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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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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카페 왕조와 국가 기틀 확립 (987~1328)2.2. 발루아 왕조와 시련의 시기 (1328~1589)2.3. 부르본 왕조와 절대주의의 정점 (1589~1792)2.4. 복고왕정과 종말 (1814~1848)

1. 개요[편집]

프랑스 왕국(Royaume de France, 987년 ~ 1792년 / 1814년 ~ 1815년, 1815년 ~ 1848년)

과거 유럽에 존재했던 국왕이 다스리던 프랑스의 국가이다. 일반적으로 987년 위그 카페가 즉위하여 카페 왕조를 개창한 시점을 프랑스 왕국의 시작으로 본다. 중세와 근대 시기 유럽의 정치, 문화,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백년전쟁을 거치며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17세기 루이 14세 시대에는 절대왕정의 정점을 찍으며 유럽 최강국으로 군림했으나,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1792년 첫 해체를 맞이했다. 이후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부르본 복고왕정(1814~1830), 7월 왕정(1830~1848)의 형태로 부활했다가 1848년 2월 혁명으로 최종 멸망했다.

2. 역사[편집]

2.1. 카페 왕조와 국가 기틀 확립 (987~1328)[편집]

987년 서프랑크 국왕 루이 5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귀족들에 의해 위그 카페가 국왕으로 추대되면서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일드프랑스(파리 주변)에만 왕권이 미치는 약체 왕국이었으나, 필리프 2세영국의 존 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거대한 영토를 회수하며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이후 루이 9세의 내치 정비와 필리프 4세의 아비뇽 유수 등을 거치며 프랑스는 강력한 봉건 국가로 성장했다.

2.2. 발루아 왕조와 시련의 시기 (1328~1589)[편집]

카페 왕조의 직계가 끊어지자 사촌인 발루아 왕조의 필리프 6세가 즉위했다. 이에 영국(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백년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초·중기에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겪었으나, 잔 다르크의 활약과 샤를 7세의 전술로 영국군을 축출하고 승리했다. 전쟁 승리 이후 상비군을 확보한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기반을 닦았고, 16세기에는 이탈리아 전쟁과 위그노 전쟁(종교전쟁)이라는 거대한 혼란기를 통과해야 했다.

2.3. 부르본 왕조와 절대주의의 정점 (1589~1792)[편집]

종교전쟁의 혼란 속에서 앙리 4세가 즉위하며 부르본 왕조가 시작되었고, 낭트 칙령을 통해 종교적 화합과 국가 재건을 이루어냈다. 그의 손자인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왕권신수설을 바탕으로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유럽의 패권을 쥐었으나, 거듭된 전쟁과 사치로 국가 재정은 파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결국 루이 16세 대에 이르러 재정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1792년 왕정이 폐지되었다.

2.4. 복고왕정과 종말 (1814~1848)[편집]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1제국이 몰락한 후, 빈 체제에 의해 루이 18세가 복위하면서 부르본 복고왕정이 시작되었다. 뒤를 인 샤를 10세가 반동 정치(과거 절대왕정으로의 회귀)를 펼치자 시민들은 1830년 7월 혁명을 일으켜 그를 쫓아냈다. 이후 온건파 루이 필리프가 즉위한 입헌군주제 형태의 '7월 왕정'이 수립되었으나, 이 역시 소수 자본가 중심의 정책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반발을 샀다. 결국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완전히 폐지되고 제2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천 년 가까이 이어진 프랑스 왕국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