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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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건국 이전
2.1. 선진 시대(엘람과 메디아)
3. 아케메네스 왕조
3.1. 페르시아 제국의 탄생3.2. 제국의 전성기와 멸망
4. 헬레니즘과 파르티아
4.1. 셀레우코스와 아르사케스 왕조4.2. 로마의 라이벌
5. 사산 왕조
5.1. 페르시아 부흥 운동5.2. 로마 황제를 사로잡다
6. 이슬람화와 혼란기
6.1. 이슬람의 정복과 개종6.2. 이민족의 지배 체제
7. 사파비 왕조
7.1. 시아파 정체성의 확립7.2. 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
8. 아프샤르, 잔드, 카자르 왕조
8.1. 혼란과 카자르의 등장8.2. 제국주의의 먹잇감
9. 팔레비 왕조
9.1.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9.2. 백색혁명과 독재
10. 이슬람 혁명
10.1. 왕정의 종식10.2.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1. 현대
11.1. 이란-이라크 전쟁과 고립11.2. 핵개발과 21세기의 진통

1. 개요[편집]

이란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건국 이전[편집]

2.1. 선진 시대(엘람과 메디아)[편집]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란 고원 남서부에는 엘람 문명이 번성하며 메索포타미아 문명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했다. 이후 기원전 7세기경, 이란계 부족들이 연합하여 이란 고도 최초의 통일 왕국인 메디아를 건국했다. 메디아는 당시 중동의 패권자였던 아시리아를 멸망시키며 강대국으로 부상했으나, 내분으로 인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3. 아케메네스 왕조[편집]

3.1. 페르시아 제국의 탄생[편집]

기원전 550년, 메디아의 제후국이었던 안샨의 통치자 키루스 2세가 메디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건국했다. 키루스 대왕은 신바빌로니아와 리디아를 차례로 정복하며 대제국을 건설했고, 피정복민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관용 정책을 펼쳤다. 특히 바빌론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3.2. 제국의 전성기와 멸망[편집]

이후 다리우스 1세 시기에 이르러 제국은 인도 인더스강부터 유럽의 트라키아에 이르는 대영토를 확보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전국의 도로망인 '왕의 길'을 정비하고 역참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후대 황제들이 그리스 침공(페르시아 전쟁)에 실패하면서 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 왕국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을 받아 허망하게 멸망하고 만다.

4. 헬레니즘과 파르티아[편집]

4.1. 셀레우코스와 아르사케스 왕조[편집]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요절한 후, 이란 영토는 그의 장군이 세운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급격한 헬레니즘화(그리스화)를 겪었다. 이에 반발한 이란계 유목민 부족의 지도자 아르사케스 1세가 기원전 247년 동북부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하니, 이것이 바로 파르티아이다.

4.2. 로마의 라이벌[편집]

파르티아는 헬레니즘 세력을 몰아내고 이란 고도를 재통합했다. 이들은 실크로드의 중간 무역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고, 당대 서양의 최강자였던 로마 제국과 수백 년 동안 치열하게 대립했다. 특히 기원전 53년 카레 전투에서는 로마의 삼두정치 정치가인 크라수스의 군대를 전멸시키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5. 사산 왕조[편집]

5.1. 페르시아 부흥 운동[편집]

224년, 파르티아의 지방 제후였던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건국했다. 사산 왕조는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기치 아래, 그리스-로마 문화의 색채를 빼고 고유의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확립했다.

5.2. 로마 황제를 사로잡다[편집]

사산 왕조는 파르티아보다 훨씬 강력하고 조직적인 군사력으로 로마를 압박했다. 특히 샤푸르 1세는 260년 에데사 전투에서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하여 굴욕을 안겼다. 6세기 호스라우 1세 시기에는 문화와 경제의 황금기를 맞이했으나, 비잔티움 제국과의 소모적인 장기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6. 이슬람화와 혼란기[편집]

6.1. 이슬람의 정복과 개종[편집]

651년, 신흥 세력인 아랍 유목민의 이슬람 제국이 사산 왕조를 멸망시켰다(네하반드 전투). 이로 인해 수천 년간 이어지던 조로아스터교 중심의 페르시아 문명은 급격한 전환기를 맞이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다. 다만 이란인들은 아랍인들에게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페르시아어와 문화를 완강하게 보존했다.

6.2. 이민족의 지배 체제[편집]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던 이란은 9세기부터 타히르 왕조,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 등 이란계 독립 지방 정권들이 들어서며 페르시아 문화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셀주크 튀르크 등 튀르크계 유목민의 지배를 받았고,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국토가 처참하게 파괴된 후 일 칸국티무르 제국의 지배를 받는 암흑기를 거쳤다.

