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927년 경상남도 거제시 외포리에서 멸치 어장주였던 아버지 김홍조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재학 중이던 1951년 장택상 국무총리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만 26세에 당선되며 헌정 사상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하여 자유당을 탈퇴하고 야당 정치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 내내 강력한 반독재 투쟁을 이끌었다. 1979년 YH 무역 사건 와중에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하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을 남겼으며, 이는 부마민주항쟁과 10.26 사태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1983년에는 전두환 정권의 가택연금에 맞서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감행하여 민주화 세력의 결집을 이끌어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로 낙선했으나, 1990년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 발판으로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범해 당선되면서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인 정권인 '문민정부'를 열었다. 재임 기간 동안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 숙청하여 군부의 정치 개입을 원천 차단했고,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하며 부패 척결에 앞장섰다. 또한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하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역사 바로세우기를 추진했다. 그러나 임기 말 친인척 비리 사건과 노동법 날치기 통과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했고,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 위기를 막지 못하며 불명예스럽게 퇴임했다. 퇴임 후에는 민주화 원로로서 활동하다가 2015년 향년 87세로 사망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