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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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년 12월 18일 ~ 1992년 10월 8일)

서독의 제4대 연방총리이자 사회민주당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냉전이 고착화되던 시기, 동구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한 신동방정책을 추진하여 유럽의 긴장 완화와 훗날 독일 재통일의 초석을 닦은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죄업을 사죄한 '바르샤바의 무릎 꿇기'는 진정성 있는 사죄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평화 정착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 생애[편집]

1913년 뤼베크에서 '헤르베르트 에른스트 카를 프람'이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으며,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탄압을 피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망명했다. 이때 '빌리 브란트'라는 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평생의 이름이 되었다. 망명지에서 기자와 반나치 운동가로 활동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키웠다.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후 서독으로 귀국하여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서베를린 시장으로서 베를린 장벽 설치라는 위기 상황을 수습하며 대중적 지지를 얻었고, 1969년 사민당 최초의 전후 총리로 취임했다. 재임 기간 중 신동방정책을 통해 동독 및 소련, 폴란드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1974년 비서 귄터 기욤이 동독의 간첩임이 밝혀지는 '기욤 사건'이 터지자 이에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퇴임 후에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을 맡아 남북 문제 해결과 국제 평화를 위해 헌신하다가 1992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