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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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다리우스 1세(Darius I, 기원전 550년 경 ~ 기원전 486년)

아케메네스 제국 페르시아의 제3대 샤한샤이다. 찬탈자 가우마타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후, 제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며 혼란을 수습했다. 영토를 인도 인더스강 유역에서부터 유럽의 트라키아까지 확장하여 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중앙 집권적 행정 제도를 정비하고 도로망과 화폐 제도를 통일하는 등 내치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겨 제국의 실질적인 창건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통치 말기 그리스 원정을 단행했다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2. 생애[편집]

아케메네스 왕조의 방계 가문 출신으로, 창건자 키루스 2세의 친척인 히스타스페스의 아들이었다.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 원정 중 사망하고 제국이 가우마타의 찬탈로 혼란에 빠지자, 다른 귀족들과 힘을 합쳐 가우마타를 처단하고 기원전 522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기에는 정통성 문제로 제국 곳곳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으나, 이를 모두 진압하고 베히스툰 비석에 자신의 승리 기록을 새겼다. 이후 제국을 20여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고 총독을 파견했으며, 감찰관인 '왕의 귀'를 보내 중앙 집권제를 확립했다. 수도 수사에서 사르디스까지 이어지는 약 2,400km의 도로망인 '왕의 길'을 건설하고 역참제를 정비해 물류와 통신을 혁신했다. 기원전 499년 이오니아의 그리스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한 후, 배후인 그리스 본토를 정벌하기 위해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군에 패해 철수했다. 재차 그리스 원정을 준비하고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려던 중, 기원전 486년 병으로 사망하여 낙스에루스탐의 암벽 묘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