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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비오 11세(Pius XI, 1857년 5월 31일 ~ 1939년 2월 10일)
제259대 가톨릭교회 교황이다. 본명은 암브로조 다미아노 아킬레 라티(Ambrogio Damiano Achille Ratti)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유럽의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 속에서 재임했다. 특히 1929년 이탈리아 왕국과 라테란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을 주권 국가로 독립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또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 그리고 공산주의 등 20세기 초반을 휩쓴 독재 및 전체주의 정권에 맞서 교회의 독립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려 노력한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제259대 가톨릭교회 교황이다. 본명은 암브로조 다미아노 아킬레 라티(Ambrogio Damiano Achille Ratti)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유럽의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 속에서 재임했다. 특히 1929년 이탈리아 왕국과 라테란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을 주권 국가로 독립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또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 그리고 공산주의 등 20세기 초반을 휩쓴 독재 및 전체주의 정권에 맞서 교회의 독립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려 노력한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2. 생애[편집]
1857년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에서 태어났다. 187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뛰어난 학식으로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도서관과 바티칸 비밀문서고의 관장을 역임한 학자 출신이다. 1918년 폴란드 대사로 파견되어 볼셰비키의 침공 위기 속에서도 바르샤바를 지키며 강인한 외교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밀라노 대주교와 추기경을 거쳐 1922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재임 기간 중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제정하고,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하여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했다. 라테란 조약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와의 오랜 갈등을 해결하고 교황청의 국제적 지위를 확립했다. 임기 후반기에는 무솔리니 정권과 대립했고, 1937년에는 회칙을 통해 나치의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정책을 강력히 규탄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