있듯이 60대 중반 이상의 높은 투표율 + 압도적인 지지로 인해서 정권교체에 이루어 낸 주역 세대이기도 하다. 주로 친윤 성향의 지지층들이 많지만 무계파 지지층도 일부 있다.[309]

그리고 2004년 정동영을 시작으로 유시민, 김용민, 설훈, 윤호중에 이어 2023년 김은경, 양이원영까지 포함해서 걸핏하면 민주당계 정당의 정치인들이 노인 폄하 발언을 하는것도 노년층의 국민의힘 지지를 굳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22대 총선 기준 성별무관 1957년생~1959년생은 우세이며, 1954년생~1956년생은 남성은 우세, 여성은 압도우세다. 그리고 1953년생 이상은 성별무관 압도우세다.[310][311]

12.3 비상계엄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에도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남았으며 여전히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는 중이다.[312][313]

21대 대선에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 연령대에서도 지지가 약간 줄어들었는데 1957년생~1959년생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에게 상당한 지지를 보내면서도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 약간 늘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고 1954년생~1956년생 남성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막강한 지지를 받았지만 여기서도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조금씩 늘어났으며 1954년생~1956년생 여성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여기서 또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약간 늘어났다. 1953년생 이상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매우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여기서조차 더불어민주당의 지지가 약간 늘어났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비율이 꽤 높다.[314] 그러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세가 완전히 낮지는 않다. 다만 2026년 3월 들어서서는 국민의힘의 각종 공천 내홍으로 이 연령대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올라갔다.

그러나 되려 국민의힘에서는 이 점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왜냐 하면 인간의 수명이 정해져 있고, 그 때문에 이 세대는 한 해에 30만 명 남짓 사라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2030년대가 되면 86세대가 70대에 진입하기 시작하며 결국 박정희 시절 경제성장에 대한 향수가 있는 세대의 머릿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바로 아래 세대는 더불어민주당이 거의 먹다시피하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 1987년생 이하의 경우도 여성은 더불어민주당, 진보정당의 강력한 우세인데다, 보수정당의 우세인 1987년생 이하의 남성조차 개혁신당이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형국이라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2.21. 직업별[편집]

주로 주부, 학생, 무직, 자영업자, 1차산업 관련 직군에서 우세[315]하다. 반면 블루칼라[316]에서는 경합, 화이트칼라에선 열세이다.[317]

사실 가장 우세한 직군은 다름아닌 군인인데 이 직군은 직군 특성상 최전방에 살며 언제 교전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이라 대북정책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장성급 장교가 정치인이 되면 대부분 국민의힘으로 입당한다.[318]

2.22. 집단별[편집]

북한이탈주민, 실향민, 이산가족의 경우 보수성향이 우세하다. 일단 조선노동당조선인민군인권 침해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조선노동당과 조선인민군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319]

그리고 보수 정당에서 북한 인권 문제와 핵 문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보여주고 있고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320]로 인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들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와 같이 반중, 반북 성향이 강하다.[321]

2.23. 도농별[편집]

요약하자면 우촌좌도, 정확히 말하자면 호남을 제외한 농어촌 지역과 중소 도시, 대도시원도심, 부촌과 일부 중산층 거주지에서 지지도가 높고, 반대로 서민층 거주지, 신도시 지역에서는 지지도가 낮다. 이는 농어촌, 원도심 지역의 평균 연령대가 대도시, 신도시의 평균 연령대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다만 부촌, 중산층 거주지의 경우 평균 연령대가 비슷한 타 지역보다 보수 성향이 강하다.

새누리당분당되고,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인 시절에는 기존 지지층이 이탈하고, 기반이 많이 약화된 상태인지라, 강남3구, 원도심, 농어촌, 부울경 동부지역 등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고, 서부경남이나 대경권에서도 낮은 득표율을 얻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 자유한국당의 지지층 회복,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통합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경상도, 강남3구, 농어촌 지역, 원도심에서 지지세가 회복되었으며, 이는 실제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바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선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울산, 충북, 충남, 경북, 경남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호남에서도 10%대 중반을 득표해서 전국 정당으로 부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지속적인 실정으로 다시 21대 총선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갔다.

2.24. 선거에서의 유불리[편집]

2.24.1. 이점[편집]

2.24.1.1. 부울경의 지속되는 경합 우세[편집]

부울경은 인구 수로나 국회의원 의석 수로나 전국에서 수도권 다음으로 2위다. 3당 합당 이후 부울경에서 우위를 점했기에 민주당계 정당보다 언제나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전까지 궤멸적인 참패로 꼽히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영남을 철통방어하는 데 성공해서 121석으로 선방한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실책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부산 5석, 경남 3석[322]을 뺏기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치른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울경에서 대참패를 당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실책을 거듭하고, 부울경 광역단체장의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부울경은 다시 보수화되었고 결국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국적으론 대승을 거뒀지만, 부울경에서만큼은 6석으로 의석이 줄어들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비례대표 득표율이 40~42%로 올라서 20대 총선 수준으로 다시 회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게다가 총선 며칠 뒤 당시 부산광역시장이였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거돈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게 밝혀져서 사퇴하면서 치러진 2021년 재보궐선거에선 마침내 부산시장에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엄청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때부터 더불어민주당부울경에서 약해지고 국민의힘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20대 대선에서 대승을 거뒀고, 8회 지선도 세 광역단체장 모두 59%가 넘는 득표율로 압승하였으며, 기초단체장도 남해군과 울산 동구를 제외한 전 지역, 광역의원도 김해시 제8선거구와 남해군 선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올킬하면서 국민의힘에게 다시 돌아갔다.

현재도 TK에 이어 국민의힘 지지율이 2번째로 높은 곳이다. 22대 총선에서도 직전 총선과 득표율 양상은 비슷하지만 국민의힘 의석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등 여전히 강력한 텃밭이 되어주고 있다.

2.24.1.2. 30대 이하 남성의 보수화[편집]

사실 (호남을 제외한)전국정당이라 불리던 한나라당 - 새누리당 초기 시절에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고루고루 지지를 받았지만, 연령대로 보면 60대 이상에서만 압도우위고, 50대에선 우위, 40대 이하에선 열세였다. 민주당계 정당이 지리멸렬했던 2006~2008년도를 제외하면 40대 이하는 남녀불문하고 보수정당이 압도약세였다. 하지만 2030대에선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과 경제 정책 등 여러가지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이탈하여 30대 이하에선 성별 합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특히 20대 남성인 경우는 앞의 정책에 더해서 젠더 이슈에서도 보수적이며, 게다가 일부 민주당 인사들의 20대 남성에 대한 비하 발언과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승진 군경력 반영 금지 논란 등의 일련의 이슈 등으로 인해 60대 이상의 비토 못지 않는 비토가 나타났다. 게다가 이전엔 보수정당을 비호감으로 봤지만 이준석, 하태경의 행보가 이들에 친화적이였으며, 거기에다가 2021년 재보궐선거 이후에 국민의힘 전체가 이들에 대해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정당 지지율 자체에서도 국민의힘이 앞서나가기 시작했다.[323]

또 게다가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인해 이전까지 국민의힘을 비호감으로 바라보던 30대에서도 부동산 정책만큼은 민주당보다 잘해서 집값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 등으로 국민의힘을 뽑는 경우가 생기면서 30대와 한참 자녀 양육에 관심 있는 50대에서의 보수화에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30대 여성은 30대 남성에 비해선 국민의힘 지지세가 약하긴 하지만, 20대 여성의 그것보단 매우 높다는 것이 이를 증명했다.

특히 30대 남성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더해, 문재인 정부 초기 20대였던 남성이 30대로 유입이 되면서 보수화가 빠르게 되는 중이다. 실제로 이들은 20대 남성과 같이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표를 더 준 집단이다. 그나마 30대 후반에서 민주당세가 좀 남아있어서[324] 20대 남성에 비해선 약 10% 정도 낮게 나왔을 뿐이며, 이들이 40대가 되는 2020년대 중후반 쯤엔 더욱 더 보수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30대 이하 남성의 보수화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의 승리를 견인했으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면서 국민의힘의 대승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각종 실책으로 인해 22대 총선에서는 이러한 장점이 옅어졌는데, 20대 대선과 8회 지선 당시 20대 남성에서 각각 23%p, 33%p씩이나 우위를 차지해왔지만 22대 총선에서는 고작 2%p 우위를 보였다. 30대 남성의 경우도 20대 대선과 8회 지선에서는 각각 12%p, 19%p씩이나 점해왔던 우위가 22대 총선에서는 고작 1%p 우위를 보였다. 물론 저 결과도 전국민 평균보다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있다고 볼수 있으나[325], 이전에 비해서 보수성향이 옅어졌고, 이는 20대, 30대 전체에서 크게 패하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정치 성향으로 보면 22대 총선 이후에도 20대 남성의 보수성향이 33%로 진보성향(14%)에 비해 2배 정도 높기에 현재도 노년층 다음으로 보수 성향이 강해[326] 국민의힘이 청년 남성 지지세를 얻기에 환경적으로 유리하다.[327]

이러한 환경적 장점으로 인해 21대 대선에서는 20대 이하 남성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게 근소하게 밀려 2위이긴 했지만 0.3%p 차이로 매우 근소한 차이인 데다가, 3위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비교하면 12%p 이상의 우위를 점하고, 결정적으로 범보수 득표율 총합은 무려 74%[328]로 밝혀져 20대 이하 남성/1990년대생 남성 및 2000년대생 남성에서는 12.3 비상계엄에도 불구하고 보수세가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2021년 재보궐선거 이상으로 범보수 정당에 표를 주었으며 보수세가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중후반 출생이 껴있는 30대 남성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위이긴 했으나, 그 격차가 3%p 수준으로 크지 않다. 여기서도 범보수 진영이 둘로 분열되긴 했지만, 이 둘을 묶으면 득표율 합은 60%를 상회한다. 또한 연령이 아닌 년대생으로 본다면 김문수 후보가 2000년대생 남성에선 3%p 차이로 2위 이준석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 1990년대생 남성에서는 그 차이가 더 커져 2위 이재명 후보를 7%p 차이로 앞서 1위를 차지하였다. 그래서인지 종합적으로 본다면 보수세가 증가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연성 지지층들이 이준석을 많이 지지한 측면도 분명 있다. 그렇기에 9회 지선까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

현재 20~30대 인구는 86세대에 비해 거의 압살 수준으로 머릿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30대 이하 전체가 보수화 되더라도 이 세대는 당분간 선거에서 힘을 쓰기 어렵다. 1990 ~ 2009년 사이의 출생자들은 연간 40~70만 명이 태어났고 198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도 60만명 선에서 태어난 데에 비해 1950~1969년 사이의 출생자들은 연간 100만 명씩 꼬박꼬박 태어났고 민주당세가 강한 1970년대생이나 1980년대 초반생들도 70~100만명 정도가 태어났다. 그래서 인구수로 이전 세대들에게 밀리는 상황인데 문제는 그 중에서조차 남성만 보수화가 된 것이 큰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들 세대는 국민의힘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보기에는 상술한 바와 같이 무리가 있으며 보수정당의 지지가 동세대 여성에 비해 높긴 하지만 유동층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

2.24.1.3. 노년층의 지지[편집]

과거와 달리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노년층의 비중이 높아지고, 노년층의 투표율이 높아진 데다 문재인 정부 중하반기를 기점으로 20대 남성, 30대 남성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의 지지율도 약진하여 일부 선거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각종 논란으로 2030대 지지세가 다소 꺾였지만, 민주당 또한 젠더 갈등, 입시 비리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성 발언까지 터지면서 노년층의 표심을 갉아먹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총선과 대선에서도 6-70대 노년층의 표심이 여전히 국민의힘에 기운 것이 확인되었으며, 젊은 층의 표심만 회복한다면 향후 민주당과의 양강 구도에서 다시 우세를 점할 수도 있다.

2.24.2. 복합적[편집]

2.24.2.1. 서울특별시의 경합 열세화[편집]

전국에서 경기도 다음으로 인구와 의석이 몰린 곳이 바로 서울이다. 사실 3당 합당 이후에 위에 언급한 부울경에서의 우위로 인해 언제나 비수도권에선 우위를 점했지만 수도권에서 패하는 일이 많았고, 문재인 집권 전에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을 제외하면 항상 보수정당이 서울에서 패배했다.[329]

그나마 강남3구인 경우는 우위를 점했지만, 그 지역에서도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의 민주당계 정당의 고정 지지율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5~6% 정도 뒤쳐졌기에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전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서울특별시에서 패했고, 심지어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선 강남3구에서도 참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강남3구가 다시 돌아서고, 거기에다가 강북 지역도 보수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더니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성추문을 일으키면서 민주당을 비토하면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보수화가 증명되었고, 결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선 강남3구는 물론 강북의 몇몇 지역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낙승을 거뒀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광역단체장 선거에선 낙승을 거두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우위를 점했으며 광역의원에서도 2/3를 차지하면서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이와 같은 이점이 상당히 약화되었는데 2021년 재보궐선거, 제20대 대통령 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비해서 보수세가 약화되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경기도/인천보다는 여전히 낫다. 특히 국민의힘이 개헌저지선을 사수하는 데에는 부울경과 함께 한강벨트의 보수화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21대 대선에서도 5.58% 차이로 지긴했지만 경기, 인천과는 다르게 이재명 대통령이 과반 득표를 하는데 실패하면서[330] 경기, 인천보다는 보수세가 강하다는걸 증명했다.[331]

2.24.2.2. 민주당계 주요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편집]

현재 국민의힘과 앙숙인 더불어민주당이재명 대통령은 각종 사법리스크를 갖고 있다. 원내 3당 조국혁신당조국 대표도 본인의 가족 문제징역 2년이 확정된 후 수감되는 등 치명적인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333] 이러한 민주당계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는 여권의 지지세를 약화시키고, 보수 진영의 정권 심판론이 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집권 초기까지는 그래도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임기 중반에 실시된 22대 총선에서 참패하자, 민주당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가 선거에서 국민의힘에게 마냥 긍정적으로 작용하는가에 의문이 생겼다. 당장 22대 총선 당시에도 국민의힘은 조국과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부각시키며 이른바 "이조심판론"을 강조했지만, 되려 집권여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줄창 주장한 새로운미래도 대부분의 후보들이 선거비도 못건지며 처참하게 박살이 나버렸다.[334]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야당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에만 목메는 정치는 그만해야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의견들이 있다.
당이 하자는 거 거의 다 반대로 했다. '이조심판' 얘기는 입 밖으로도 꺼내지 않았고 당에서 내려온 현수막도 거의 안 걸었다. (김재섭 도봉구 갑 당선인)

운동권 심판으로, 더군다나 '이조심판론'으로 선거하는 여당이 어딨냐. 국민의 어려움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게 여당인데, 무슨 '이조심판' 이러고 있는가. (함운경 마포구 을 당협위원장)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도 "국민의힘의 지지층들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처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4건의 사법 리스크 중 어느 하나라도 유죄 판결이 나면 그의 정치적 앞날은 결정적으로 허물어질 것이고 이것이 꽉 막힌 정국을 푸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사법부의 구성이 보수층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게 돼있는 데다가 우리의 3심 제도는 당장 사법적 결말을 가져오기 어렵게 하고 있다."라며 야당 정치인들의 사법리스크에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러나 야당정치인들을 사법리스크로 압박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정작 비상계엄을 일으키며, 그보다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반역죄를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 이재명, 조국을 비롯한 여권 정치인들이 받고 있는 부패 범죄혐의는 10년 이내 징역형이 최대이지만[335], 윤석열이 받고 있는 내란우두머리 혐의는 최소 무기징역, 최대 사형이기 때문이다.