7. 사파비 왕조[편집]

7.1. 시아파 정체성의 확립[편집]

1501년, 이스마일 1세가 이민족 세력을 몰아내고 이란을 다시 통일하며 사파비 왕조를 건국했다. 사파비 왕조는 이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인데, 당시 주류였던 수니파 대신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강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이란이 중동에서 고립된 시아파 맹주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7.2. 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편집]

아바스 1세 시기(16~17세기)에 사파비 왕조는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수도를 이스파한으로 옮기고 대대적인 건축과 예술을 장려하여 "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화려한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 숙적이었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며 영토를 넓혔으나, 후기 무능한 군주들의 등장과 아프간 부족의 침입으로 1736년 멸망했다.

8. 아프샤르, 잔드, 카자르 왕조[편집]

8.1. 혼란과 카자르의 등장[편집]

사파비 멸망 후 나디르 샤가 아프샤르 왕조를 세워 인도 델리까지 약탈하는 등 군사적 천재성을 발휘했으나 암살당했고, 뒤이어 잔드 왕조가 잠시 이란을 통치했다. 혼란 끝에 1796년 아가 무함마드 칸이 이란을 재통합하고 테헤란을 수도로 삼아 카자르 왕조를 개창했다.

8.2. 제국주의의 먹잇감[편집]

이 시기 이란은 서구 열강의 본격적인 침략을 받기 시작했다. 남하하는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하며 코카서스 영토를 대거 상실했고, 인도에서 올라오는 대영제국과의 사이에서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다. 왕실은 사치와 무능으로 일관하며 각종 이권을 외국에 헐값으로 넘겼고, 이에 분노한 민중들은 1891년 담배 보이콧 운동과 1906년 입헌혁명을 일으키며 저항했다.

9. 팔레비 왕조[편집]

9.1.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편집]

카자르 왕조의 무능 속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출신의 레자 샤 팔레비가 1925년 새 왕조를 열었다. 그는 강력한 독재를 바탕으로 근대화 정책을 펼쳤고, 1935년 국호를 대외적으로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공식 변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친독일 성향을 보이다가 영-소 연합군에 의해 강제 퇴위당한 후, 그의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9.2. 백색혁명과 독재[편집]

어린 샤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토지 개혁, 여성 참정권 부여 등 전면적인 서구화·근대화 정책인 백색혁명을 추진했다. 오일 머니로 경제는 급성장했으나, 지나치게 빠른 서구화는 이슬람 전통 사회와 충돌했고 빈부격차는 극심해졌다. 국왕이 비밀경찰을 동원해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자, 민중의 불만은 폭발 직전까지 치솟았다.

10. 이슬람 혁명[편집]

10.1. 왕정의 종식[편집]

1979년, 오랜 망명 생활을 하던 이슬람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전 국민적인 이란 이슬람 혁명이 발발했다. 팔레비 국왕은 해외로 도피했고, 천년 넘게 이어지던 이란의 군주제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국민투표를 거쳐 성직자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절대 권력을 쥐는 신정 체제인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0.2.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편집]

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습격해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했다. 444일간 이어진 이 사건으로 인해 팔레비 시절 혈맹이었던 미-이란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났으며, 이란은 친미 국가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반미·반서방' 국가로 돌아서게 되었다.

11. 현대[편집]

11.1. 이란-이라크 전쟁과 고립[편집]

혁명의 혼란을 틈타 1980년 사담 후세인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면서 8년간의 참혹한 이란-이라크 전쟁이 치러졌다. 미국과 아랍 국가들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를 상대로 이란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소모하며 결사적으로 영토를 지켜냈다. 1989년 호메이니 사후 알리 하메네이가 2대 최고지도자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신정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1.2. 핵개발과 21세기의 진통[편집]

2000년대 이후 이란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다가 적발되어 국제사회로부터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았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핵합의(JCPOA)가 타결되며 잠시 숨통이 트이는 듯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합의 탈퇴와 제재 재개로 경제는 다시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장기화된 경제난과 종교적 억압에 신음하는 이란 내부에서는 2009년 녹색운동, 2022년 히잡 시위 등 변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민중 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나며 신정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중동 내 친이란 무장 세력인 저항의 축을 조종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과 대립하고 있었으며 2026년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합동 공격으로 알리 하메네이를 암살하며 이란 전쟁이 발생하였으며 협상이 진행된 현재도 완전히 전쟁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