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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밀러드 필모어(Millard Fillmore, 1800년 1월 7일 ~ 1874년 3월 8일)
미국의 제13대 대통령으로, 휘그당 소속의 마지막 대통령이다. 제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가 임기 중 급사함에 따라 부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승계하였다. 노예제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1850년 타협'을 승인하여 남북전쟁의 발발을 일시적으로 지연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노예주들의 손을 들어준 도망노예법에 서명함으로써 북부 지지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대외적으로는 매튜 페리 제독을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의 개항을 이끌어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재감이 미미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격동의 시대에 연방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분투했던 정치인이기도 하다.
미국의 제13대 대통령으로, 휘그당 소속의 마지막 대통령이다. 제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가 임기 중 급사함에 따라 부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승계하였다. 노예제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1850년 타협'을 승인하여 남북전쟁의 발발을 일시적으로 지연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노예주들의 손을 들어준 도망노예법에 서명함으로써 북부 지지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대외적으로는 매튜 페리 제독을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의 개항을 이끌어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재감이 미미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격동의 시대에 연방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분투했던 정치인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1800년 뉴욕주 핑거 레이크스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뉴욕주 의원을 거쳐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1848년 대선에서 재커리 테일러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850년 테일러 대통령의 서거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후, 최대 현안이었던 노예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의 타협안을 수용했다. 그러나 그가 서명한 도망노예법은 북부에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휘그당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여 재선 후보 지명을 받는 데 실패했다. 퇴임 후 1856년 아메리카당후보로 다시 대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남북전쟁 기간에는 링컨 행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으며, 노년에는 버펄로에서 교육 및 자선 사업에 매진하다가 1874년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