2.24.2.3. 아직은 통제불능인 부동산[편집]

기성 언론에서 부동산 문제를 철저하게 민주당 정권에서 폭등했다고 주장하며 부동산을 민주당 실패로 몰아가긴 하지만, 막상 이명박근혜 9년동안 부동산 시장은 차갑게 식어있었고 규제 완화에만 집착해 공급부족에 시달리긴 마찬가지였다.[336] 즉 어느 정권에서도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과열양상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고 시장과의 신뢰도 제로라 누구도 정부 정책을 믿지 않았으며, 늘 공급이 부족하고 늘 비쌌으며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졌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아직은 시장이 관망하는 이유 중 하나도 자꾸 투기꾼에 유리한 방향으로 지금까지 쌓여있는 배신의 역사로 인해 시장의 신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보수 정치권에게 부활 가능성은 그들이 부동산 관리 능력이 있다는걸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2.24.3. 약점[편집]

2.24.3.1. 50대 이하에서의 패배[편집]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권 심판론으로 인해 2021년부터 20%p 이상의 압도우위를 점해왔던 30대 이하 남성에서의 지지도가 2%p 우위로 심하게 쪼그라들고 2022년 당시 근소열세였던 50대에서도 22대 총선에선 추가적인 지지율 하락을 겪으면서 결국 18세에서 50대에 이르는 광범위한 연령대에서 모두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밀렸다. 세부적인 득표율 수치를 보자면 20대 이하에서 24%p[337][338][339], 30대에서 11%p[340], 40대에서 30%p[341], 50대에서 16%p[342]격차로 패했다. 광범위한 연령대에서 큰 격차로 열세이다 보니 60대[343] 및 70대 이상[344]에서 보수 지지층의 초결집[345]을 끌어냈음에도 결국 선거를 패한 것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흐름은 이어졌는데, 20대에서 10%p[346], 30대에서 15%p[347], 40대에서 51%p[348], 50대에서 44%p[349]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심지어 1년 전까지 국민의힘의 강우세였던 60대에서조차 꼴랑 1%p 우위 수준이 되어버렸으며, 70대 이상에서도 격차가 약간 줄어들었다. 이는 국민의힘이 노년층만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향후 2030 남성을 비롯한 젊은 세대를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불리한 선거 판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2.24.3.2. 경인권과 충청권 대도시에서의 약세[편집]

수도권은 과거엔 서울은 진보 경합우세, 경기도와 인천은 보수 경합우세였으나 재개발·재건축종부세 등 부동산 이슈로 서울은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보수화된 반면 서울 집값 상승의 여파로 청장년층이 대거 이주해온 경기도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져 구도가 뒤바뀌었다. 국회의원 60석이 걸린 최대 표밭 경기도가 열세 지역이 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물론 경기도에서도 부촌으로 꼽히고 집값이 가장 높은 과천, 분당, 판교는 보수정당의 우세하고, 수지, 광교, 위례는 경합우세이고, 그 외에도 경기도 역시 최근에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으므로 경기도 전체가 국민의힘에게 험지는 아니다. 실제로도 집값이 오른 민주당 텃밭 지역에서는 보수정당의 투표율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의힘에게는 어려운 지역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동탄신도시, 운정신도시를 위시한 2기 신도시가 개발됨에 따라 청장년층 외지인이 유입되면서 강고한 민주당 지지세가 형성되었다. 2016년부턴 더불어민주당이 이 지역에서 득표율차 10%p 정도로 보수정당을 꾸준히 앞서고 있다.

거기다 수도권과 PK 다음가는 제3의 경제지역인 충청권 역시 갈수록 부진하다. 이 지역은 늘상 수도권과 PK 사이에 끼어 발전에서 소외되었다는 이유로 충청 대망론을 비롯하여 충청도의 표를 포섭하기 위해 거대양당 모두 정치적으로 전력을 다하고 인구규모와 경제규모도 적지 않은데, 대전, 세종, 천안, 아산, 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권의 대도시에서 의석을 더불어민주당에 계속 뺏기고 있다.[350] 충청권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의 부재로 충청권 대도시의 민심은 점점 국힘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2.24.3.3. 2번의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한 과거청산 문제[편집]

명백하고 현존하는 미치광이 역적 대통령을 제명도 할 줄 모르는 국힘당은 이적단체이다. 썩은 새끼줄을 잡고 인수봉으로 오르려 한다. 미치광이를 끼고 도는 집단도 미치광이다. 곱게 미친 것이 아니라 더럽게 미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하고 있는 것의 결과는 전부 다 김정은이롭게 하는 겁니다.#

조갑제월간조선 편집장
12.3 내란으로 인하여 보수의 심장인 대경권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윤석열에 대한 전면적인 민심 이탈이 벌어지면서[351] 여론이 탄핵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 후 1차 표결이었던 12월 7일 딱 3인[352]을 제외한 105명 모두 표결을 거부하면서 1차 표결을 불성립시켰으며 이에 따른 위헌 논란이 잇따랐다.[353] 이후 12월 14일에 탄핵소추가 겨우 통과되고,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8인 만장일치로 인용되었으나, 여전히 윤석열을 옹호하는 여러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지속적인 부정적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데다 당 내에서도 이렇게 해선 다음 정권을 창출할 확률이 0%라는 의견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당명 변경이후 정권을 빼앗긴 2025년 21대 대선 이전까지 배출했던 대통령이 그것도 두 명이나 연달아 파면된 역사적인 기록을 남긴 데다가[354],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2013년 2월 이후로 무려 13년[355] 넘도록 임기 5년을 모두 채우고 정식 퇴임한 대통령이 없다. 한마디로 사실상 가장 치명적인 국민의힘의 약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첫 번째 탄핵은 최순실과의 엄청난 국정농단 부패로 탄핵에 어느정도 협조했으니 그렇다쳐도 두 번째 탄핵은 8년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친위 쿠데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으로 정당 단위에서 보여주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356]

이는 먼 미래를 내다보자면 지금 국민의힘은 뼈저리게 참회해야 할 마지막 기회는 만기퇴임할 대통령을 어떻게든 유능한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허하게 승복하긴 커녕 끝까지 과거청산을 거부하고 여전히 "탄핵이 부당하다" 식으로 막장 행보를 보인 이상, 유권자들 사이에서 '뽑아줘서 당선되어봤자 중간에 파면'이라는 인식이 생겨나 앞으로 그 어떠한 선거에서도 국민의힘 후보를 찍어줄 생각이 영원히 없어질 수 있다.

2.25. 다른 정당과의 관계[편집]

국민의힘과 다른 국내 정당과의 관계를 서술한 문서이다.

2.25.1. 더불어민주당[편집]

두 정당의 관계는 미래통합당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12.3 내란 이후로는 협치와 합의마저 전무한 최악의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357] 하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크게 패하면서 예전과 같은 반발과 견제가 물리적으로 줄어들었다.[358] 이에 따라 보수의 거대 여당 국정 견제가 크게 약화되었고, 미래한국당과의 통합 논의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 제21대 국회 원구성에서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우려 역시 상존하고 있다. 국회 주요 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표결로 처리해 미래통합당을 배제하는 방안, 각 상임위 배정에서의 불이익 등이 미래통합당에서 실질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요소들이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제21대 국회 개원 전인 29일까지 합당하는 절차를 다시 밟기 시작하며 더불어민주당의 보복안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에서 통합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협상은 결렬되었고, 결국 18개 상임위원회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독식했다. 그 후로 180석과 상임위 독식을 앞세워 주요 법안과 정책 등에서 제1야당을 노골적 패싱을 하고 있기에 협상이나 타협 등의 과정 자체가 실종되고, 미래통합당 시절보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고 볼 수 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인영 통일부장관 임명 등 인사 문제, 부동산 문제와 관련된 윤희숙 의원의 발언 관련 박범계 의원의 비판 등으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가고 있다. 또한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윤석열검찰총장최재형감사원장을 눈여겨보는 등 사이가 매우 안 좋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국민의힘으로 입당하여 각각 제20대 대통령 선거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미래통합당이 9월 2일 당명을 '국민의힘'이라고 바꾼 것에 대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명백한 이름 훔치기다. ‘국민의힘’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주장을 했다.[359]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에 등극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을 5년 만에 야당으로서 상대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여 투쟁 의지를 천명하고 있어 이전보다 더한 극한 대립이 예상되고 있었으며,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강행하면서 양 당의 대립은 더욱 극심해졌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 탄핵안을 적극 발의하고 표결을 권하자 대다수 국민의힘 의원들이 당론을 정하여 표결에 불참하였고 표결 불성립으로 부결되었는데,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이 가결될 때까지 매 주마다 탄핵안을 발의하겠다고 최후의 통첩을 날렸으며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어떻게든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이는 이재명을 방탄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맹비난을 보내고 싸움이 심해지면서 사실상 2000년대 이후로 양 당의 대립이 가장 극심해졌으며, 이 갈등이 당분간 거의 아물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협치로서 관계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물론 거대 양당이 최소한 넘지 말아야 선은커녕 끊임없는 정쟁을 이어가 한국 정치를 지속적으로 후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당연히 피할 수 없지만, 국군을 이용해 대한민국 국회를 공격하여 목숨을 위협했던 주범이 바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국민의힘이고,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한동훈 전 대표를 무시하고 계엄해제 표결에 소극적인 데다 내란 쿠데타에 어느 정도 동조했다는 점을 보아 더불어민주당이 명백히 쿠데타의 피해 집단이었다. 그래서 그 현실로 국민의힘 쪽이 더욱 압도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단 3명의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투표 거부 행위 및 집단 퇴장이라는 최악의 수를 둔 것 때문에 사실상 국민의힘이 완패를 한 것이 확정이라 볼 수 있다.[360]

결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해 정권교체를 허용, 사흘도 안 돼서 3대 특검이 모조리 통과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에서 친윤 강경파인 장동혁이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안 그래도 낮던 협치 가능성은 사실상 소멸했다.

2.26. 개혁신당[편집]

친윤 vs 비윤의 구도이기에 당연히 견원지간으로, 특히 전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이 당대표 신분으로 무도한 당정개입의 1차 피해자로 궐위를 당하며 내쫒기면서 창당한 정당이기에 더불어민주당 못지않게 사이가 더욱 험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때 당시 국민의힘이 집권여당으로서 최악의 대참패를 당한 이후부터 이어져 왔던, 채상병 특검으로 개혁신당이 진상을 밝혀 이를 통해 아예 더불어민주당과 손을 잡았을 정도로 집회에 동참하는 등, 윤석열 정부의 지속적인 실정 또한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래서 한때 국민의힘을 사면초가로 만들어 주는 역할에 가장 기여한 정당이었다.

2024년 공천 심사를 위한 여론조사에서 개혁신당을 '기타 정당'으로 분류하기로 전해졌다. 어차피 당 색채가 비슷하고, 지지층도 겹친다는 판단. #

개혁신당의 입장에서는 현재 당 내 세력들 중 계파와 무관한 유화적 확장과 포용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향해 자당 내 비판적 인사들마저 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쫓아냈다가 다시 오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에, 향후 정계가 어떤 급변을 맞을지 모르는 변수는 있으나 당 지도부가 유승민 전 의원과 접촉하거나 포용하는 수준이 아니고서야 개혁신당이 국민의힘과 도로 합친다거나 하는 주장과 논평들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게 선을 긋고 있는 상태다. 사실상 반윤계 잔류파 인사들에 대한 처우를 바로미터 삼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다시금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시각이 중론이다.[361]

그러나 12.3 내란 이후 탄핵으로 치러진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대로 3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 개혁신당이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총공세를 펴고 있고, 노란봉투법과 민생지원금을 모두 반대하는 등 국민의힘과 비슷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이른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같이 명백한 '위헌'이라고 강경하게 비판하는 등 #, 이준석 대표는 이런 법안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힐 정도로 # 결국 두 정당 모두 정치적 공세를 이재명 정부와 여당에만 집중적으로 퍼붓고 있다.

2.27. 진보당[편집]

진보당의 사실상 전신인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주도한 세력이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기에 사이가 험악하다.

진보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한 이후로는 현수막을 활용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강도높은 비판을 가하면서 관계가 더욱 험악해졌으며, 여기에 강성희 의원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강제 퇴장 사건까지 터지면서 상호 비난에 열을 올리는 지경이 되었다.

2.28. 사회민주당[편집]

2016년에서 2019년까지의 정의당처럼 더불어민주당과 적극 연대하자는 정파가 만든 정당으로, 성향을 감안하면 정의당보다도 더욱 적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래의 기본소득당과 연대했기에 이런 경향이 더욱 큰 것은 당연지사.

2.29. 기본소득당[편집]

원이슈 정당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진보정당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수혜를 받아 원내에 진입한 세력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패스트트랙에 강렬히 반발했던 국민의힘에게 있어 긍정적인 시각의 여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이 정강정책 1호로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고 발표했을 때는 환영했지만, 국민의힘의 중위 50% 제한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지급되어야 하는 기본소득의 정의에 걸맞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대부분의 국민의힘 당원들은 기본소득이라는 정책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데다, 기본소득당이 여당과의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기에 사실상 적대 세력이다.

2.30. 조국혁신당[편집]

강성 민주당계 정당으로, 당대표 조국부터가 국민의힘과 좋지 않은 과거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우호적이고, 국민의힘을 적극 공격하기에 관계가 매우 험악하다.

2.31. 민생당, 민주평화당[편집]

대다수 동교동계/호남계 의원들이 보수적인 경제 성향을 지녔지만 진보적인 대북관과 외교관을 가지고 있어 일부 사안에서는 의견이 겹첬으나 주로 대립하는 관계였고[362], 김정화 전 대표가 미래통합당 시절 미래한국당의 정당해산심판 청구서를 제출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민생당이 원외정당이 된 후 별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다만 국민의힘 측에서 박지원 전 의원의 국가정보원장 등용은 막아야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생당 출신의 인사들이 꾸준히 입당하거나 윤석열 지지 선언을 하더니, 결국 2022년 3월 8일 본투표를 하루 앞두고 합당 추진 계획이 발표되었다. 다만 지도부가 부재한 상태에다, 이내훈 최고위원이 비대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무효를 주장했다. 이후 당내 호남계 세력의 반발로 합당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는 기사가 나왔고, # 결국 합당 가능성은 소멸했다.

사실상 탈당 이후로 개별 합류한 인원은 거의 다 넘어온 상황이며, 민주평화당의 잔존 세력과는 아무런 교류나 관계도 없다.

2.32. 정의당[편집]

정의당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에 특정 사안에 대해서 적대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 국민의힘과는 적의 적인 관계이다. 다만 정책 노선이나 스펙트럼이 달라서 공조를 하지는 않는 관계. 본회의 표결에서도 국민의힘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정의당은 기권을 하는 방식이다.

다만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 아래에서 국민의힘은 계속해서 좌클릭을 시도하고 있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 우위를 내세워 국회 의결 과정에서 정의당도 패싱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제21대 국회에서는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생각에서인지 이전만큼 서로간의 관계가 험악하지는 않은 편이다. 류호정의 원피스 논란에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옹호했고[363],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문제 대처에 대해 정의당에 호평을 하기도 했으며[364], 가덕도 신공항 의제에선 PK 지역 국회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과 정의당이 같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정책적인 접점은 거의 없으나 더불어민주당의 견제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정권이 바뀌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등 여당과 대통령실이 반대하는 각종 사안에 대해 거대 야당 민주당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실제로 연합전선을 보이면서 새정부 출범 이후 줄곧 국민의힘에 적대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란 기조는 꽤 남아있어서 일부 의제에 대해선 연대를 하는 편이다.[365]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이다.

다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아래의 녹색당과 연대해서 만든 녹색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나고, 당세가 몰락한 정의당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2.33. 녹색당, 노동당[편집]

反민주당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서로 정치 노선이 이질적인 데다 국민의힘이 호모포비아적 태도를 견지하기에 사이가 좋지 않다.

