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인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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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박해는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1894년에서 1896년 사이 압둘 하미드 2세 치세하에서 벌어진 학살로, 당시 제국 내 민족주의 발흥과 종교적 갈등이 맞물리며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두 번째 박해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부터 본격화되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을 지배하던 '청년 투르크당' 정권은 러시아 제국과의 전선 인근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내통할 것을 우려했다. 이에 1915년 4월 24일 이스탄불에서 아르메니아인 지식인과 지도층을 대거 체포한 것을 시작으로, 전 국토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시리아 사막 등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식량과 식수도 없이 수백 킬로미터를 걷는 '죽음의 행진'을 강요당했으며, 군인과 민병대에 의한 조직적인 학살, 기아, 질병 등으로 인해 인구의 대부분이 절멸하거나 해외로 망명해야 했다.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대외적으로 거대한 외교적 분쟁 거리이다. 당사국인 아르메니아와 국제 연합(UN), 그리고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세계 30여 개국은 이를 명백한 '인종학살(제노사이드)'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반면 오스만 제국의 후신인 튀르키예 정부는 전시 상황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강제 이주와 내전의 결과일 뿐, 국가 차원의 조직적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