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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바이마르(Weimar)
독일 중앙부 튀링겐주에 위치한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이다. 규모는 작지만 독일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괴테, 실러, 헤르더 등 문학 거장들이 활동하며 '바이마르 고전주의'라는 독일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음악가 리스트와 바흐,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이곳에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독일 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 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이 제정된 곳이기도 하다. 현대 디자인과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 '바우하우스'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도시 전체에 산재한 고전주의 유적들과 바우하우스 건축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독일 중앙부 튀링겐주에 위치한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이다. 규모는 작지만 독일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괴테, 실러, 헤르더 등 문학 거장들이 활동하며 '바이마르 고전주의'라는 독일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음악가 리스트와 바흐,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이곳에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독일 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 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이 제정된 곳이기도 하다. 현대 디자인과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 '바우하우스'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도시 전체에 산재한 고전주의 유적들과 바우하우스 건축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2. 역사[편집]
10세기 무렵 기록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16세기 후반 작센-바이마르 공국의 수도가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바이마르의 황금기는 18세기 후반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과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의 전폭적인 문화 예술 후원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의 초청으로 괴테와 실러가 바이마르에 정착하면서 도시는 유럽 문화의 메카로 탈바꿈했고, 이 시기의 정신적 번영을 '바이마르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바이마르는 독일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중심에 섰다.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베를린의 혼란을 피해 이곳 바이마르에서 국민의회를 소집했다. 이곳에서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내용을 담은 일명 '바이마르 헌법'이 채택되면서 독일 최초의 공화국이 출범했다. 같은 해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혁신적인 예술 디자인 학교인 바우하우스를 이곳에 설립하며 모더니즘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1933년 나치 정권의 수립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나치 통치기 동안 바이마르 인근에는 부헨발트 집중호우소가 건설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동독 체제에 속해 있다가,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문화와 관광, 교육의 도시로 부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