2.34. 미래당[편집]

군소정당인 데다, 노녹정보다도 인지도가 낮아서 접점은 없다. 다만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오태양오세훈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2.35. 공화당[편집]

북한 체제 붕괴를 통한 북한 민주화와 탈북민 보호를 내세우는 원 이슈 정당인 남북통일당과는 사이가 좋다. 대화와 햇볓정책 대신 북한 정권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생각이 겹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의 태영호 의원과 김용태 위원장이 창당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이 당은 오세훈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북한 내부분열과 민주화로 인한 통일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 만큼 남북통일당의 생각과 비슷하다.

2022년 1월 13일, 윤석열 지지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으로의 통합을 선언했으나#, 합당하지는 않았다.

2.36. 새미래민주당[편집]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을 슬로건으로 내걸었기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탄핵 정국에서도 '내란 심판'을 외치며 탄핵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윤석열 파면으로 앞당겨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문수반명 빅텐트 전략을 내세우며 제3지대 정당들과의 단합 가능성을 거론하자, 새미래와의 연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전병헌 대표와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만남에서 '제7공화국 공동 정부' 추진안이 협의되었다. 뿌리부터 각각 보수정당,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념이 다르지만 개딸이 장악해버린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며 탈당한 반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이재명의 집권을 막기 위한 일념 하나는 같았던 것. 국민의힘은 '진짜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가진 정당'이라고, 새미래민주당은 '청렴결백한 후보가 이재명의 범죄 의혹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

유세 현장에서도 지지자들이 새미래민주당 티셔츠를 흔들거나 구호를 외치는 등 국민의힘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모습을 보였으며 선거일 전날 피날레 유세에서 이낙연이 직접 무대에 올라 '괴물독재정권을 막기 위해 공동정부를 구성하자'며 공약들을 김문수와 함께 연설했다. #

그러나 대선 패배로 공동정부 구성안이 무산된 이후로는 그닥 접점이 없으며, 현재는 각자 알아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2.37. 극우정당[편집]

표면적으로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특정 강성파 계열 인사들[366]과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박사모, 탄기국을 중심으로 한 탄핵 불복 초강경 친박 세력이 정치세력화를 외치며 창당했다. 하지만 다 갈라지면서 조원진우리공화당, 홍문종친박신당, 잔류 박사모-탄기국새누리당, 한기총김문수기독자유통일당으로 나뉘었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3.25%로 겨우 한 석 획득할 득표율을 기록하며 통합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황교안 지도부가 강성 지지층을 과하게 의식한 것이 의석을 깎아내리는 데에 악영향을 끼쳐, 통합은 소득이 없다는 관점에 설득력이 더해졌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친유, 범친이계 등은 친박, 친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격을 적게 얻어 영향력이 생기며 이들 정당과의 합당은 불가능한 얘기가 되었다. 당장 원내대표 선거에 나온 주호영이나 권영세도 중도우파 비박 인사인 데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파트너인 이종배 의원도 옅은 계파성을 지닌 인사다. 주호영 원내지도부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모두 중도층 공략에 신경을 쓰고 있는 입장이라 이들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그나마 있는 이들의 우군인 친박, 친황은 당장 패배의 원인으로 회자되고 있고, 심지어 남아 있는 친박계들도 이미지를 위해서 거리를 두거나 조용히 있는 상황이다.

2020년 8월 15일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 이후에 전광훈 일당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아서 계속 비판을 받고 정당 지지율도 5% 이상 떨어지자 민경욱, 김진태 등 강성 친박을 극우세력이라고 공격하였으나 정작 민경욱은 아직도 통합당 전국위원회 부의장이기에 자충수라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367] 이후 김종인 비대위의 보수색채 완화와 적극적인 중도층 공략으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지도부가 들어섬에 따라 극우세력과 통합하거나 연대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워졌다는 이준석 지지자들의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중 친박신당의 경우, 합당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등장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 이후 2023년 10월,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에서 우리공화당과 단일화하였다. 김기현 체제 이후 달라진 기조. 그러나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여전히 당내 주류 세력은 구 친박 및 자한당계를 거쳐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정국 이후까지 친윤에 잔류한 강성파들이 의총을 비롯한 당권을 장악하고 있고 이들과 자통당계는 여전히 이따금씩 손을 잡고 교류하는 모습들이 잦은 편이다.

