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이란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건국 이전[편집]
2.1. 선진 시대(엘람과 메디아)[편집]
3. 아케메네스 왕조[편집]
3.1. 페르시아 제국의 탄생[편집]
3.2. 제국의 전성기와 멸망[편집]
4. 헬레니즘과 파르티아[편집]
4.1. 셀레우코스와 아르사케스 왕조[편집]
4.2. 로마의 라이벌[편집]
5. 사산 왕조[편집]
5.1. 페르시아 부흥 운동[편집]
5.2. 로마 황제를 사로잡다[편집]
6. 이슬람화와 혼란기[편집]
6.1. 이슬람의 정복과 개종[편집]
6.2. 이민족의 지배 체제[편집]
7. 사파비 왕조[편집]
7.1. 시아파 정체성의 확립[편집]
7.2. 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편집]
8. 아프샤르, 잔드, 카자르 왕조[편집]
8.1. 혼란과 카자르의 등장[편집]
사파비 멸망 후 나디르 샤가 아프샤르 왕조를 세워 인도 델리까지 약탈하는 등 군사적 천재성을 발휘했으나 암살당했고, 뒤이어 잔드 왕조가 잠시 이란을 통치했다. 혼란 끝에 1796년 아가 무함마드 칸이 이란을 재통합하고 테헤란을 수도로 삼아 카자르 왕조를 개창했다.
8.2. 제국주의의 먹잇감[편집]
9. 팔레비 왕조[편집]
9.1.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편집]
카자르 왕조의 무능 속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출신의 레자 샤 팔레비가 1925년 새 왕조를 열었다. 그는 강력한 독재를 바탕으로 근대화 정책을 펼쳤고, 1935년 국호를 대외적으로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공식 변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친독일 성향을 보이다가 영-소 연합군에 의해 강제 퇴위당한 후, 그의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9.2. 백색혁명과 독재[편집]
어린 샤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토지 개혁, 여성 참정권 부여 등 전면적인 서구화·근대화 정책인 백색혁명을 추진했다. 오일 머니로 경제는 급성장했으나, 지나치게 빠른 서구화는 이슬람 전통 사회와 충돌했고 빈부격차는 극심해졌다. 국왕이 비밀경찰을 동원해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자, 민중의 불만은 폭발 직전까지 치솟았다.
10. 이슬람 혁명[편집]
10.1. 왕정의 종식[편집]
1979년, 오랜 망명 생활을 하던 이슬람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전 국민적인 이란 이슬람 혁명이 발발했다. 팔레비 국왕은 해외로 도피했고, 천년 넘게 이어지던 이란의 군주제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국민투표를 거쳐 성직자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절대 권력을 쥐는 신정 체제인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0.2.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편집]
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습격해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했다. 444일간 이어진 이 사건으로 인해 팔레비 시절 혈맹이었던 미-이란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났으며, 이란은 친미 국가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반미·반서방' 국가로 돌아서게 되었다.
11. 현대[편집]
11.1. 이란-이라크 전쟁과 고립[편집]
11.2. 핵개발과 21세기의 진통[편집]
2000년대 이후 이란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다가 적발되어 국제사회로부터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았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핵합의(JCPOA)가 타결되며 잠시 숨통이 트이는 듯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합의 탈퇴와 제재 재개로 경제는 다시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장기화된 경제난과 종교적 억압에 신음하는 이란 내부에서는 2009년 녹색운동, 2022년 히잡 시위 등 변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민중 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나며 신정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중동 내 친이란 무장 세력인 저항의 축을 조종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과 대립하고 있었으며 2026년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합동 공격으로 알리 하메네이를 암살하며 이란 전쟁이 발생하였으며 협상이 진행된 현재도 완전히 전쟁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