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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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인더스 문명과 베다 시대
2.1. 인더스 문명2.2. 베다 시대
3. 마가다의 부흥과 사상의 황금기
3.1. 마가다 왕국과 16대국3.2. 불교와 자이나교의 탄생
4. 최초의 통일 왕조와 고대 제국
4.1. 마우리아 왕조4.2. 쿠샨 왕조와 굽타 왕조
5. 이슬람의 도래와 델리 술탄 왕조
5.1. 이슬람 세력의 침공5.2. 델리 술탄 시대
6. 무굴 제국의 번영과 쇠퇴
6.1. 찬란한 제국의 탄생6.2. 쇠퇴와 분열
7. 영국의 침략과 식민지화
7.1. 동인도 회사의 야욕7.2. 세포이 항쟁과 직할령 전환
8. 독립 운동과 대륙의 분단
8.1. 간디와 비폭력 불복종8.2. 피로 물든 분단과 독립
9. 냉전 시대와 민주주의의 정착
9.1. 네루 노선과 비동맹주의9.2. 인디라 간디의 독재와 시련
10. 건국 이후
10.1. 경제 개방과 IT 강국으로의 도약10.2. 21세기의와 현재

1. 개요[편집]

인도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인더스 문명과 베다 시대[편집]

2.1. 인더스 문명[편집]

기원전 3000년경,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고도화된 계획도시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유적인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정교한 배수 시설, 벽돌 건물, 바둑판 모양의 도로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1500년경 기후 변화와 홍수 등으로 인해 이 찬란했던 문명은 서서히 미스터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2.2. 베다 시대[편집]

기원전 1500년경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아리아인들이 펀자브 지방을 거쳐 갠지스강 유역으로 대거 이주해 왔다. 이들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원주민들을 정복하며 정착했다. 이 시기 아리아인의 신앙과 제사 의식을 기록한 성전 《베다》가 성립되었으며, 인도의 악명 높은 신분 제도인 카스트 제도의 모태(바르나 체제)와 브라만교가 형성되며 인도 고대 사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3. 마가다의 부흥과 사상의 황금기[편집]

3.1. 마가다 왕국과 16대국[편집]

기원전 6세기경, 갠지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16개의 강력한 부족 국가들이 패권을 다투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던 나라가 바로 마가다 왕국이었다. 마가다는 풍부한 철광석과 코끼리 부대를 활용해 주변국들을 압도하며 인도 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3.2. 불교와 자이나교의 탄생[편집]

이 시기는 사상적으로도 거대한 대전환기였다. 기존 브라만교의 가혹한 제사 의식과 카스트 제도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샤캬족의 왕자였던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다. 그가 창시한 불교는 평등과 자비를 강조하며 대중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고, 비슷한 시기 마하비라가 창시한 자이나교와 함께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4. 최초의 통일 왕조와 고대 제국[편집]

4.1. 마우리아 왕조[편집]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공으로 인도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기원전 4세기말 찬드라구프타 마우리아가 최초로 인도 대륙의 태반을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를 건국했다. 마우리아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은 3대 황제인 아소카 대왕이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칼링가 전쟁을 치른 후 깊은 회의감을 느껴 불교에 귀의했고,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며 인도 전역과 해외에 포교했다.

4.2. 쿠샨 왕조와 굽타 왕조[편집]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한 후 인도는 다시 분열되었다. 기원 전후로는 이란계 유목민이 세운 쿠샨 왕조가 북인도를 지배하며 동서 무역을 독점했고, 이때 간다라 미술과 대승 불교가 크게 발달했다. 이후 4세기에는 인도인 토착 왕조인 굽타 왕조가 등장해 북인도를 재통일했다. 굽타 왕조 시기에는 브라만교가 민간 신앙과 융합되면서 오늘날의 힌두교로 발전했고, 산스크리트 문학이 꽃을 피우며 '인도 고대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5. 이슬람의 도래와 델리 술탄 왕조[편집]

5.1. 이슬람 세력의 침공[편집]

8세기부터 아랍과 튀르크계 이슬람 세력이 풍요로운 인도 대륙을 노리고 북서쪽 경계를 넘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가즈니 왕조와 고르 왕조는 북인도를 끊임없이 약탈하며 힌두교와 불교 사원들을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인도 대륙 내의 불교는 사실상 절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된다.

5.2. 델리 술탄 시대[편집]

1206년, 고르 왕조의 장군이었던 쿠트브웃딘 아이바크가 델리를 수도로 삼아 술탄국을 세웠다. 이후 약 300년 동안 델리를 중심으로 5개의 이슬람 왕조가 교체되었는데, 이 시기를 델리 술탄 왕조라고 부른다. 이 시기 지배층은 이슬람교도였고 피지배층은 힌두교도였기에 두 문화 사이의 갈등과 융합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힌두교의 바크티 신앙과 이슬람의 신비주의가 결합된 시크교가 탄생하기도 했다.