문헌일 구로구청장의 주식 백지신탁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치뤄진 2025년 재보궐선거에서 구로구청장 후보에 자당의 귀책사유로 치뤄지는 선거로 후보를 내지 않자, 윤상현 의원이 자유통일당 이강산 후보를 지지유세에 나서자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21대 대선 후보로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이 경선에서 선출되고, 한덕수와의 경선 후단협 논란을 거쳐 최종적으로 후보 등록이 확정되었다. 김문수 후보는 직전 당적이 자통당이었고 실제로 캠프 인선에도 석동현 변호사를 비롯한 자통당계 인사들을 여럿 기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던 만큼, 자유통일당과의 밀접한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김상현 자유와혁신 최고위원, 최창원 내일로미래로 대표와 함께 세이브코리아의 집회에 참석하는 등 자유와혁신, 내일로미래로와의 관계는 우호적이다. #
[1] 2026년 1월 12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당명 변경이 결정되었다. 당원 의견 수렴과 국민 공모, 당헌 개정을 거쳐 설연휴 기간 복수의 당명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최고위 보고를 거쳤으며, 2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로 당명 변경이 연기되었다.[2] 2020년 7월, 시원스쿨로부터 '남중빌딩'을 480억 원을 들여 매입했으며, 2023년 1월 경 '남중빌딩'의 건물 명칭이 '국민의힘'으로 변경되었다. # 참고로 4층은 국민의힘 서울시당이 사용하고 있으며, 여의도연구원도 2024년 하반기 무렵 중앙당사 8층에 입주했다.[3] 지역구 88석, 비례대표 18석.[4] 오세훈(서울특별시장), 박형준(부산광역시장), 유정복(인천광역시장), 이장우(대전광역시장), 김두겸(울산광역시장), 최민호(세종특별자치시장), 김진태(강원특별자치도지사), 김영환(충청북도지사), 김태흠(충청남도지사), 이철우(경상북도지사), 박완수(경상남도지사).[5] 서울특별시 13명, 경기도 22명, 인천광역시 8명, 부산광역시 13명, 울산광역시 4명, 경상남도 12명, 대구광역시 8명, 경상북도 17명, 강원특별자치도 11명, 대전광역시 3명, 충청남도 10명, 충청북도 6명.[6] 지역구 440석, 비례대표 49석.[7] 지역구 1,213석, 비례대표 219석.[8] 후원금이 압도적 1위로 매우 많다.[9] 공식적으로는 청년의힘이 청년조직이지만 현재는 중앙청년위원회, 중앙대학생위원회, 시도당별 청년위원회 및 청소년위원회 등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자료] 10.1 10.2 10.3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25), 2024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11] 책임당원이란 국민의힘 당원 중 당비를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당원을 말한다.[12] 3월 13일 공식 발표. 장동혁 당대표 취임 후 최초로 100만명을 돌파하였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대한민국 역사상 2번째로 당비 납부 당원 수 100만명을 돌파한 정당이 되었다.[14]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나머지 원내 정당들의 재산 총액을 모두 합쳐도 국민의힘의 재산 총액에 못 미칠 정도로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도 격차가 많이 준 것이라 새누리당 시절에는 민주당보다 4배 가량 많았다. 이는 민주화 전 민주정의당 시절에 민주공화당이 보유하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영향과 당사 등 부동산을 꽤 많이 보유한 영향이다. #[A] 16.1 16.2 16.3 새누리당 시절 개설되었다.[19] 미래통합당의 창당일은 2월 17일이고, 선관위 등록일은 2월 18일이다. 창당일과 등록일이 다른 경우는 흔하다.[20] 실질적 전신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창당된 민주자유당이다. 국민의힘 홈페이지에서는 신한국당민주당의 합당으로 1997년 창당된 한나라당을 국민의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걸어온 길[21] 정당법상으로는 미래통합당 출범일인 2020년 2월 18일에 등록되었다. 정당법상으로는 신설합당을 구 정당의 소멸로 보기 때문에 민주자유당신한국당 /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이 각각 다른 정당으로 취급된다. 영어 위키백과도 이를 따르기에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검색하면 자유한국당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신설합당 전후의 정당을 별개의 사단(社團)으로 보는 판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2월미래통합당 창당새누리당 분당으로 분열되었던 보수가 3년 만에 봉합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서 자유한국당에 타 군소 보수정당들을 흡수한 형태이다.[22] 서울남부지방법원 2023. 5. 25. 선고 2022가합104526 판결에서 명시적으로 법원이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이어온 정당이다.'라고 판시하였다.[23]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비법인사단에 대한 판례도 있다. (1) 비법인사단의 동일성에 대한 2006다37021 판결, (2) 신설합당된 정당이 구 정당의 모든 권리를 포괄승계한다는 점, (3) 해산된 정당의 구성원도 비법인사단으로서는 존속한다는 헌재 결정례 등. 구체적인 판례 및 결정례는 비법인사단 항목 참조.[24] 특히 민주공화당 시절에 현대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의 기틀과 특성 등 많은 요소가 확립됐기 때문에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의 시초로 꼽는다.[25] 박정희는 원래 이승만 정부 때 쿠데타를 하려던 인물이다. 4.19로 계획이 늦어져서 민주당 정권 때 쿠데타를 했을 뿐이지, 자유당과 민주당을 모두 구태 기성 정치권으로 보고 적대했다.[26]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자유당이 공중분해된 후, 어느 주류 정당도 자유당에 대한 계승을 주장하지 않았다. 장택상 등이 자유당을 재창당했지만 전체 자유당 세력이 참여했다고 보긴 어려웠고, 일부는 민주당계 정당, 일부는 민주공화당, 일부는 기타 군소 정당으로 흘러갔다. 참고로 자유당 출신 인사 일부가 민주공화당에 합류했으니 전후신 관계가 맞는 것 아니냐고 하기엔, 그렇게 치면 민주당계 정당 출신 인사 일부도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했다. 민주공화당은 민정 이양 후에도 정권을 이어갈 정당을 설립해야 했던 필요에 의해 자유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기성 민간 정치인들을 영입한 것이지, 자유당을 계승할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참고로 장택상 등이 창당한 자유당은 1963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참여하는 등 야권 행보를 보이다가 민주당계 정당인 신민당에 흡수합당되었다.[27] 민주공화당 이전에 창당된 자유당과 민주당은 제대로 된 체계 없이 보스 위주의 파벌을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민주공화당은 김종필의 고안에 따라 중앙당·사무처 시스템 등 근대적인 조직 형태를 도입했고 이는 대한민국의 역대 정당 중 최초였으며, 이때 도입되기 시작한 당직자 공개채용 제도는 그 후신인 한나라당 시절까지 민자계 정당이 민주당계 정당에 비해 인적자원 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28] 이 두 정당들도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의 전신이다.[29] 즉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배출했다고 볼 수 없는 대통령의 존영을 걸어놓은 것이다.[30] 다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생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김구 주석보다 정치적 판단력이 뛰어나며 국부라고 발언했을 정도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승만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식으로 비판한 것과 상반된다.[31] 민주당계 정당이 압도적인 국회에서 두 특검법은 본회의를 이미 여러 번 통과했으나, 윤석열이 그때마다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하며 국회로 돌려보냈고, 이렇게 되면 개헌선(200석)에 달하는 찬성이 필요하게 되는데 국민의힘이 개헌저지선(101석)보다는 근소하게 많은 의석을 보유했기 때문이다.[32] 다른 원내정당 전원이 가결 입장이었으므로, 국힘에서 108명 중 단 8명만이 가결 투표하면 되는 상태라 정치권에서는 가결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지만, 탄핵소추에 찬성한 국힘 의원이 단 11%, 반대가 89%에 달할 정도로 친위 쿠테타가 탄핵 사유가 아니라는, 민주주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선택을 국힘 의원 절대 다수가 한 것이다. 이 비율대로면, 국힘이 총선을 아주 조금만 덜 망쳤어도 탄핵이 부결될 뻔했다.[33] 구체적으로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법 등에서 정한 7가지 운동(2.28 학생민주의거,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을 적시했다.[34] 이전에도 한나라당에서 떨어져 나간 국민생각이라는 이름의 보수정당이 있었으나, 19대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주류 보수정당으로 편입되는데 실패했다.[35] 국민의힘으로 당명 변경 후 그동안의 연전연패를 끊고 2021년 재보궐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모두 이겼다.[36] 출처[37] 민주적 사회주의, 삼민주의 이념의 정당이다.[38] 스페인어명은 Asamblea Nacional del Poder Popular.[39] Pakistan People’s Party.[40] Force가 '힘'으로 쓰이는 것은 주로 물리학 쪽이고, 정치 분야에서는 무력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41] 실제로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국민의힘이 자기들을 멀리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행보를 보일때마다 인민무력당이라고 멸칭조로 부르는 경우가 꽤 많다. 그리고 국민의힘이 성에 안차는 중도좌파적 정책을 꺼낼때마다 지지자들 또한 멸칭식으로 부르기도 한다.[42] 사실 영문 명칭의 단어 선택이 다소 미묘하기는 한 것이, 그냥 사람(자연인) 들의 집단을 의미하는 people의 번역어로 가장 적절하게 여겨지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인민'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정치학적 의미에서 'people'은 꼭 '인민'으로 번역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할 경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즉 대체로 인민이 적절한 번역어에 해당한다는 대답이 돌아올 정도. 인민이 아닌 국민, 즉 어떤 국가의 구성원인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의 번역어로는 'nation'이 더 적절하게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정치적 주권 참여자인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시민(citizen)이 흔히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당 정당에 대한 사전지식은 없고, 정치학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만 가진 번역자에게 'People Power Party' 라는 정당명을 던져주고 "적절한 한국어 명칭으로 번역하시오" 라고 요구한다면 '인민권력당' 이나 '인민역량당' 내지는 '인민주권당' 정도의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 내에서는 나름의 고려, 예를 들어 영문 명칭에 'nation'을 쓴다면 해외에서 보기에는 우파, 특히 극우적 느낌이 너무 강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 해당 영문 명칭을 내놓은 것이겠지만, 다른 나라 정당의 사례를 보더라도 people은 진보/좌파 정당에서 사용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명칭이기도 하거니와 '인민'이라는 단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오해와 편견이 실로 뿌리깊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실로 미묘하고 어찌보면 우습기까지 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그래서 사실 '인민무력당', '인민의힘' 운운하는 드립에서 '무력(Force)'는 일시적으로 잘못 선택한 단어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지만, '인민(People)'은 좀 더 오래 써먹히고 있는 드립거리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민 드립은 꼭 국민의힘보다 더 우측에 있는 극우파, 또는 국민의힘이 종종 보이는 중도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우파 지지자들만 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 및 그 지지자들이 가진 반 진보좌파적 성향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오히려 역으로 (한국 사회에서 '인민'이란 단어가 가진 이미지를 이용하여) "너희가 인민역량당. 해당 정당이 직접 발표한 공식 명칭 아니냐?" 고 놀려먹기도 하는 것.[43] Power가 힘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긴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일률로 쓰인다.[44] '국힘당'이라는 비공식 표현 또한 기사에 사용되고 있다.[45] 당색 및 로고는 9월 중순에 나왔다. 그 이전에는 주로 남색 계열의 색이 임시색으로 많이 쓰였는데, 그러면 민주당의 파란색과 구분이 힘들기 때문에 다른 색을 쓸 가능성이 높았다. 당내 의원들은 빨간색을 선호한다고 하므로 빨간색을 쓸 가능성이 있다. # 10일 나온 기사에 따르면 당내에서는 전신인 미래통합당에서 사용한 분홍색을 유지하거나 새누리당부터 자유한국당 시절까지 사용한 빨간색, 여러 색을 동시에 사용하는 혼합형 등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46] 2020년 9월 14일 공개됐다. 모티브는 훈민정음이라고 한다. #[47] 9월 18일 공개된 당색의 2차 가안에서는 3색의 밝기와 비율이 조정됐다. # 이후 여기서 노란색을 제거해 최종적인 당색이 확정되었다. 2020년 9월 23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색은 빨강·파랑·하양”이라면서 “기존 노란색을 빼고 흰색으로 바꿨다”고 변경 사안을 알렸다. #[48] 현재 개혁신당으로 이탈.[49] 현재 더불어민주당으로 이탈.[50] 원곡 가사에 일어나자 대한민국 부분은 일어나자 국민의힘으로 수정.[51] 사실 이 곡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만 쓰였고 대선 이후 사용이 전무한 곡이었기도 하다.[52]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의 당가인 자유한국당송도 비슷하게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당시 후보의 로고송으로 제작되었다가 공식 당가가 된 케이스이다.[53] 다만 대선 당시에는 메인 로고송이 아니라 사용 빈도는 총선에 비해 줄었다.[54] 3당 합당 과정에서 정리된 시·도당사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55] 중앙당사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다.[56]국회부의장.[57] 사실 친장의 첫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친길(전한길계)'은 6차 전당대회친한계 축출을 목표로 전한길이 개입을 시도하며 커진 친윤과 비윤의 갈등을 비꼬는 의미에 가까웠으며 현재 전한길은 국민의힘에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데다가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도 일부 지도부와 차이를 보인다. 자유와혁신에 좀더 가까운 입장이라고 보면 쉽다.[58] 윤석열이 탄핵 심판 인용과 재판으로 실권을 잃으며 현재는 과거 윤석열 정부 시절 국민의힘의 주류를 차지하던 정치인들을 가르키는 단어가 되었다.[59] 윤석열 대망론이 대두되거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 전부터 친윤석열 성향을 보인 인물들이 많다.[60] 윤핵관은 아니지만 친윤 계열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인물들이다.[61] 김태흠 충청남도지사, 윤상현 의원, 정갑윤 상임고문, 김정재 의원 등 친박 출신 친윤 인사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 범친윤이면서 소장파에 걸쳐있는 경우도 있다.[62] 조배숙, 김영환 등 민주당계 정당 출신 인물들이 많다. 심지어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고 민생당 등 민주당계 정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거나 무소속인 인물들도 많다.[63] 사실상 또 다른 소장파라고 볼 수 있다. 비윤 중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계파다.[64]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첫 TV토론회 시청률 2.8%… 민주당 땐 0.8%[4선,원외] 65.1 65.2 [66] 다만 당심에서는 71:29으로 크게 대패했다.[3선] 68.1 68.2 68.3 68.4 68.5 68.6 68.7 68.8 [4선] 69.1 69.2 69.3 69.4 69.5 69.6 69.7 69.8 69.9 69.10 69.11 [5선] 72.1 72.2 72.3 72.4 72.5 72.6 72.7 72.8 72.9 72.10 [78]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79] 총 득표수 16,394,815표.[80] 파면 이후 2025년 5월 17일 국민의힘 탈당.[재선] [국회부의장] 83.1 83.2 83.3 83.4 [원내대표] 85.1 85.2 85.3 85.4 85.5 85.6 85.7 [국무위원] 87.1 87.2 87.3 87.4 87.5 87.6 87.7 87.8 [초선] 88.1 88.2 [국회의장] 96.1 96.2 [당대표] 97.1 97.2 97.3 97.4 97.5 97.6 [6선] 98.1 98.2 98.3 [광역자치단체장] [비상대책위원장] [135] 참조[136] 제8대 화성시의회 의원.[137] 청년정의당도 강민진 대표의 갑질 논란 등으로 조직 존재감이 약화되다가 모정당 자체가 분열을 겪어 전체적으로 조직력이 약해졌고, 결과적으로 청년위원회와 통합되어서 정리될 예정이라고 한다.[138] 다만 이재명 후보의 고향인 안동의 경우 20대 대선에서 3당 합당 이후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일부 지역에서 기대 이상으로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구미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보수정당의 지지도가 높지만 지역에 따라 IT 제조업으로 인한 젊은층 및 외지인의 유입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더불어민주당이 전국적 승리를 거두었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아예 민주당 출신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처럼 보수 초강세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인물과 지역 특성에 따라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는 민주당계 정당이 초강세를 보이는 호남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광양시, 여수시, 순천시 등 대규모 산업 단지가 있어 외지인이 많은 곳은 타 호남 지역보다 보수정당 득표율이 조금씩 높게 나온다.[139] 공단권인 북구동구의 영향력이 상당하여 PK 소재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해볼만한 곳이다.[140] 과거에는 경기도와 인천에 비해 밀렸지만, 2018년 하반기부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울 집값이 폭등하면서 조짐이 보이더니 2020년부터는 서울의 집값 폭등을 버티지 못하고 경기도의 신도시로 이주하는 직장인이 늘어나 서울 평균연령이 높아짐으로 인해 역전되었다.[141] 원래부터 충남과 충북보다 국힘 지지세가 살짝 약했으나, 2023년에 윤석열 정부가 R&D 예산 삭감 사태를 일으키는 바람에 연구원들이 많은 대전광역시가 해당 정책에 직격탄을 맞아 국민의힘의 지지세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한때는 인천보다도 국힘 지지세가 약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지 경인권과 서울 사이 어딘가 수준이다.[142] 특히 압구정동군위군에 비견될 정도로 보수정당 지지 끝판왕이다.[143] 당시 자유선진당은 민주당계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기도 했었다.[144] 이재명 후보 8.8만표, 김문수 후보 8.4만표.[145] 특히 송도신도시.[146] 조진형 전 의원이 이 지역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다만 14대 총선 때는 민자당의 낙천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당선 후 복당했다.[147] 부평구는 국민의 힘 입장에서 험지로 분류되는 반면, 계양구는 아예 호남권과 맘먹는 사지로 분류되는 편인데, 그 예시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박남춘 후보가 인천시장 재임 당시 두차례나 수돗물 파동이 일어난 걸 시작으로 수많은 실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동 지역을 빼면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지역이였다.[148] 다만 이곳에 이 인간을 공천한 탓이 크다.[149] 관외사전투표를 반영하지 않아도 결과에 변화는 없다.[150] 수원, 안양, 부천, 광명, 안산, 의왕, 과천, 오산, 시흥, 군포, 화성, 평택[151] 젊은층 이탈, 노년층 인구 증가, 전체적인 시가지의 노후화, 안양1번가의 위상 하락 등이 문제였다.[152] 기독자유통일당 이주애 후보가 심재철과 단일화를 하면서 사퇴했음에도 참패했다. 반면, 민주당계/진보정당에서는 단일화가 없었다.[153] 대표적으로 8회 지선 안산시장 선거에서 이민근 당선(여론조사에서 1위던 민주당 윤화섭 시장을 재판과 시정 관련 논란 영향으로 컷오프하고 제종길을 전략공천해 윤화섭이 이에 불복하고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되면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6% 잠식,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은 제종길 후보는 181표차로 패배.)[154] 대부도는 농촌 지역으로 노인 인구 비중이 높고 본토와 매우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재명이 안산에서 사실상 완승했다고 봐도 된다.[155] 성남, 하남, 용인, 이천, 안성, 광주, 여주[156] 심지어 18대 총선에서의 결과도 초접전이었어서 민주당계 득표율이 이때도 역시 성남시에서 가장 높았다.[157] 17대 때는 전임자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2005년 재보선에서 당선, 19대 때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인해 김미희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해 2015년 재보선에서 당선되었다.[158] 고양, 파주, 김포[159] 19대 총선 때 고양시 덕양구 을[160] 집값이 고양시 내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다.[161]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고, 시민들을 고소하겠다는 등의 심한 네거티브를 했다.[162] 의정부, 동두천, 연천, 구리, 남양주, 양주, 포천, 가평, 양평[163] 별내신도시는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득표율이 더 높게 나왔지만 20대 총선 이후 김한정 당선에 큰 역할을 하며 을이 가장 민주당 지지가 강한 지역이 되었다. 21대 총선까지 이런 현상이 이어지다가 이후에서는 서울 표심의 영향을 받아 격차가 줄어들었다.[164] 그나마 윤석열 정부의 허니문에서 치러졌던 8회 지선에선 김은혜, 강수현 후보가 승리하긴 했지만 투표율도 낮았고, 격차도 굉장히 근소했다.[165] 양자구도였던 18대 대선에선 박근혜가 28% 차이로 이겼으나, 20대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가 3% 차이로 이겼다. 그리고 21대 대선에선 민주당이 승리하게 되었다.[166] 마산 지역 제외[167] 노무현 前 대통령의 고향이다.[168] 김영삼, 문재인 前 대통령의 고향이다.[169] 을 지역은 부산 평균 수준의 지지세가 나온다.[170] 정의당, 진보당[171] 다만 이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그렇지만 지역 내 강기갑의 인지도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7회 지선8회 지선에서 민주당 소속 도의원, 군수, 군의원이 배출되는 것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경남 서부치고는 약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172] 2.28 민주화운동이 바로 대구에서 일어났다.[173] 주로 경북 남부 지역이 혜택을 받았다.[174] 대표적으로 노태우박근혜대구 출생이며, 박정희구미 출신이다.[175] 참고로 이때 40% 정도를 얻어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 바로 김부겸이다.[176] 재보선임에도 전국적으로 이목을 끈 선거였는데 3당 합당 직후였으며, 당시만 해도 맹형규법이 없던 시절이라 명예회복 차원에서 정호용이 재출마했다 사퇴했으며, 민자당 후보도 후일 대구시장을 역임한 문희갑이었다.[177] 당시 서구는 선거구가 2개였다.[178] 인지도가 있다 보니 17대 총선포항시 남구·울릉군에서 35%를 얻었다.[179] 2017년 5월 4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180] 의외로 진보정당 소속 기초의원이 당선된 적이 있다. 물론 고령층들의 표심 때문에 보수세가 막강하며 김상훈의 지역구 관리 역시 한 몫을 한다.[181] 그러나 최근에는 신규 택지지구 개발 등으로 보수세가 약해지고 있다.[182] 이해봉, 윤재옥[183] 가문 영향력이 강하다.[184] 당시 안동시 을 선거구에서 권오을통합민주당의 당적을 걸고 '안동 권씨 문중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통합민주당은 비호남 민주당계 정당으로 중도좌파였다.[185] 삼성전자 연구소, 공장, 삼성SDI 연구소, 공장, LG디스플레이 연구소, 공장, LG이노텍 연구소, 공장, SK실트론 본사, 연구소, 공장 외에도 KEC중견기업도 많다.[186] 여기서 국민의힘 후보였던 박형수가 83.33% 득표율을 얻으며 전국에서 가장 먼저 빨리 당선되었다.[187] 고령군, 성주군은 보수세가 강한데, 칠곡군은 구미시와 같이 보수세가 약하다.[188] 울릉군은 위도 상 경북 북부보다도 더 고위도지만 포항 생활권이라 경북 남부로 분류되고 선거구도 포항 남구와 함께 구성하기 때문에 보수세가 약한 보이는 모습을 보일때도 있다.[189] 충남 부여군 출신이다.[190] 특히 유성구서구가 그런 경향이 있다.[191] 동구, 중구, 대덕구[192] 유성구, 서구[193] 다만 서구는 본래 보수정당 세도 있었다가 민주당 세가 커진 케이스에 가깝다.[194] 현재 내포신도시 인구의 대부분은 홍성에 많으며, 예산 거주 인구는 많지 않다. 그나마 현재는 예산 지역도 개발되어 인구가 늘고 있다.[195] 특히 보은은 상주 + 문경 생활권과 청주 생활권의 영향력이 모두 강하고, 영동군의 동부 지역은 김천 생활권이고, 서부 지역은 옥천, 대전 생활권이다. 중간에 있는 영동읍은 양 쪽의 영향을 받는다.[196] 과거 참여정부 당시였던 17대 국회에서 인접한 보은, 영동과 같이 이용희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197] 8회 지선까지 옥천군수 전적을 보면 민주당 5번(2,3,4,7,8회), 보수정당 1번(6회), 제3지대 1번(5회), 무소속 1번(1회)이지만 무소속은 후에 현직 군수가 민주당 입당 후 2, 3회까지 민주당 당적을 달고 연임했고 5회는 당시 보수 정당이던 자유선진당이고 이후 6회에서 연임 성공했지만 5회에는 당시 친야 성향의 이용희가 자유선진당에 가있었고 이후 민선 5기 중에 민주당에 따라가다 5기 마지막이던 2014년에 새누리당에 가서 재선에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군수만큼은 민주7, 보수1로 완전 지역주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샘이다.[198] 2011년 상반기 재보선까지 포함하면 4회 연속[199] 정선군은 영서지만 영동 문화권으로 분류된다.[200] 길거리(특히 강릉역, 동해역 일대)에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면 이건 거의 대부분 동해안 경치가 좋아서 놀러온 관광객들일 가능성이 높다.[201]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을 [202]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 [203]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갑, 원주시 을 [204] '친척'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 권당(眷黨)의 발음이 변하여 궨당이 되었다고 한다.[205] 김태환 전 제주시장은 잠시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이후 한나라당 등을 거쳐 도지사를 역임했고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재선된 이후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입당했으나 끝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원희룡 지사는 2014년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206] 그렇다고 텃밭 수준은 아니다. 젊은층도 어느 정도 살고 있기 때문에 경합지역이다.[207] 국내 2030이 무당층이거나 정치무관심층이 많거나 보수세가 강해지고, 4050이 진보세가 강하거나 강해지는 것과는 반대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208] 20대 이하의 경우 2009년 재보궐, 5회 지선, 2011년 재보궐,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2013년 재보궐, 6회 지선에서 보수정당 계열은 대체로 30%대, 민주진보계열은 대체로 60%대 정도를 득표하였다.[209] 2009년~2014년 기준으로도 절대치는 남녀 모두 민주당계 압도우위여도 20대 남성은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동세대 여성에 비해 약간 높았고, 20대 여성은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율이 동세대 남성에 비해 약간 높았으며 20대 남녀 모두 무당층 비율이 제일 높았다. 이를 증명하듯 이 당시 선거에 참여한 20대 중에 20대 남성은 보수정당이 30%대 중후반을 득표하고 20대 여성은 보수정당이 30%대 초반을 득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20대 남성의 경우 동세대 여성에 비해서 이명박근혜 정권 지지율도 약간 높으며, 허니문 시기에는 긍정과 부정이 팽팽한 조사도 존재한다. 이는 후술할 북한 및 안보관련 이슈와 병역의무 유무의 영향이 주효하다고 볼수 있다.[210] 물론 1980년대 초중반생은 1970년대생에 비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약간 낮기는 하다.[211] 특히 20대 남성이 동세대 여성보다 반북성향이 훨씬 강하고 안보이슈에 보수적이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유무의 영향이 크다.[212] 2015년 여성시대 대란과 이로 인해 메갈리아워마드가 설립됨과 동시에 각종 남성혐오 표현들이 등장한 이후에 치러진 2015년 하반기 재보궐선거20대 총선 시기에는 젠더갈등은 아직 온라인 위주로 펼쳐져 영향력이 제한적이었고, 강남역 살인사건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인해 젠더갈등이 오프라인으로 확대된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부턴 20대 남성과 여성의 지지율상의 차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긴 해도(19대 대선 20대 남성 문재인 지지율 37%, 20대 여성 문재인 지지율 5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영향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아직 젠더갈등이 복구불능으로 심화되기 전이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0대에서 남성은 4등, 여성은 5등(사실상 꼴등)으로 매우 처참했다. 마지막으로 미투 운동혜화역 시위로 인해 젠더갈등이 정치권까지 진출한 이후 치러진 7회 지선도 미투운동으로 고발된 안희정충남도지사가 더불어민주당에서 퇴출되어 젠더갈등이 선거의 주요 이슈중 하나가 되었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고 2018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문재인 정부 및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올라감으로 인해 전술한 사항들과 제3지대 정당이 약화되면서 자유한국당이 반사이익을 얻어 19대 대선과는 달리 20대 남녀에서도 2등~3등을 차지한것 이외에는 19대 대선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물론 지방선거 이전에 남북단일팀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적이 있긴 하나 전술했듯 선거 직전 시점에선 복구되었다.