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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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잉글랜드 왕국(Kingdom of England)

927년 애설스탠이 잉글랜드 대부분의 지역을 통합하여 성립한 국가로, 그레이트브리튼섬 남부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중세 및 근세 유럽의 왕국이다. 수도는 런던였으며, 1707년 스코틀랜드 왕국과의 연합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수립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잉글랜드 왕국은 중세 유럽의 대표적인 봉건국가 가운데 하나였으며, 노르만 정복, 백년전쟁, 장미전쟁, 잉글랜드 종교개혁 등 영국사와 유럽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들의 중심 무대였다. 또한 의회 제도의 발전과 마그나 카르타의 체결을 통해 근대 입헌정치의 기초를 형성하였으며, 후일 대영제국으로 발전하는 정치·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2. 역사[편집]

잉글랜드 지역에는 원래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 게르만계 부족들이 여러 왕국을 세워 통치하고 있었다. 9세기 후반 웨식스 왕국알프레드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은 바이킹의 침략에 맞서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927년 애설스탠이 잉글랜드 대부분을 통일하면서 잉글랜드 왕국이 성립되었다. 1066년 노르망디 공국정복왕 윌리엄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잉글랜드를 정복하였다. 이 사건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이후 프랑스계 귀족 문화와 행정 제도가 대거 유입되었다. 노르만 왕조와 플랜태저넷 가문 시기에는 왕권이 강화되었고 대륙 영토를 둘러싼 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1215년 존 왕은 귀족들의 압력으로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였다. 비록 당시에는 왕권 제한 문서에 불과했으나, 후대에는 법치주의와 입헌주의 발전의 상징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14세기부터는 프랑스 왕국백년전쟁을 벌였으며, 헨리 5세 시기에는 한때 프랑스 북부 대부분을 장악하기도 했으나 결국 모든 대륙 영토를 상실하였다. 15세기에는 왕위 계승 문제로 장미전쟁이 발생하였다. 전쟁은 튜더 왕조의 창시자인 헨리 7세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후 왕권이 안정되었다. 헨리 8세는 교황청과 결별하고 잉글랜드 국교회를 수립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하였고, 엘리자베스 1세 치세에는 해상 무역과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1603년 스코틀랜드 왕국제임스 6세잉글랜드 왕국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양국은 동일한 군주를 섬기는 동군연합 상태가 되었다. 이후 정치적 통합 논의가 이어졌으며, 1707년 연합법이 제정되어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잉글랜드 왕국은 소멸하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하여 새로운 국가 체제로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