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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 1804년 11월 23일 ~ 1869년 10월 8일)
미국의 제14대 대통령으로, 남북전쟁 직전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재임한 인물이다. 잘생긴 외모와 부드러운 성품으로 '꽃미남 대통령'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북부 출신임에도 남부의 입장과 노예제를 옹호하는 '도허티(Doughface)' 정치인의 전형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통과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노예제 갈등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넣었으며, 이는 결국 차기 정권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 역사학계에서 평가하는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 최하위권에 머문다.
미국의 제14대 대통령으로, 남북전쟁 직전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재임한 인물이다. 잘생긴 외모와 부드러운 성품으로 '꽃미남 대통령'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북부 출신임에도 남부의 입장과 노예제를 옹호하는 '도허티(Doughface)' 정치인의 전형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통과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노예제 갈등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넣었으며, 이는 결국 차기 정권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 역사학계에서 평가하는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 최하위권에 머문다.
2. 생애[편집]
1804년 뉴햄프셔주에서 주지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든 칼리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었으며, 젊은 나이에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지내며 탄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멕시코-미국 전쟁에 장군으로 참전하여 군 경력까지 쌓은 그는 185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다크호스로 등장해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취임 직전 아들을 기차 사고로 잃는 비극을 겪으며 우울증 속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재임 중 가스덴 매입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개항을 유도하는 등 외교적 성과도 있었으나, 노예제 확대 문제를 둘러싼 '피 흘리는 캔자스'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며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 결국 자당인 민주당으로부터도 외면받아 재선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퇴임 후에는 알코올 중독과 고립 속에 지내다 1869년 고향 뉴햄프셔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