[213] 이 시기부터 20대 남성에서 문재인의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추월하였다. 반면에 20대 여성은 문재인의 지지율이 여전히 매우 높았다. 동시에 20대 남성은 민주진보계열에 대해 반감이 본격적으로 심해졌고, 20대 여성은 예전보다 지지층이 굳어져서 예전의 단순 반보수 성향과 무당층 성향에서 벗어났으며 민주진보계열의 적극 지지층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이 복구불능 수준으로 매우 심해졌다.[214]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박근혜와 달리 남성층에서 호감도 1위를 찍었다.(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이명박의 측근들과 친이계 인사들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데,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는다. 다만 정두언에 대해서는 매우 좋게 보는 편이다. 정두언의 경우에는 한나라당 시절 소장파였고 호감도도 높았으며 유승민과도 사적으로 친했을 뿐만 아니라 유승민과도 입장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성층에서 가장 우호적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215] 20대 남녀 공통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는 하나회 척결, 역사바로세우기, 금융실명제 실시 등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다만 1997년 외환 위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좋게 보지 않고 있고 1996년 노동법 날치기대학설립준칙주의에 대해서도 좋게 보지 않는다. 그 외에 아들인 김현철에 대해서도 좋게 보지 않는다.[216] 독재정권 시절 대통령들의 경우 20대 남성들은 대통령마다 조금씩 다른 호감도를 보이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4공 시절의 실책과 말년의 행보에는 비판적이지만 경제 성과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3공 시절의 박정희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하기도 한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3.15 부정선거 등의 과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여성 참정권 부여, 이승만 라인, 전국민 의무교육 실시, 농지개혁법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다만 전두환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편이다. 노태우의 경우에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높은 경제성장률, 북방외교 등으로 약간정도 좋게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반면 20대 여성들의 경우는 독재정권 시절 대통령들을 일관적으로 안좋게 보는 편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20대 여성들도 독재정권 시절 대통령들에 대해 비판적이긴 했어도 어느정도의 업적은 인정했었지만, 최근 들어서서는 독재정권 시절 대통령들에 대해 안 좋게 보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217] 특이한 점으론 이 시기 20대 남성의 경우 정당지지율에서는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보단 우위였으나, 윤석열 지지율은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간 괴리가 발생하였다. 반면 20대 여성은 국민의힘 정당지지율, 윤석열 지지율 모두 일관되게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찍었다.(물론 2022년 하반기~2023년에는 20대 여성들은 무당층의 비중도 높았다.) 이러한 20대 남성의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와 국민의힘 정당지지율 간의 괴리는 12.3 내란 이후에야 해소된다.[218] 20대 대선에서는 20대 남성이 국힘 +23%p, 20대 여성은 국힘 -24%p로 47%p 차이가 났는데, 22대 총선에서도 20대 남성 국힘 +2%p, 20대 여성 국힘 -44%p로 46%p 차이가 나며 윤석열 정권의 각종 실책들로 인해 20대 남녀 모두 똑같이 더불어민주당으로 20%p 정도 이동했을 뿐이고 성별차이는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219] 성별로 세분화하면 20대 남성은 국힘 +13%p/범보수 +48%p, 20대 여성은 국힘 -33%p/범보수 -28%p다. 민자당계vs친이재명으로 해도 20대 대선, 22대 총선 수준으로 성별차가 심한데, 범보수vs범민주진보로 하면 이전까지 성별차가 절정에 달했던 선거인 8회 지선, 21년 재보궐보다 더 심해진다.[220] 추가로 반공, 반중, 친미, 친영, 친서방 성향 역시 매우 막강한 편이다.[221] 20대 남성들 중 몇몇은 수시학생부종합전형로스쿨, 의전원, 공공의대 등 정성평가 요소가 들어가는 입시 과정에 대해 부정적이며, 여기에 더해 내신에 대해서도 반감을 표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정시 확대나 사법고시 부활 등 정량평가 확대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222] 이들은 군 복무시절이였던 2010년대 초~중반 북한의 도발을 수차례 겪었다는 점과 취업, 자립 생활, 결혼을 막 하기 시작했거나 이미 한창 하고 있던 시기 문재인 정부부동산 정책과 청년 실업 정책 실패 및 페미니즘 정책 등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223]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610 남성 연령 1세별 문단 참고.[224] 정확히는 97~99년생 남성층이 가장 반페미, 반PC 성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론 00~02년생>93~96년생>03~06년생>90~92년생>07년생 이후>87~89년생>나머지 1980년대생 순으로 반페미, 반PC 성향이 강하다.[225]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기준[226] 물론 이 시기에 선거에 참여한 20대 남성들은 민주당계 정당을 찍는 경우가 많았지만(동세대 여성들보다는 보수정당을 찍는 경우가 약간은 높았다.) 이 시기에도 여론조사에서는 보수정당이 민주당계 정당을 앞서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고 이명박 정부 초반이나 박근혜 정부 초반에는 정부 지지율에서 긍·부정 비율이 팽팽하거나 긍정 비율이 앞서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보수정권의 몇몇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경우도 있었다.[227] 특히 1980년대 후반생 이하 남성들 중에는 철도동호인들도 상당수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덩달아서 이 사건으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의 전문성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조기사퇴 하였다. 이 사건 역시 1980년대 후반생 이하 남성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하락에 일조한 것으로 추정된다.[228] 2018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이 연령대의 남성들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완전히 심해지기 시작했다.[229] 청년 남성이 이준석, 하태경을 지지하는 이유는 소위 워마드, 메갈리아 등과 싸운다는 것도 있지만, 이를 포함해서 소위 청년 이슈에 많이 참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준석, 하태경, 홍준연 외에도 청년정치학교를 개설하고 후학 양성에 신경쓰는 정병국과 청년 정치인들을 지도부에 배치하고 의견을 수용하려는 유승민, 청년 지지층들과 소통에 능한 태영호 역시 마찬가지이다.[230] 정확히는 교섭단체 당대표 중 최연소 당대표이다.[231] 원래 젊은 남성층의 경우 과거 미래통합당 시절에도 페미니즘 관련으로 인하여 비판이 있었고, 미래통합당 시절까지는 박근혜 탄핵 사건 등으로 보수정당에 대한 반감도 많았으며, 극우 성향이 있어서 미래통합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냥 미래통합당의 지지 기반 중 하나라는 평가가 많았으나 국민의힘이 반페미니즘 성향과 중도우파로 많이 선회한 지금 시점에서는 국민의힘의 핵심 지지 기반이 되었다. 오히려 노년층보다도 젊은 남성층의 영향력이 훨씬 막대해졌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232] 우상호는 이를 두고 정상적인 지지층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세대라고 평했다.[233] 다만 현실적으로 볼 때 완전히 폐지하는 건 어려운 편이며, 설사 부처 폐지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엄청난 반발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여소야대 형국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여가부 축소 및 주요 업무를 타 부처로 이관시키는 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234] 1990년대 중반생부터 2000년대 초반생 남성에선 무려 65% 이상이 국민의힘에 투표하였다. 1980년대 중반생부터 1990년대 초반생 남성에서도 58%가 국민의힘에 투표하였다.[235] 8회 지선 당시 20대 남성 투표율이 33.3%로 20대 남성의 3분의 1만이 투표장에 나왔다.[236] 다만 앞에 두 공약은 국회의석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이 극렬히 반대하였기 때문에 21대 국회 폐원 이전 공약이행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 미이행 관련하여 비판을 들을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약 이행과 관련하여 정부 및 국힘 지도부 차원에서 어떠한 유의미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237] 뒤의 병사월급 200만원 공약의 경우 결국 실제로 이행하였긴 하지만, 당초 2023년부터 병사월급 200만원이었던 초안에서 2025년부터 병사월급 200만원으로 수정되면서 공약 이행이 2년 지연되어 당시 공약 지연과 관련한 잡음들이 많았다.[238] 수능 출제 방침 변경과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홀대 기조와 채상병 수사외압은 말할것도 없고 잼버리 부실운영 이슈도 잼버리 주무부처가 여성가족부이기에 여성가족부 공약 폐지 미이행 논란을 재점화시켜 20대 이하 남성의 반발을 일으켰다.[239] 30대 남성에서도 12%p 우위가 1%p 우위까지 쪼그라들었다.[240] 더불어민주당+진보당+새진보연합[241] 개혁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16.7%인 반면 조국혁신당이 무려 17.9%의 득표를 하였다. 즉 민주당보다도 더 강경하게 윤석열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조국혁신당에게 표가 대량 이동한 것으로 조국혁신당의 대표 조국의 입시비리 사건이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 이탈의 원인 중 하나인 것을 고려하면 국민의힘, 더 나아가 보수 진영으로서는 충격에 가까운 수치라고 볼수 있다.[242] 통념과는 달리 젠더이슈가 청년 남성층의 보수정당 이탈에 일조한 몇 안되는 사건들중 하나인데, 이는 윤석열 정부 하 군당국의 사건 은폐로 인한것으로 보인다.[243] 22대 총선에서 20대 남성에서도 양당에 이어 비례 득표율 3위를 달성했다. 특히 대안 보수 정당으로 출범한 개혁신당보다도 득표율이 높았는데, 이는 20대 남성에서도 보수 진영 전체에 대한 비토가 강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다만 당시 정권심판론 바람을 타면서 비례 득표율은 높았지만 총선 이후로는 조국혁신당의 20대 지지율은 매우 저조하다.[244] 22대 총선에서 무려 16.7%의 20대 남성들이 개혁신당에 표를 몰아주며 개혁신당의 원내 진출에 30대 남성과 함께 매우 크게 공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개혁신당에 16.7%가 몰려서 범보수 진영이 범민주계열보다 비례대표 득표율에서 앞설 수 있었다. 범민주계열과 국민의힘의 득표율을 비교하게 될 경우 47.7%:31.5%로 오차 범위 밖의 표차를 보이고 있다.[245] 자유통일당의 경우 정확한 지지도를 낸 자료는 없으나, 기타 비례정당 득표율과 자유통일당이 기타 정당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때 대략적으로 30대 이하 남성에선 약 2% 내외를 얻은것으로 추정된다.[246] 다만 2024년 말에 들어서서는 개혁신당에서 갈등이 벌어지면서 개혁신당 지지층도 친이준석과 비이준석으로 갈리는 모습을 보였고, 비이준석 계열은 무당층으로 가는 모습을 보였다.[247] 본래 이준석계와 친유는 같이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고 지지층도 같아서 사이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서는 사이가 약간 멀어졌다.[248] 대표적으로 진성준고민정이 동덕여대 시위대들을 옹호하였다. 다만, "일부"란 표현에서 볼수 있듯 동덕여대 시위 동조가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당론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술한대로 2025년 5월에 더불어민주당의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249] 2016년 4분기 이전에 여론조사 상으로는 20대 남성의 보수정당 지지율이 동세대 여성들에 비해 약간 정도 높았던 것은 사실이고 안보이슈 등에서 보수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4분기 이전에 선거에 참여한 20대 남성들은 선거에 참여했던 20대 여성들만큼은 아니지만 민주당계 정당에 표를 줬고 선거결과 상으로는 20대 남성에서도 20대 여성만큼은 아니지만 민주당계 정당이 크게 앞섰다. 즉, 이 당시 선거에 참여한 20대 남성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계 정당에 표를 보내줬다.[250] 이는 20대 남성뿐만이 아니라 20대 여성과 40대 그리고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 세대, 직업 집단에서 2024년 8월~9월 수준의 지지율을 복구하는데 성공하였다.[251]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보수세 전멸 공포로 인해 역으로 보수 지지층들이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탄핵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등 보수지지층들이 강력히 결집하는것과 계엄사태가 장기화되며 정치저관여층들을 중심으로 이 사태에 대한 피로감이 커졌다는게 주효하다. 추가로 1980년대생 후반 이하 남성층 한정으로 전술한 동덕여대 폭력사태와 폭력시위를 일으키는 동덕여대 시위대들의 행보를 옹호하는 일부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행태가 계엄 이후에도 끝나지 않고 계속 산발적으로 진행중인것도 소소하게 영향을 끼쳤다.[252] 이 연령대의 남성들 중에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는 듯 보인다. 강경파는 본래부터 보수정당을 지지해왔고 현재도 여전히 탄핵에 반대하면서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한 젊은 남성들도 강경파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서 온건파는 예전에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더라도 개혁보수 성향을 보인 경우가 많거나 중도성향이었으며 현재는 탄핵에 찬성하고 유동적인 정치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중립파의 비중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경파 내부에서도 성향이 일부 나뉘는 경우가 있고, 온건파 내부에서도 성향이 일부 나뉘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253] 진보성향이 강한 동년배 여성들과는 달리 강경파와 온건파가 같은 보수성향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강경파보다는 온건파 비중이 높은데 북한의 도발과 문재인 정부의 페미 정책에 대한 반발, 문재인 정부의 공정성 논란, 젠더 갈등의 복구불능급 심화 등을 거치면서 강경파의 비중도 올라왔지만 여전히 온건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립파의 비중도 어느정도 있다. 실제로 21대 대선에서 표면적으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사표심리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정치 분야 이외에도 경제, 사회, 교육, 언론, 문화, 복지 등 다른 분야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는 경향이 있다.[254] 이 연령대의 남성들 중에 1980년대 후반생~1990년대생 남성들은 경인권 부촌 중 집값이 높은곳(분당, 판교, 과천 등), 서울 한강벨트 중 집값이 높은곳(용산, 마포 갑, 광진, 양천 갑, 성동구 등), 낙동강벨트 대부분(후술할 20대 초반 이하 남성에서 언급한 지역 제외 나머지) 지역, 강원도 영서 도시지역과 유사한 국힘 약우위 지역으로 볼 수 있고 2000년대생 남성들은 경인권 중 보수성향이 있는 일부 원도심(하남시 갑, 인천 중구, 미추홀구 등)이나 경인권 부촌 중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수지, 위례, 송도, 광교 등), 낙동강벨트 중 민주당세가 있는 일부지역(서부산 일부, 김해, 경남울산중 공단이 밀집한곳), 서울 한강벨트 중 집값이 낮은 동네(동작 을, 강동구, 영등포 을 등)와 서울 중 보수성향이 있는 일부 원도심(중구, 종로구)과 유사한 경합~국힘 약우위 지역으로 볼수 있다.[255] 1980년대 후반생~1990년대생 남성들의 경우 젠더 분쟁, 북한의 도발을 직접 겪어봤고 조국 사태 등을 겪어봤으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페미니즘 정책, 공정성 논란에 매우 민감하고 반북 성향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하다. 2000년대생 남성들의 경우에도 학창 시절 젠더 분쟁을 겪었고 조국 사태의 영향을 나름 받았었으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페미니즘 정책, 공정성 논란에 어느정도 민감하여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있다. 다만 1987년생~2002년생보다는 약간 덜하다. 그러나 21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00년대생 남성이 1990년대생 남성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더 낮게 나타났다는 점을 볼 때 남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256] 이는 더불어민주당 연성 지지층에서도 마찬가지이다.[257] 심지어 강경보수 성향에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강한 70대 이상보다도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이 낮았다.[258] 국민의힘의 지지율도 많이 줄어들었다.[259] 한편 박민영·감동란 김예지 비하 논란에 대해서 이 연령대의 경우 강경파는 박민영과 감동란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고 온건파는 박민영과 감동란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260] 당초 이혜훈이 기획예산처장관 후보로 내정될 때는 20대 남성들의 반응이 강경파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중립파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해도 일단 지켜보자는 반응을 보이고 온건파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이혜훈의 장관 후보 내정을 안 좋게 보더라도 국힘도 자성 또는 반성해야 한다는 형태로 엇갈렸으나 과거 현역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에게 갑질을 자행한 것이 알려지고 기타 비리 의혹들도 계속 알려지면서 모두 부정적인 반응으로 다 돌아섰다.[261] 그러면서도 박민영 대변인의 상임고문단 비하 발언 논란에 대해서는 이 연령대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엇갈렸는데 강경파는 박민영에 우호적인 반면에 온건파는 박민영에 비판적인 것으로 추정된다.[262] 다만 의외로 이 연령대의 여성들의 경우 조중동 등 보수성향 제도권 언론들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263] 2009년 재보궐부터 2014년 6회 지선때까진 대체적으로 30% 초반대 정도는 보수정당 계열에 투표하였다.[264] 본래부터 이 연령대의 여성들과 보수진영이 적대적(일례로 당시 젊은 여성 유권자들에겐 보수정당은 여성관이 개판이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당, 일명 섹누리당으로 이미지가 박혀있었다.)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서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던 것은 아니었다.(일례로 보수정당 정치인들이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많은 곳이나 대학교에서 여학생들이 많은 곳이나 여대에 가서 별다른 반발없이 강연하는 경우도 많았고 보수정당 정치인들과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각종 현안 관련해서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육영수 여사는 어느정도 좋게 보는 사람도 있긴 하다.[265] 2018년을 기점으로 이 연령대의 여성들은 기존 무당층이나 단순 반보수에서 민주당 적극 지지층으로 변해갔다.[266] 특히 박원순 성추행 사건이 이 연령대 여성들의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를 철회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267] 그나마 중진급 여성 정치인인 박영선이여서 4%p 차이로나마 앞섰지, 새천년 NHK 사건 당사자였던 우상호였다면 더욱 더 이탈했을 것이다.[268] 20대 대선 당시 1990년대 중반생~2000년대 초반생 여성: 더민주 58 vs 국힘 34, 8회 지선 당시 1990년대 중반생~2000년대 초반생 여성: 더민주 66 vs 국힘 30.[269] 이는 정치저관여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당층 + 더불어민주당 소극 지지층이 아예 기권한 영향이 매우 크다. 실제로 8회 지선 당시 20대 여성에서의 투표율은 고작 39.5%로 40%조차 미달하였다.[270] 실제로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원중 살아남은 친 페미니즘 성향 의원들은 남인순, 강선우 등 페미니즘 성향과는 별개로 지역구 관리는 잘한다는 평을 받은 사람들 몇명 밖에 없다.[271] 논란의 당사자들인 김준혁, 공영운, 양문석의 득표율만 소폭 하락했을 뿐이고 전체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은 없었다.[272] 이 연령대의 여성들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긴 한다. 강경파는 강력한 페미니즘 성향을 띄며 각종 페미니즘 시위나 탈코르셋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페미니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온건파의 경우에는 페미니즘 시위나 페미니즘 정책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많고 친여성정책을 지지하면서도 강경파들이 선을 넘는 것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는다. 정치성향에 있어서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는데 강경파는 확고한 더불어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온건파는 더불어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이면서도 사안에 따라서 약간씩 보수정당 지지를 하거나 약간씩 보수진영에 협조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는 중립파들도 있다.[273] 보수성향이 있는 동년배 남성들과의 차이점은 이 연령대의 여성들의 경우 강경파와 온건파가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이가 나쁘지 않고 서로가 진보성향으로 잘 뭉친다는 점이다. 본래는 온건파 비중이 상당히 높았고 본격적인 젠더분쟁이 시작된 이후로도 온건파 비중이 높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과 젠더분쟁이 복구불능으로 격화된 시점을 통해서 강경파의 비중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온건파가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학창 시절부터 페미니즘 교육을 받아온 세대가 진입하면서 강경파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중립파의 비중도 본래는 높았지만 젠더분쟁이 복구불능으로 격화되고 거기에 더해 학창 시절부터 페미니즘 교육을 받아온 세대가 진입하면서 중립파들도 세가 약해지고 있다.[274] 물론 이 연령대 여성층 내에서도 조금 차이가 있는데, 1993년생 이하 여성은 아예 지역으로 치면 호남과 동급 수준의 사지이고, 1980년대 후반생 ~ 1992년생 여성은 이들보다는 그나마 덜한 수준의 험지이다. 1993년생 이하 여성도 경우에 따라 나눠지기는 하는데 1993년생 ~ 2000년생 여성은 호남 중에서는 전북 및 전남 몇몇 지역과 비슷하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사지로 분류되고 2001년생 이하 여성은 광주 및 전남 대부분 지역과 비슷한 사지 중에 사지이다.[275] 1987년생 ~ 1992년생 여성들의 경우 직장생활을 하거나 결혼을 조금씩 하고 부동산, 실물경제 등에 민감한 것과 학창시절이나 대학시절에 큰 젠더분쟁을 겪지 않았거나 젠더분쟁을 겪었더라도 소규모이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지지 성향이 상당하면서도 국민의힘 지지세가 어느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1993년생 ~ 2000년생 여성들의 경우는 대학 시절에 젠더분쟁을 많이 겪거나 또는 대학시절 후기에 젠더분쟁을 많이 겪었지만 현재 들어서서 직장에 조금씩 취업을 하기 시작하고 실물경제에 조금씩 민감하며 학창시절이나 대학시절 초기에는 젠더분쟁을 많이 겪지 않았던 영향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면서도 국민의힘 지지세가 아주 약간 정도는 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생 이하 여성들은 학창 시절부터 젠더분쟁을 겪고 페미니즘 교육을 철저히 받았으며 대학에 가서도 젠더분쟁을 겪고 페미니즘 교육을 받는지라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매우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276] 이미 장제원은 생전 자녀교육에 실패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새겨져 학부모 유권자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엔 본인이 성추문에 휘말려 극단적 선택을 하자 장제원을 향한 여성 유권자들의 평판은 완벽히 나락으로 떨어졌다.[277] 심층 출구조사에서 년대생별로 조사한 자료가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990년대생 결과를 보면 여성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과반에 미달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여성 중 유이하게 1990년대생 여성과 20대 이하 여성 집단에서만 선거비 반액 보전선을 넘겼다.[278] 1987년생~2002년생 여성들에게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에 미달한 이유로는 1987년생~2002년생 여성들이 사회로 나오면서 취업이나 실물경제에 민감한 영향이 있고 또한 박원순 성추행 사건과 이재명 아들 관련 논란 등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1987년생~2002년생 여성들의 경우는 본래는 정치혐오 무당층이나 정치 무관심층 성향이 강했던 영향도 있고 또한 보수정당과 사이가 안 좋아도 무작정 증오하던 것은 아니었던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대학을 다니거나 거기에 영향을 받은 경우도 어느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987년생~2002년생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던 시기에는 여대 또한 인식이 여전히 괜찮았었고 심지어 1987년생~2002년생 여성들 또한 한 때 혜화역 시위 등 페미니즘의 영향을 꽤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는 아직 철들지 않아 강성 페미니즘에 경도되는 경우가 많은 2000년대생 여성과는 달리 취업과 사회 생활을 경험하고 실물 경제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부는 성향이 변모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또다른 원인으로는 오거돈 성추행 사건,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279] 출구조사에서 연령 말고도 년대생별로 조사한 자료가 있는데, 이들이 모두 속한 2000년대생 결과를 보면 여성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무려 63%를 차지하여 거의 1980년대생 여성이랑 비슷하게 나왔다. 타 후보의 경우 국민의힘 김문수는 2000년대생 여성 지지율이 1980년대생 여성 지지율보다 더 낮으며, 개혁신당 이준석과 민주노동당 권영국은 2000년대생 여성 지지율이 1980년대생 여성보다 더 높다.[280] 2000년대생 여성들에게서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유로는 학창 시절부터 페미니즘 교육을 주입받아왔고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커진 시기에서 자라왔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며, 이로 인해 윗 세대 여성들보다도 페미니즘 성향이 더욱 강력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2000년대생 여성들은 본래부터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영향도 있고, 또한 젠더 분쟁이 구제불능 수준으로 격화되고 보수정당과 서로 죽일듯이 증오하는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아니면 그 시기에 대학을 다니거나 그것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생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는 시기에는 예전과 달리 젠더 분쟁 격화와 페미니즘 이슈로 여대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아진 영향도 있다. [281] 특히 2030 여성들 중에서는 야구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282] 20대 대선 당시 기준 1983년생~1984년생 남성의 경우 더민주 약우세, 1985년생~1986년생 남성은 경합이었으며, 21년 재보궐과 8회 지선 당시에는 1983년생 이후 남성은 모두 국힘 득표율이 더민주보다 높았었다.[283] 21년 재보궐 시기에는 무당층, 22년 대선과 8회 지선 시기에는 더민주 근소우위.[284] 이들 중에 90년대 당시 운동권에서 활약한 사람들도 많다. 90년대 당시 운동권은 80년대 당시 운동권들보다도 진보성향이 매우 막강하다. 여기에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점도 한 몫 했다.[285] 이 연령대 역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는 경우가 있는데 강경파는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지지층으로 군림하면서 조국 사태 같은 더불어민주당의 각종 악재 때에도 더불어민주당을 계속 지지하고 더불어민주당이나 민주당 지지세력이 주최하는 정치시위에 많이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온건파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면서도 실물경제, 부동산, 민생, 교육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보수정당을 약간씩 지지하기도 한다.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는 중립파들도 있다.[286] 1987년생 이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강경파와 온건파가 서로 대립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으로 강력하게 뭉치는 경우가 많다. 본래는 온건파의 비중이 높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강경파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광우병 파동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기점으로 강경파가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온건파의 비중도 여전히 높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기점으로 강경파의 비중이 더 높아졌고 이후로도 강경파의 비중이 높아졌다. 중립파의 비중도 어느정도 높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기점으로 강경파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중립파도 비중이 작아지고 있다.