6. 무굴 제국의 번영과 쇠퇴[편집]

6.1. 찬란한 제국의 탄생[편집]

1526년, 티무르의 후손인 바부르가 파니파트 전투에서 델리 술탄 왕조를 무너뜨리고 무굴 제국을 건국했다. 3대 황제인 악바르 대왕은 영토를 크게 넓혔을 뿐만 아니라, 비이슬람교도에게 부과되던 인두세(지즈야)를 폐지하는 등 파격적인 종교 관용 정책을 펼쳐 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5대 황제 샤 자한은 세계적인 건축물인 타지마할을 건설하며 문화적 정점을 찍었다.

6.2. 쇠퇴와 분열[편집]

그러나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가 집권하면서 제국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는 독실한 이슬람교도로서 악바르의 관용 정책을 뒤엎고 지즈야를 부활시켰으며 힌두 사원을 파괴했다. 이에 반발한 힌두교도들이 시크 왕국, 마라타 동맹 등을 결성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무굴 제국은 급격한 분열과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7. 영국의 침략과 식민지화[편집]

7.1. 동인도 회사의 야욕[편집]

무굴 제국이 분열된 틈을 타 유럽 열강들이 인도로 침투했다. 그 선두에 선 것은 영국의 동인도 회사였다. 영국은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와 벵골 태수 연합군을 격파하며 인도 지배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후 영국은 교묘한 이간책과 군사력을 동원해 인도 대륙의 왕국들을 차례차례 집어삼켰다.

7.2. 세포이 항쟁과 직할령 전환[편집]

영국의 가혹한 수탈과 문화적 무시에 참다못한 동인도 회사 소속 인도인 용병들이 1857년 세포이 항쟁을 일으켰다. 이 항쟁은 순식간에 반영 독립 전쟁의 양상으로 번졌으나, 영국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실패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계기로 동인도 회사를 폐지하고 무굴 제국을 공식적으로 멸망시켰으며, 1877년 빅토리아 여왕을 인도 황제로 추대하는 인도 제국을 선포하며 인도를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삼았다.

8. 독립 운동과 대륙의 분단[편집]

8.1. 간디와 비폭력 불복종[편집]

영국의 가혹한 식민 지배 속에서 인도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독립 운동이 싹텄다. 20세기 들어 마하트마 간디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독립 운동은 대중 운동으로 진화했다. 간디는 '비폭력 불복종'(사티아그라하)을 외치며 소금 행진 등을 주도했고, 영국의 식민 통치 기반을 뒤흔들었다. 자와할랄 네루 역시 간디와 함께 독립 운동의 핵심 지도자로 활약했다.

8.2. 피로 물든 분단과 독립[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국력이 유린당한 영국은 더 이상 인도를 지배할 여력이 없게 되자 독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독립 과정에서 치명적인 비극이 발생했다. 힌두교 중심의 인도 시공간을 원치 않았던 무함마드 알리 진나의 이슬람 세력이 분리를 요구한 것이다. 결국 1947년 8월, 인도 대륙은 인도파키스탄이라는 두 개의 국가로 쪼개져 독립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종교 간의 대학살이 발생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9. 냉전 시대와 민주주의의 정착[편집]

9.1. 네루 노선과 비동맹주의[편집]

독립 인도 공화국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자로할랄 네루는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일당독재를 피했으며, 대외적으로는 미·소 냉전 체제에 휩쓸리지 않는 비동맹주의 노선을 주창했다. 그러나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카슈미르 영유권을 두고 파키스탄과 여러 차례 전쟁(인도-파키스탄 전쟁)을 치렀고, 국경 문제로 중국과도 무력 충돌을 겪었다.

9.2. 인디라 간디의 독재와 시련[편집]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 총리 시기에는 파키스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도왔으나, 내부적으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독재 정치를 펼쳤다. 특히 시크교 과격파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크교의 성지인 황금사원을 군대로 짓밟았다가, 결국 1984년 자신의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여러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인도는 군부 쿠데타 없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해 나갔다.

10. 건국 이후[편집]

10.1. 경제 개방과 IT 강국으로의 도약[편집]

독립 이후 인도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성향의 통제 경제 체제를 유지했으나, 이는 심각한 경제 침체(힌두 성장률)를 가져왔다. 결국 1991년, 만모한 싱 재무장관(훗날 총리)의 주도로 과감한 경제 자유화 및 개방 정책을 단행했다. 이후 인도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영어 구사 능력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및 IT 산업의 글로벌 허브로 급성장했다.

10.2. 21세기의와 현재[편집]

2014년 인도인민당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하면서 인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모디 정부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외치며 강력한 제조업 육성과 인프라 확충을 추진, 인도를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요 경제국으로 올려놓았다. 현재 인도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 되었으며, 막대한 내수 시장과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타이틀을 무기로 전 세계 외교 무대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이자 핵심 플레이어로 대접받고 있다. 다만 모디 정부 출범 이후 심화된 힌두 민족주의 기조와 이슬람교 등 소수 종교 탄압 논란, 여전히 심각한 빈부격차와 카스트 제도의 잔재는 인도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