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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나 카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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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상세

1. 개요[편집]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 왕국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승인한 헌장이다. 정식 명칭은 《Magna Carta Libertatum》(자유의 대헌장)이며, 국왕의 권력을 법으로 제한하고 신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당시 잉글랜드 귀족들은 존 왕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전제적인 통치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런니미드(Runnymede)에서 국왕으로부터 헌장 승인을 받아냈다. 비록 체결 직후 내전이 발생하면서 원래의 마그나 카르타는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재발행되면서 영국 헌정사의 기초 문서로 자리 잡았다.

2. 상세[편집]

13세기 초 존 왕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여 노르망디 공국을 비롯한 대륙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그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으며, 봉건적 관습을 무시한 채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이러한 정책은 귀족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1215년 반란으로 이어졌다. 1215년 6월 15일 반란 귀족들은 런니미드에서 존 왕에게 헌장 승인을 강요하였다. 마그나 카르타는 총 63개 조항으로 구성되었으며, 교회의 자유 보장, 봉건 관습 준수, 공정한 재판, 재산권 보호 등을 규정하였다. 특히 제39조와 제40조는 가장 유명한 조항으로 꼽힌다. 제39조는 "적법한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자유민을 체포·투옥·추방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으며, 제40조는 "정의를 판매하거나 거부하거나 지연시키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존 왕은 곧 마그나 카르타를 무효화하려 하였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역시 이를 강압에 의해 체결된 문서라며 무효를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제1차 남작 전쟁이 발발하였다. 존 왕이 1216년 사망한 뒤 어린 헨리 3세가 즉위하면서 섭정 정부는 귀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마그나 카르타를 재발행하였고, 이후 1217년과 1225년에도 수정본이 공포되었다. 1297년 에드워드 1세 치세에는 마그나 카르타가 공식 법률로 편입되었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영국 의회와 법률가들은 이를 왕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활용하였다. 특히 17세기 청교도 혁명명예혁명 시기에는 국왕 역시 법 아래에 있다는 원칙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로 인용되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마그나 카르타는 민주주의 헌법 그 자체라기보다는 중세 귀족들의 특권을 보장하기 위한 봉건 문서에 가까웠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최초로 명문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후대의 권리청원, 권리장전, 미국 독립선언서, 미국 헌법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