[287] 1983년생~1986년생 여성, 1980년~1982년생 남성, 1970년~1972년생 여성은 세종시, 제주도와 비슷한 험지로 볼 수 있고 1980년생~1982년생 여성은 전북, 전남 몇몇 지역과 비슷하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사지, 1973년생~1979년생 여성과 1970년대생 남성은 광주, 전남 대부분 지역과 비슷한 사지 중에 사지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1983년생~1984년생 남성은 경기도 내 부천,안산,고양 덕양 정도의 열세지, 1985년생~1986년생 남성은 외곽지역을 제외한 경기도나 인천수준의 열세지이다.[288] 1983년생~1986년생 남성들의 경우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음과 동시에 아이를 키우고 있고 부동산, 실물경제에 민감한 영향과 학창 시절 IMF를 겪고 대학 시절 운동권이 완전히 없어진 관계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1983년생~1986년생 여성들의 경우에는 직장생활을 하거나 아이를 키우고 부동산, 실물경제에 민감함과 동시에 대학 시절 운동권이 없어졌으나 대학 시절 작은 젠더분쟁을 겪어본 적이 있고 학창 시절 IMF를 겪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을 많이 지지하면서도 약간씩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1982년생 남성들의 경우도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부동산, 실물경제에 어느정도 민감한 영향과 학창 시절 IMF를 겪었고 대학 시절 운동권이 없어졌지만 노풍의 영향을 받아서 더불어민주당을 많이 지지하면서 약간씩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1970년생~1972년생 여성들의 경우는 직장생활을 하는 중임과 동시에 1990년대 초반 당시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약간 낮았고 부동산, 실물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직장 초기에 IMF를 겪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을 많이 지지하지만 국민의힘도 약간씩 지지하는 경우가 있다.[289] 1980년생~1982년생 여성들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부동산, 실물경제에 민감하고 대학 시절 운동권이 없어졌지만 대학 시절 노풍과 작은 젠더분쟁을 겪었고 학창 시절 IMF를 겪은 영향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매우 강력하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경우도 아주 약간은 있다. 1970년대생 남성들은 90년대 당시에 운동권 활동을 주도했고 노풍의 영향도 제대로 받았으며 대학 시절에 IMF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층이며 1973년생~1979년생 여성들은 대학 진학률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대학을 가기 시작했고 대학 시절에 IMF를 겪었으며 노풍을 겪은 영향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아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290] 정확히 말하자면 이 연령대는 더불어민주당 지지 성향이 전 연령대 중에서 가장 강력하기 때문에 이들의 표심을 빼앗아 오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17년 전 자신들의 전신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과 관련해 아동안전 이슈를 선점하는 데 성공하여 학부모들의 표심을 이끌어내어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던 적이 있었다. 다만 18대 총선 당시 40대는 1958년생~1968년생으로 진보 우위가 아닌 캐스팅보트 시절인데다 기본적인 전국 판세가 한나라당이 워낙 압도적으로 유리해서 가능했던 전략으로, 현재 국민의힘이 40대(1975년생~1985년생)에서 이를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291] 1970년대생의 경우 한총련이 대학가를 장악하던 9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냈고 노풍의 영향도 제대로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민주당 지지성향이 매우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292] 다만 비박계를 지지하는 점은 같지만, 같은 듯 다른 미묘한 차이가 있다. 1987년생 이하 남성이 유승민, 정병국, 이준석 등을 위시한 친유 개혁보수 성향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고, 소수지만 1980년대 후반생 ~ 2000년대생 남성들 중에는 홍준표를 위시한 친홍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1960년대생 같은 경우는 오세훈, 박형준과 같은 친이 계열 소장파나 원희룡이나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와 같은 원조 개혁보수 소장파 성향, 친안 정치인이나 윤석열을 위시한 친윤을 지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 외의 친이 정치인들 또는 친무 정치인들도 1960년대생 연령대에서 지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유한국당 시절에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복당파 정치인들도 1960년대생 연령대에서 지지를 받는 경우가 꽤 있다.[293] 그리고 1987년생 이하 남성들이 강경보수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는 달리 1960년대생들의 경우는 중도보수이면서도 강경보수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거나 중도보수에서 강경보수로 돌아선 사람도 어느 정도 있다. 그리고 자유보수주의 성향이면서도 사회보수주의 성향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거나 어느 정도 사회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연령대도 1960년대생이 상당히 많다. 1960년대생의 경우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보수주의 성향을 가지지만 사회적이나 문화적으로는 사회보수주의 성향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294] 1960년대생의 경우 사회보수주의 성향이나 강경보수 성향이 강한 1950년대 이상 노년층과 힘을 합치거나 교류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그 예로 민정계, 공화계 출신 중에 신민주계, 이상득계 정치인이나 이회창을 비롯한 이회창계 정치인이나 서청원 같은 상도동계 출신 친박계 정치인이나 박민식, 박진, 원희룡 같이 친이 성향이면서도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의 지지를 받고있는 정치인들을 통해서, 또는 친이이면서 친박과 친한 정치인이거나 친박이면서 친이와 친한 정치인을 통해서 서로 교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친박과 친이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는 정치인을 통해서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1960년대생의 지지기반과 1959년생 이상 노년층의 지지기반은 정재계 혼맥이나 보수계열 정관계 인사들끼리의 친인척 관계로도 어느정도 연결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 및 보수성향의 언론인들이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나 대형로펌 변호사들이나 관료, 판검사들이나 기업인들을 통해서 연결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295] 다만 오세훈을 지지하는 친오 성향 일부 1960년대생의 경우는 오세훈을 지지하는 일부 1990년대생 남성들과 일부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안철수를 위시한 친안 성향 일부 1960대년생의 경우에도 지지세가 다른 쪽보다도 약하지만 낮지는 않은 안철수를 지지하는 일부 1990년대생 남성들과 일부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296] 이명박을 정치에 등판시키고 밀어준 게 김영삼이다. 반대로 민주화운동의 대척점에 있었던 친박, 친황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297] 김영삼 외에도 또다른 당내 온건 보수 세력이었던 이회창도 86세대에서 꽤 지지를 받았다.[298] 단, 2016년 4분기 이전까지는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도 86세대에서 높았었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정책 등에서도 노년층만큼은 아니지만 찬성하는 비율도 꽤 되었다.[299] 22대 총선 기준 남성은 1965년생, 여성은 1967년생부터 더불어민주당이 우위를 차지하였다.[300] 이 연령대도 마찬가지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는데 강경파는 본래부터 보수정당을 지지해 왔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반대하는 경우가 많고 이준석에 대해서도 매우 안 좋게 보는 경우가 많으며 강력한 징계를 주장한 적도 있다. 온건파는 스윙보터이거나 보수정당을 약하게 지지해 온 경우가 많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경우가 있고 이준석에 대해서는 안 좋게 보더라도 너무 강한 징계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중립을 취하는 중립파도 있다.[301] 강경파와 온건파끼리 서로 대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동산, 실물경제, 교육, 자식들 취업 문제에 있어서는 힘을 합치는 경우가 있다. 1987년생 이하 남성들과는 달리 강경파의 비중이 꽤 되는데 본래는 1960년대생도 온건파 비중이 높았지만 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경제 관련 실책을 기점으로 강경파의 비중이 높아졌다. 중립파의 비중도 어느정도 있다. 이 연령대의 온건파의 경우 1987년생 이하 남성 온건파들이 때로는 개혁신당 등을 지지하는 것과 다르게 때로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다.[302] 이들 연령대 중에 1967년생~1969년생 남성은 경기도나 인천 대부분 도시지역과 서울 외곽지역, 서대전(유성구와 서구), 충남 천안 서북구와 아산, 충북 청주 청원구 및 증평군 수준의 열세지, 1967년생~1969년생 여성 및 1963년생~1966년생 남성은 경기도 원도심, 인천 원도심, 서울 한강벨트 중 집값이 낮은 곳 또는 부울경 일부 낙동강벨트(울산 북구, 동구와 서부산 일부 지역, 경남 김해, 창원성산), 동대전(동구,중구,대덕구), 충남 천안 동남구와 당진, 충북 청주 흥덕구 및 진천군과 비슷한 열세에 가까운 경합지, 1963년생~1966년생 여성 및 1960년생~1962년생 남성은 부울경 낙동강벨트(전술한 1967년생~1969년생 여성과 1963년생~1966년생 남성부분에서 언급한 지역을 제외한 낙동강벨트), 강원도 영서 도시 지역(원주,춘천), 충남 공주, 논산, 계룡, 충북 청주 서원구와 음성군, 경인권 부촌, 서울 한강벨트 중 집값이 높은 곳과 비슷한 우세에 가까운 경합지, 1960년생~1962년생 여성은 울산 구도심, 부산 중 대부분의 부촌지역과 동부산, 중부산 지역, 경남 동부지역 중 낙동강벨트가 아닌 곳, 강원도 영서 전방지역, 충남 보령, 서산, 충북 청주 상당구 그리고 서울 용산구와 송파구, 경기도 외곽 도시지역(포천,이천,동두천,여주)과 비슷한 우세지로 볼 수 있다.[303] 1967년생~1969년생 남성의 경우는 학창시절 반공교육을 일부 받았고 부동산, 실물경제 등에 민감한 영향으로 보수정당을 몇 번 지지했지만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가담하거나 노동운동에 가담한 것, 30대 당시에 노풍이 분 영향으로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많다. 1967년생~1969년생 여성의 경우 학창시절 반공교육을 일부 받았고 당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경향과 부동산, 실물경제, 교육에 민감한 경향이 겹치면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꽤 있지만 한 때 30대 당시에 노풍을 받았던 경향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도 있다. 1963년생~1966년생 남성의 경우 학창시절 반공교육을 어느정도 받았고 부동산, 실물경제에 민감한 영향으로 인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꽤 있지만 30대 당시에 노풍을 받았고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경향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도 있다. 1963년생~1966년생 여성의 경우는 학창시절 반공교육을 어느정도 받았고 부동산, 실물경제, 교육 등에 민감하여 잠깐을 제외하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꽤 있다. 1960년생~1962년생 남성의 경우는 학창 시절 반공교육을 많이 받았고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경향이 있지만 부동산, 실물경제에 상당히 민감한지라 잠깐을 제외하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꽤 있다. 1960년생~1962년생 여성의 경우는 학창 시절 반공교육을 많이 받았고 부동산, 실물경제, 교육, 자식들의 취업에 민감하여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많다.[304] 본래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던 1960년대생들도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305] 1960년대생들과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 간의 교류나 공생관계도 이전에 비하면 약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간에 교류를 주선해주던 정치인, 관료, 기업인, 법조인, 언론인, 학자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정계 은퇴를 하거나 아니면 공천탈락이나 낙선을 하거나 관가나 재계나 언론계나 법조계나 학계에서 은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 간에 교류나 공생관계도 많이 약해졌다.[306] 물론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들 중에서도 과거에는 4.19 혁명에 참여를 하고 넥타이부대의 선봉으로 민주화에 앞장선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들도 상당수가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형욱, 차지철 등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307] 다만 친이 계열에도 1950년대생 이상 지지자가 없지는 않다. 일례로 1950년대 후반생의 경우는 친박 성향이 강하면서도 친이 성향을 약간 가지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고 1950년대 초중반생 또한 친박 성향이 강한 축에 속하지만 친이 성향을 간혹 가지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308] 1940년대 이상부터는 친박 성향이 매우 강하다. 물론 이들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명박을 찍었다.[309] 그리고 노년층의 경우에도 지지성향이 나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친 전광훈과 반 전광훈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고 최근 들어서서는 김문수계를 지지하는 노년층과 한덕수계를 지지하는 노년층으로 나뉘고 있긴 하다. 또한 최근 들어서서는 친이, 친박 출신의 구주류와 친윤 출신의 현주류, 그리고 반한동훈계로 나뉘는 듯 하다. 또한 최근 들어서서는 김문수계와 장동혁계로 나뉘고 있으며 친 고성국과 반 고성국으로 나뉘는 경우도 있으며 당권파와 비당권파로 나뉘는 경우도 있다.[310] 단, 이쪽도 세부적으로 보면 온건파와 강경파가 약간씩 나뉘긴 한다. 또한 중립파도 있다.[311] 노년층의 경우는 온건파와 강경파 모두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온건파와 강경파가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결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년층은 강경파가 상당히 많은데 본래는 온건파의 비중도 어느정도 있었지만 3당 합당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강경파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참여정부 후반을 기점으로 강경파의 비중이 더욱 높아졌으며 문재인 정부를 기점으로 강경파의 비중이 더욱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중립파의 비중도 꽤 있다.[312] 1957년생~1959년생은 강원 영동, 중부경남, 부산 원도심, 동부산 및 울산 중 일부 매우 보수적인 지역, 충북 청주와 중부3군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충남 중 농어촌 지역, 경인권 군지역, 강남구와 서초구와 비슷한 우세지, 1954년~1956년생 남성은 서부경남 도시 지역과 비슷한 우세지, 1954년~1956년생 여성은 서부경남 농촌 지역, 일부 TK 도시권 지역과 같은 압도우세지, 1953년생 이상은 TK(일부 도시 제외)와 비슷한 압도우세지로 볼 수 있다.[313] 1957년생~1959년생은 산업화 막내세대임과 동시에 부동산, 실물경제, 교육에도 나름 민감하고 학창 시절 반공교육도 받았기 때문에 보수성향이 강하며 1954년생~1956년생 남성은 산업화 막내 세대임과 동시에 반공교육을 받았고 전쟁 이후의 가난함도 체험했기 때문에 보수성향이 강하다. 1954년생~1956년생 여성 역시 산업화 막내세대이고 반공교육을 받았으며 전쟁 이후의 가난함을 체험했고 또한 당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관계로 보수성향이 매우 강하다. 1953년생 이상은 일제강점기 또는 6.25 전쟁을 직접 겪었고 산업화 세대의 핵심이므로 보수성향이 매우 강하다.[314] 다만 박민영 대변인의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비하 논란에 대해서는 1950년대생 이상 노년층들 역시 비판적인 의견을 나타내는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315] 단, 학생은 성별차가 매우 심하다. 여학생은 화이트칼라를 따위로 만들 정도로 압도적 열세다. 남학생에서 이걸 전부 만회하고도 남는 바람에 우세인 것이다.[316] 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울산 북구와 창원 성산 등지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이나 진보정당 당선자가 나오기도 한다.[317] 화이트칼라의 경우 고소득 직종이라 과거엔 우세였지만, 현재는 4050+30대 이하 여성이 주류가 되면서 열세로 바뀌었다. 물론 세대, 성별에 따라서 차이가 나긴 한다.[318] 추가적으로 30대 이하 남성의 보수화 영향도 받는다.[319] 송해이순재가 대표적이다.[320] 이 때 정병국 전 의원, 정진석 전 의원이 활약했다.[321] 탈북민의 경우 중국의 강제 북송 때문에 더 강한 반중 성향을 보인다.[322] 그 이후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부산에서 1석을 더 뺏긴다.[323] 물론 예전에도 20대 남성들의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20대 여성들보다는 조금 높긴 했다.[324] 물론 30대 후반도 40대 이상에 비하면 민주당세가 약간 약하기는 하다.[325] 전국민 평균은 아예 5%p 정도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였다.[326] 노년층과 청년 남성 이외에 국민의힘이 22대 총선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1위를 차지한 집단은 50대 후반 여성층이 유일하다.[32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실책을 거듭하고 12.3 계엄으로 자폭하는 등 환경적 장점을 못살리는 것이 문제.[328] 지역구도로 비교해도 무려 대구경북의 그것과 맞먹는다. 또한 직업구도와 비교시 보수 우세 직종으로 대표되는 주부나 무직/기타 그리고 농림어업 종사자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이다.[329]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투표율이 저조한데다 당시 참여정부와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여론이 최악이었던 점이 컸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선 19대 총선에서의 역전승 효과와 경인 지역에서 조금이나마 이겨서 서울특별시에서의 열세를 메꿨기 때문에 가능했다.[330] 47.13%[331] 세부적으로 25개 지자체 중 강남구서초구에서는 55% 이상을 얻으며 22%p 차이로 여유롭게 승리하였고, 송파구용산구도 강남서초보단 확연히 적은 차이지만 어쨌든 5%p 차이로 승리했다. 이는 서울특별시 내 고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 국민의힘 지지도가 높다는 특성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용성으로 분류되는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에서는 김문수 후보가 용산구에서는 전술했듯 아예 6%p 차이로 승리, 성동구에서는 패배하긴 했으나 그 표차가 4천여표에[332] 불과해 타 한강벨트 지역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마포구에서는 민주당세가 강하고 정청래가 있는 마포구 을 지역의 영향으로 인해 김문수가 9%p라는 적지 않은 차이로 패배하였다.[332] 이재명 후보 8.8만표, 김문수 후보 8.4만표.[333] 심지어 이쪽은 1, 2심 모두 일괄되게 유죄 판결을 받았고, 심지어 부인인 정경심 교수의 재판에서도 최종 판결문에서 조국 대표를 공범으로 적시했다.[334] 특히 이쪽은 국민의힘보다도 더 크게 패했다. 이낙연은 홈 그라운드인 광주에 출마했지만,옥중 출마한 송영길 보다도 득표율이 딸리며 체면을 단단히 구겼고, 설훈,홍영표등 다른 인사들도 전부 선거비 보전 조차 실패했다.[335] 일례로 조국은 대법원 최종 형량이 징역 2년이다.[336]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긍정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337] 남성 +2%p, 여성 -44%p로, 보면 알겠지만 여성에서 심하게 패배한걸 매꿔줘야하는 남성에서 지난 3년과는 달리 간신히 승리를 차지해버려 여성에서 뒤쳐진걸 전혀 메꾸지 못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20대 전체 결과에서는 50대보다도 더 큰 격차로 패배해버리고 말았다.[338] 또한, 20대 여성은 호남 지역 수준의 사지가 되었다. 물론 보수정당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시기부터 현재까지 모든 선거에서 극소수의 예외(2006년~2008년 상반기와 2021년이 있는데, 2006년~2008년 상반기에는 민주진보 40%대 초반: 보수계열 50%대 후반으로 15%p 정도 이겼지만, 이시기는 참여정부의 레임덕과 이명박 정부 허니문이 겹쳐 민주진보계가 자체가 지리멸렬했던 시절이었고, 2021년에는 민주진보+여성주의 50%대 중반: 보수계열 40%대 초반으로 압도열세가 아닐뿐 10%p 이상의 열세인데다, 이마저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성범죄 버프로 인한 일시적인 상황이었다.)를 제외하고는 20대 이하 여성에서 항상 압도열세긴 했다. 문제는 2023년까진 보수가 지리멸렬했던 2016년 4분기~2018년 상반기를 제외하면 아무리 심해도 40%p 이상 격차로 진적은 없었다. 일례로 정치 저관여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해서 표본이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고 30대 이하 남성의 지지가 높은 당대표 vs 30대 이하 여성의 지지가 높았었던 당대표의 구도였던 8회 지선때 36%p 차이로 패배하였고,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헌납했던 21대 총선때도 38%p 차이로 패배하였다.[339] 20대 이하 남성의 경우는 1948년부터 2020년까지(2006년~2008년 제외)의 선거 결과보다는 낫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의 선거 결과보다는 부진하였다.[340] 남성 +1%p, 여성 -23%p 로, 50대 이하에서 가장 낫긴 하나 이는 부동산+젠더갈등 영향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인데다가, 무엇보다도 10%p 이상 패배했다. 물론 2021년 이전 선거결과랑 비교하면 선전이라고 우길수는 있는 수준이긴 하다. 왜냐하면 1948년부터 2019년까지는 참여정부 레임덕+이명박 정부 허니문인 2006년~2008년 상반기를 제외하면 성별 무관하게 30대는 30%p대 패배가 디폴트였기 때문이다. 2020년 21대 총선때서야 남성에서 -24%p로 처음 30%p 이내로 격차를 좁혔으며, 여성에서 30%p 이내로 격차를 좁힌건 2021년 재보궐선거가 최초이다.[341] 남성 -29%p, 여성 -31%p로, 2016년~2020년보다는 낫고(이시기 보수정당은 40대에서 성별무관 35%p 이상의 압도열세였다.) 2021년~2023년보다는 부진하였다. 물론 2016년부터 현재까진 보수계열이 1번(2021년)을 제외하곤 40대에서 항상 압도열세긴 했다.[342] 남성 -19%p, 여성 -13%p로 70년대생이 유입되면서 민주진보계열이 50대에서 점점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15년간은 보수정당이 열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343] 다만 60대도 완전히 예전 같지는 않다. 물론 아직은 보수성향이 압도우위긴 하나 제3공화국 시기 태어난 586세대가 유입되면서 보수성향이 약간씩 약해지고 있다.[344] 현재까지 국민의힘의 완전한 콘크리트 지지층이다.[345] 60대에서는 29%p, 70대 이상에서는 무려 47%p 격차로 민주당을 크게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세대에서 대패하는 바람에 전체 선거도 지고 만 것이다.[346] 남성 +12%p (김문수-이재명 기준), 여성 -33%p.[347] 남성 -3%p, 여성 -26%p.[348] 남성 -52%p, 여성 -49%p.[349] 남성 -47%p, 여성 -40%p.[350] 본래는 대전, 세종, 천안, 아산, 청주도 보수정당 텃밭이었지만, 신도시 개발과 젊은 세대의 유입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으로 변하고 있다.[351]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 가지는 의미는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하다. 이는 과거 이승만, 박정희가 자신의 쿠데타 또는 독재 권력 구축이나 유지를 위해서 발령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사회적으로 검열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기에 현대 한국 사회는 독재 및 권위주의에 매우 부정적이며, 그 수단인 계엄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당시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계엄령을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반대 세력 척결을 목적으로 선포하였으니 정당성에 큰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352]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353] 무엇보다 2차 계엄이 있을 위기감이 범국민적으로 퍼져있었고, 실제로 윤석열 본인 또한 계엄령을 계속 선포할 생각이였다는 내부 증언이 있는 마당에 그 윤석열에게서 군통수권을 즉각 빼앗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을 국민의힘의 105명 국회의원들이 받았다.[354]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것도 10년도 채 안되어 바로 전임 보수정당 대통령의 탄핵을 겪고, 민주화 이후 최초로 35년 만에 단 한번 정권교체를 이뤄내고도 파면되었다.[355] 이재명이 궐위없이 퇴임할 경우에는 17년을 넘긴다. 17년은 박근혜가 정계에 입문하고, 대통령 당선까지 걸린 기간(약 15년)을 뛰어넘는다. 최소로 잡아도 2030년 22대 대선에서 보수정당이 정권을 탈환했다고 가정했을 때, 22대 대통령이 퇴임하는 2035년이면 22년이 걸린다.[356] 물론 절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당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장동혁 대표가 윤석열을 대놓고 옹호하자 상당수의 당 내 중진들이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비윤세력이 꽤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비주류인 만큼 당내 세력이 약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현재까지만 봤을 때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357] 국민의힘 논평만 봐도 절반 이상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물론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로 논평 절반을 국민의힘을 비난하는 내용이 차지한다.[358] 막말 정치인들과 극우 성향의 정치인 대거 탈락도 주요한 원인으로 추정된다.[359] 정청래 의원은 2003년 설립한 인터넷 정치단체 '국민의힘'을 설립하고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정청래 의원은 2022년 8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은 나와 많은 회원들이 2003년에 발족한 시민단체 이름이다. 내가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단체"라면서, "명백한 이름 훔치기다. '국민의 힘'이란 이름을 도용하지 말라"고 밝혔다.[360] 특히 윤희석 대변인은 투표 부결 후의 각 매체 라디오 방송에서 집단 퇴장 및 투표 거부라는 수단만큼은 절대로 쓰면 안됐다고 한탄하면서 상황 파악을 못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깜과 동시에 손절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나마 투표를 한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은 국민의힘 의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까방권을 얻은 상태다. 심지어 반대표를 던졌던 김상욱도 아무리 대통령의 탄핵을 막고 싶어도 차라리 투표의 방식으로 항거했어야 하는데, 집단 퇴장 및 투표 거부 강요라는 수단을 써서는 안됐다고 자신의 소견을 확실하게 밝혔을 정도로, 투표 거부 및 집단 퇴장을 한 시점에서는 국민의힘에서 상기된 셋을 제외한 전체가 정치계에서 완전히 쿠데타에 가담한 반란군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다.[361] 그러나 이를 반대로 뒤집어 말하면 만에 하나 유승민 전 의원이 어느 연유로 당권을 쥐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개혁보수라는 가치의 본류를 두고 경쟁해야 하기에 그 순간 개혁신당은 존립의 가치와 의의를 모두 상실해 버리게 된다. 물론 지금의 당권파 주류나 자유한국당 계열의 세력이 당을 꽉 쥐고 있는 상황이기에, 소수파인 개혁보수 세력이 당의 주류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362] 특히 대안신당 분당 이후의 민주평화당은 더불어민주당보다 진보적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했을 정도로 좌경화되어, 경제 정책마저도 진보적이었다.[363] 사실 류호정의 원피스 논란인 경우는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유시민을 언급하면서 여성 정치인 위주로 해당 안건을 옹호하긴 했다. 사실 당시 류호정의 의상은 국회엔 영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청년 여성의 오피스룩 그 자체였고 단정했기 때문이다.[364] 사실 당시 박원순 자살 사건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대응과 달리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문제 대처는 매우 모범적인 사례여서 여성계에서도 꽤 호의적이였다. 전자인 경우는 피해호소인 드립에 더해 박원순 옹호 발언을 하는 등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태도를 보인 반면, 김종철건은 비록 경찰에 접수되진 않았지만,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말 그대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제대로 지키는 사례였기 때문이다.[365] 참고로 이를 보고 유시민은 민주당 2중대가 싫어서 국민의힘 2중대를 하고 있다라 언급한 바 있다.[366] 소장파나 친유계 개혁보수파들을 제외한 구 친박 출신 자한당 계열과 친황 등 적지 않은 인사들이 종종 합동집회까진 아니지만 게스트로 왕왕 등장한다. 이들이 원내 의총장과 당권 주류를 대거 장악하면서 전광훈의 자통당계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367] 다만 당무감사가 9월로 잡혀있어 위원회 정리가 끝나지 못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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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비판 및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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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역대 선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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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기타[편집]

