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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Mandate for Palestine, 1920년 ~ 1948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연맹의 위임 아래 영국이 통치한 중동 지역의 행정 구역이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에 설치되었으며, 오스만 제국이 전쟁에서 패배한 뒤 그 영토를 승계하는 과정에서 성립하였다. 위임통치령은 1920년 산레모 회의에서 영국의 통치가 결정되었고, 1922년 국제연맹의 승인을 받아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영국은 밸푸어 선언에 따라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원하는 한편, 현지 아랍 주민들의 권익도 보장해야 하는 상반된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유대인 이민 증가와 아랍인의 민족주의 운동이 충돌하면서 지역 내 갈등은 점차 심화되었다.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은 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으로 평가된다. 1948년 영국이 통치를 종료하고 철수하면서 위임통치령은 해체되었으며, 이후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2. 역사[편집]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 정부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 영국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며, 전쟁 종전 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1920년 산레모 회의에서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위임통치권을 부여받았다. 이후 1922년 국제연맹은 이를 공식 승인하였으며, 같은 해 요르단강 동쪽 지역을 분리하여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위임통치령의 중심 지역은 요르단강 서안과 지중해 연안으로 축소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 이민이 급증하였다. 특히 독일에서 나치 독일이 집권한 이후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다. 이에 따라 아랍인 사회에서는 토지 매입과 인구 변화에 대한 불만이 커졌으며,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아랍 대봉기가 발생하였다. 영국은 이를 진압하는 한편 유대인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주 요구가 증가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적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영국은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자 1947년 이를 국제연합에 이관하였다. 같은 해 국제연합 총회 결의 제181호는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할하는 방안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 아랍 지도부는 분할안을 거부하였고, 유대인 지도부는 이를 수용하였다. 결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다음 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같은 시점에 영국의 위임통치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