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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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건국 이전
2.1. 선진 시대2.2. 식민지 시대
3. 건국과 혁명
3.1. 미국 독립 전쟁3.2. 미합중국의 탄생
4. 영토 확장과 서부 개척
4.1. 영토의 비약적 확장4.2. 명백한 운명과 원주민의 비극
5. 남북전쟁과 재건
5.1. 갈등의 심화5.2. 연방의 위기와 통합
6. 도금 시대와 제국주의
6.1. 도금 시대(Gilded Age)6.2. 해외 진출과 제국주의
7.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7.1. 제1차 세계 대전 참전7.2. 광란의 20년대
8. 대공황과 뉴딜 정책
8.1. 검은 목요일의 재앙8.2. 뉴딜 정책
9.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9.1. 전면전의 소용돌이9.2.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10. 냉전 시대
10.1. 양극 체제의 시작10.2. 풍요 속의 혼란
11. 건국 이후(현대)
11.1. 냉전의 종식과 유일 패권11.2. 현재

1. 개요[편집]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초강대국 미국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건국 이전[편집]

2.1. 선진 시대[편집]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전,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자신들만의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이들은 대평원, 동부 삼림지대, 남서부 사막 등 각자의 환경에 맞춰 수렵과 농경을 이어갔으나,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는 않았다.

2.2. 식민지 시대[편집]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유럽인들이 대륙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영토를 탐색했으나, 최종적으로 현재 미국의 모태가 된 것은 영국 계열의 이주민들이었다.

1607년 최초의 성공적인 영국인 정착지인 제임스타운이 건설되었고, 1620년에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 메이플라워호를 탄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에 도착했다. 이후 영국의 지배 아래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13개 식민지가 차례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영국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누리며 성장했다.

3. 건국과 혁명[편집]

3.1. 미국 독립 전쟁[편집]

프랑스 인디언 전쟁 이후 재정난에 처한 영국 본토 정부는 식민지에 인지세법, 차세 등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식민지 주민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1773년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은 양측의 갈등을 폭발시켰고, 결국 1775년 레싱턴-콘코드 전투를 시작으로 미국 독립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3.2. 미합중국의 탄생[편집]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역사적인 미국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다. 조지 워싱턴 총사령관의 지휘와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식민지 군대는 요크타운 전투에서 승리했고,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1789년, 세계 최초의 성문 헌법에 따라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미합중국(USA)이 공식 출범했다.

4. 영토 확장과 서부 개척[편집]

4.1. 영토의 비약적 확장[편집]

건국 직후의 미국은 동부 연안에 국한된 약소국에 불과했으나, 엄청난 속도로 영토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지역을 단돈 1,500만 달러에 사들이며 영토를 단숨에 두 배로 불렸다(루이지애나 매입). 이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할양받았고, 1846년에는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하며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등 거대한 남서부 영토를 확보했다.

4.2. 명백한 운명과 원주민의 비극[편집]

이 시기 미국인들은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신이 부여한 운명이라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사상에 사로잡혔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수많은 이주민이 서부로 향하는 골드 러시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서부 개척 시대의 이면에는 체로키 부족 등의 강제 이주 경로인 '눈물의 길'을 비롯해, 삶의 터전을 잃고 학살당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피눈물 나는 비극이 자리 잡고 있었다.

5. 남북전쟁과 재건[편집]

5.1. 갈등의 심화[편집]

영토가 서쪽으로 확장되면서, 새로 편입되는 주(州)를 노예주로 할 것인가 자유주로 할 것인가를 두고 남부와 북부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상업제조업 중심의 북부는 노예제 폐지와 보호무역을 주장한 반면, 면화 대농장 중심의 남부는 노예제 유지와 자유무역을 요구했다. 1860년 노예제 반대를 표명한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 주들은 연방을 탈퇴하고 '아메리카 연합국'을 결성했다.

5.2. 연방의 위기와 통합[편집]

1861년 남군의 섬터 요새 공격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총력전 중 하나인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초반에는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이 우세를 점했으나, 북군은 압도적인 인구와 공업 생산력, 그리고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을 발판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의 대승 이후 승기를 잡은 북군은 1865년 남군의 항복을 받아내며 연방을 지켜냈다. 전쟁 직후 링컨은 암살당했으나,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6. 도금 시대와 제국주의[편집]

6.1. 도금 시대(Gilded Age)[편집]

전쟁의 상흔을 씻어낸 미국은 폭발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대륙 횡단 철도가 개통되었고 [앤드루 카네기], [존 D. 록펠러] 같은 독점 자본가들이 등장하며 미국은 세계 최대의 공업국으로 부상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시기를 겉은 황금으로 번쩍이지만 속은 정경유착과 빈부격차, 노동자 착취로 썩어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도금 시대'라 명명했다.