  • People power를 검색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는 다음의 링크와 같은데, # 해외에서는 대부분 필리핀의 1980년대 피플파워 혁명[368] 아랍의 봄 등 민주화를 위한 시위나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떠올린다. 피플파워 용어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인 Flower power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2017년 2월 13일 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꿀 때 고려되었던 당명 후보인 '보수의 힘'과 유사하다.
  • 과거 네이비색을 임시 당색으로 선택한 적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전에 사용하던 붉은색 계열의 색보다 차분해 보인다는 점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비판 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의 당색과 헷갈릴 뿐더러,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색깔 중 하나인데 좌익 정당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영문 당명과[369] 정반대라며 비판했다. 결국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시절과 비슷한 빨간색으로 당색이 되돌아갔다.
  • 당색은 초창기에 빨강·노랑·파랑이었으나 빨강·파랑·하양이 되었다. 초창기 발표했을 때는 빨강, 노랑, 파랑은 각각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빨강)과 정의당(노랑), 더불어민주당(파랑)의[370] 당색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세 가지 색을 함께 사용해 보수부터 진보까지의 이념 스펙트럼을 아우르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세월호 리본과 중국 공산당 당기를 연상시킨다며 노란색에 대한 반발이 거센 편이었다. 우리가 정의당이냐며 하얀색으로 바꾸자는 부정적 반응이 많아서 결국 하얀색으로 교체되었다.
  • 국민의힘TV[371], 오른소리[372], 지식충전소[B], 국회대학교[B], 국초방송국[B] 등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나 사실상 당을 대표하는 공식 유튜브 계정은 국민의힘TV이다. 새누리당 시절인 2012년부터 국민의힘TV 채널이 제작되어 지금까지 당의 강령, 행보 등을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하여 게시하고 있다. 원래는 당의 형식적인 강령만 게시하고 선거철에 후보들의 홍보 영상만 올리는 등 별 관심을 받지 못하였으나, 국민의힘에서 2020년 후반기를 기점으로 강성 극우 유튜버 채널이 아닌 자당의 채널인 국민의힘TV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면서 구독자수와 조회수가 빠르게 늘었다. 2021년 재보궐선거의 경우 후보들이 극우 유투버 채널이 아니라 국민의힘TV와 후보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선거 유세활동을 하면서 강성 극우층의 배제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 토론을 TV 방송사와 국민의힘TV에서 개최하면서 조회수와 구독자가 폭증하였다.[376] 2022년 대선 때도 각종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구독자수를 꾸준히 늘렸고 현재는 청년 대변인 토론 등 국민의힘에서 개최하는 각종 행사를 소개하고 있다.
  • 국민의힘 당규에 따라 당 소속 공직자 중 대통령은 월 300만 원 이상의 직책당비를 납부한다.
  • 2026년 2월 9일 새 당명의 강령을 김종인의 기본소득과 경제 민주화 정책을 장대표가 삭제하고 자유민주주의, 이승만 대통령의 상징인 건국, 반공을 보수정당의 상징을 키워드로 결정하였다.