6.2. 해외 진출과 제국주의[편집]

국력이 넘쳐나자 미국은 고립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완승을 거둔 미국은 쿠바를 보호국으로 삼고 필리핀, , 푸에르토리코를 식민지로 획득했다. 비슷한 시기 하와이 왕국까지 합병하면서 미국은 본격적으로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아우르는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합류했다.

7. 제1차 세계 대전 시기[편집]

7.1. 제1차 세계 대전 참전[편집]

1914년 유럽 대륙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초기에 중립을 지키며 막대한 군수물자를 팔아 이득을 챙겼다. 그러나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독이 독일이 멕시코를 포섭하려 한 치메르만 전보 사건이 폭로되자 1917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전격 참전을 선언했다. 미국의 압도적인 자원과 병력 지원은 연합국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7.2. 광란의 20년대[편집]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호황을 맞이했다. 대량 생산 체제의 도입으로 자동차, 라디오, 세탁기 등이 대중화되었고, 주식 시장은 연일 폭등했다. 재즈 음악이 유행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이 화려한 풍요의 시절을 역사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부른다.

8. 대공황과 뉴딜 정책[편집]

8.1. 검은 목요일의 재앙[편집]

풍요는 영원할 것 같았으나 불어날 대로 불어난 자산 거품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시가 사상 최악으로 폭락한 '검은 목요일'을 기점으로 전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간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도산했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으며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8.2. 뉴딜 정책[편집]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테네시 계곡 개발 등 대규모 토목 공사로 일자리를 창출했고,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했다. 비록 대공황을 완벽하게 끝내지는 못했으나, 뉴딜 정책은 미국의 자본주의 체질을 바꾸고 국민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9. 제2차 세계 대전 시기[편집]

9.1. 전면전의 소용돌이[편집]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진 후에도 고립주의 여론 때문에 참전을 미루던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진주만 공습으로 뒤통수를 맞으며 전면전에 돌입했다. 미국은 순식간에 전시 경제 체제로 전환하여 연합국의 '민주주의의 병기창' 역할을 수행했다.

9.2.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편집]

유럽 전선에서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며 나치 독일을 압박했고,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며 1945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전쟁이 끝난 후, 유럽과 아시아의 경쟁국들이 모두 폐허가 된 상황에서 오직 미국만이 국력이 수십 배로 성장하여 지구 반쪽을 지배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를 열었다.

10. 냉전 시대[편집]

10.1. 양극 체제의 시작[편집]

전쟁 직후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의 맹주로서, 공산주의 진영의 선두 주자인 소련과 지구의 주도권을 두고 격돌하는 냉전 체제에 돌입했다. 미국은 마셜 계획을 통해 유럽의 재건을 도왔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창설해 공산권의 확장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6.25 전쟁베트남 전쟁 등 대리전이 치러지기도 했다.

10.2. 풍요 속의 혼란[편집]

1950~60년대 미국 내부적으로는 전후 베이비 붐과 함께 경제적 풍요를 누렸으나, 동시에 격렬한 사회적 변혁을 겪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 주도한 흑인 민권 운동이 일어나 마침내 법적인 인종 차별이 폐지되었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히피 문화와 반전 운동이 대륙을 뒤흔들었다. 갈등 속에서도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통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며 과학 기술의 정점을 과시했다.

11. 건국 이후(현대)[편집]

11.1. 냉전의 종식과 유일 패권[편집]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소련을 압박했다. 결국 체제 경쟁에서 한계에 다다른 소련이 1991년 해체되면서 미국은 지구상에 적수가 없는 세계 유일의 단독 패권국 지위에 올랐다. 90년대는 IT 산업의 폭발적 성장(닷컴 버블)과 함께 미국의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이 전 세계를 뒤덮은 시기였다.

11.2. 현재[편집]

2001년 일어난 9.11 테러는 미국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고,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져들었다.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 금융 위기로 경제적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파격적인 행보의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조 바이든 다시 도널드 트럼프 행보를 거치며 미국 내부의 정치적·사회적 양극화 갈등이 심화되는 진통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