2.41. 관련 문서[편집]

2.42. 지지율[편집]

2.4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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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당명 변경)
국민의힘
국민의힘

(창당준비위원회)

(창당준비위원회)

(개별 합류)[379]

(창당준비위원회)

(개별 합류)[380]

(개별 합류)[381]

(개별 합류)[382]

(흡수 합당)

(개별 합류)

(창당준비위원회)[383]

(창당준비위원회)[384]
시대전환

(흡수 합당)

(개별 합류)[386]

(개별 합류)

(개별 합류)[388]

(개별 합류)[389]

(개별 합류)[390]

(개별 합류)[391]
국민의힘
국민의힘
(현재)

(흡수 합당)[392]

(개별 합류)[393]

(개별 합류)[394]

(개별 합류)
더불어민주당
(2017.5.10.~​2022.5.9.)
국민의힘
(2022.5.10. ~ 2025.4.4.​)
더불어민주당
(2025.6.4. ~ 현재​)
[ 인물 및 단체 ]
지휘부[참조]
우두머리
(수괴)[2]
중요임무
종사
[3]
모의 참여
지휘
지휘부 외
국방부 내 인물
양재응
국회협력단장
신○○
HID 북파공작팀장
오○○
정보사 기반조성단장
안찬명
합참 작전부장
서동설
합참 심리전과장
강동길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박성훈
육본 정훈실장 겸 계엄부 보도처장
우동호
방첩사 감찰실장
임삼묵
방첩사 제2처장
이창엽
방첩사 비서실장
이경민
방첩사 보안처장
윤비나
방첩사 법무실장
구민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
김형기
제1공수특전여단 제1특전대대장
김문상
수방사 작전처장
권영환
합참 계엄과장
박정환
특전사 참모장
유재원
방첩사 사이버보안실장
송제영
방첩사 포렌식수사실장
양승철
방첩사 경호경비부대장
나승민
방첩사 신원보안실장
진○○
방첩사 신원보안과장
박성하
방첩사 기획관리실장
이재학
방첩사 안보수사실장
편강철
국조본 전산망민원조사단장
정승기
국조본 수사단장
홍창식
국방부 법무관리관
김상환
육본 법무실장
김흥준
육본 정책실장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조종래
육본 정보작전참모부장
김○○
육본 워리어플랫폼TF장
김승완
육본 군사경찰실장
오혁재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
배진현
육본 인사기획근무차장
조재명
육본 사이버작전센터장
김진익
육본 인사참모부장
최순건
육본 군수참모부장
정학승
육본 동원참모부장
김봉균
육본 군수기획차장
박○○
육본 기동전력과장
정○○
육본 인사근무과장
최○○
육본 복지정책과장
최원식
육본 작전교훈차장
이정욱
육본 전력1차장
장종중
육본 정책차장
김영균
육본 정보차장
김진성
제55경비단장
행정부 등
수사 대상
[4]
김성훈
제2기동단장
백현석
제4기동단장
서재찬
제5기동단장
조남형
제6기동단장
이철희
제7기동단장
전창훈
국수본 수사기획담당관
이현일
국수본 수사기획계장
주진우
서울경찰청 경비부장
손제한
서울경찰청 수사차장
박재현
서울경찰청 경무부장
임경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박주현
서울경찰청 경비과장
이준수
서울경찰청 홍보담당관
유윤종
서울경찰청 치안정보부장
오승진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장
김기종
서울경찰청 경무기획과장
오부명
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
최창복
서울경찰청 경비안전계장
박규남
경기남부청 경비과장
민경훈
경기남부청 치안정보과장
강일원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교통부장
이재영
서울경찰청 범죄예방대응부장
최현석
서울경찰청 생활안전차장
백남익
서울경찰청 청문감사인권담당관
김문영
경기남부청 공공안전부장
선전​·선동 혐의
피고발
[5]
성삼영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성창경
자유통일당 수석대변인
최재현
KBS 보도국장
김○○
전광훈의 측근
김준희
자유대학 대표
심재홍
자유대학 수석대변인
소기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고병찬
운정참존교회 담임목사
심하보
은평제일교회 담임목사
공병호
유튜버
김상진
유튜버
김성원
유튜버
이길우
유튜버
안정권
유튜버
고성국
유튜버
이봉규
유튜버
배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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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민
유튜버
한정석
유튜버
권유
유튜버
배의철
변호사
김계리
변호사
신평
변호사
노재동
일반인
최명진
일반인
손광기
일반인
정병윤
일반인
서옥식
일반인
권○○
일반인
박주현
일반인
이동수
일반인
이국행
일반인
노재성
일반인
관련 인물
관련 단체
관련 둘러보기 틀
[ 각주 ]
[참조]
    
: 2024년 제52회(12월 3일 밤) 국무회의 참석자
    
: 충암파 또는 용현파로 지목된 인물. 이하 동일
[2] 형법 제87조에서 정한 내란 혐의로 사법부에서 지휘부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함에 따라 동조 제1호인 우두머리(수괴)에 해당하는 인물. 수사기관 영장, 출석요구서, 공소장 등 문서에 내란 우두머리 적시, 형 미확정. 2020년 형법 개정으로 '수괴'에서 '우두머리'라는 순우리말로 변경됨. 국가보안법, 군형법 등은 '수괴()' 표현 유지[3] 형법 제87조에 따라 사법부에서 해당 인물들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발부했거나 검찰에서 중요 내란중요임무종사 공범으로 지목함에 따라 제2호 내란중요임무종사로 기입.[4] 형법 제87조에 따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및 사법부에서 해당 인물들을 내란 혐의로 소환을 통보함. 해당 인물들은 계엄 선포 이전 국무회의에 참석 및 참관 대상인 국무위원 및 정부 인사로서 내란을 방조했는지 여부가 수사 대상임.[5] 형법 제90조 2항에 근거한 내란 선전·선동 피고발인 목록.
[ 전개 ]
선포 및 해제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해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 (1기)
2024년 12월 14일 ~ 12월 27일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
2024년 12월 27일 ~ 2025년 3월 24일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 (2기)
2025년 3월 24일 ~ 5월 1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주호 권한대행 체제
2025년 5월 2일 ~ 6월 4일
이재명 정부
2025년 6월 4일 ~ 현재
수사 및 재판
관련 인물[전담]

1심 재판부
강완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조형우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박옥희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오세용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차영민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조순표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장성훈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오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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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전담]
    
: 내란전담재판부
    
: 영장전담법관
[임시] 7.1 7.2
[ 관련 문서 ]
탄핵 심판
반응
영향 및 평가
집단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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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투표불성립]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한 투표불성립으로 탄핵소추안 자동폐기[사임] 10.1 10.2 10.3 10.4 탄핵소추 대상자의 사임으로 탄핵소추안 폐기[단발] 14.1 14.2 14.3 여러 번 계속 진행되지 않고 단발성으로 그친 시위.
[368] 설명하자면 필리핀의 독재자가 민주화 세력에 의해 끌어내려진 혁명이다.[369] 다만 '인민'이라는 표현은 특별히 좌우를 가리는 표현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럽권에서 '인민' 표현은 오히려 우파 계열 정당명에서 더욱 자주 쓰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유럽연합에서 가장 큰 우파 유럽정당의 이름이 '유럽 인민당'이다. 다만 동아시아 쪽에서는 상황이 반대였기에 생겼던 일.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인민' 용어의 역할을 한 표현은 '국민'이었다.[370] 다만 더불어민주당의 진한 파랑색보다 옛 한나라당,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하늘색에 더 가깝다.[371] 옛이름은 오른소리이다.[372] 쇼츠채널이라곤하나 아직 아무영상도 없다.[B] 373.1 373.2 373.3 현재는 미사용.[376] 9월에서 10월 한달간 무려 2만명이 늘었다.[377] 2017.2.14~3.10[378] 여담으로 21세기 이후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의 임기가 5년, 4년, 3년으로 딱 떨어지게 됐다.[379] 최진석, 오경석 등.[380] 옥지원, 김철, 정해정 등.[381] 김성제, 양승숙, 윤영일, 배준현, 조배숙 등.[382] 신인규 등.[383] 장기표 등.[384] 정태근 등.[385] 이준석, 천하람, 허은아, 이기인, 김철근, 구혁모, 조대원, 김용남 등.[386] 정형호, 윤양수 등.[387] 오제세, 유종필, 조병길, 이상민, 김영주, 조원휘, 조광한, 김윤식 등.[388] 이언주, 공재광 등.[389] 황보승희 등.[390] 홍문종, 이규택 등.[391] 민경욱 등.[392] 이석연, 이인기, 최연숙, 김상욱, 김한근 등.[393] 황교안 등.[394] 양향자 등.[395] 이석연, 이인기, 최연숙, 김상욱, 김한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