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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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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합스부르크 가문(Haus Habsburg)

유럽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불멸의 명문가이자 황가이다. 현재의 스위스 북부 지역의 작은 백작 가문에서 출발하여, 특유의 정략결혼 정책을 통해 영토를 방대하게 넓혔다.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를 거의 독점했으며 오스트리아, 스페인, 헝가리, 보헤미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의 왕위를 차지했다. 카를 5세 시기에는 '해를 보지 않는 제국'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영토를 통치하며 세계적인 패권을 쥐었다. 이들은 가톨릭의 강력한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유럽 정세를 주도했으나, 가문의 혈통과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수 세기 동안 행한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스페인 계계가 단절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마침내 권좌에서 물러났다.

2. 역사[편집]

11세기 스위스 아르가우 지역에 세워진 합스부르크성에서 가문의 이름이 유래했다. 1273년 루돌프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왕으로 선출되면서 본격적으로 중앙 정계에 등장했고, 오스트리아 공국을 가문의 핵심 영토로 확보했다. 15세기 후반 막시밀리안 1세는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라는 명언으로 대변되는 정략결혼 체제를 완성했다. 그 결과 그의 손자인 카를 5세는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 왕국, 부르고뉴 공국,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까지 상속받으며 유럽 최대의 권력자가 되었다. 카를 5세 사후 가문은 오스트리아 계보와 스페인 계보로 분할되었다. 17세기 합스부르크 가문은 종교 개혁에 맞서 가톨릭을 수호하려다 30년 전쟁을 겪으며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의 통제력을 많이 상실했다. 설상가상으로 1700년에는 극단적인 근친혼의 결과로 스페인 계보의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다. 오스트리아 계보 역시 1740년 카를 6세의 사망으로 남계가 단절되었으나, 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남편 로트링겐 공작 프란츠 슈테판과 결혼하면서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자 이들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했고, 1867년에는 헝가리와 타협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배하면서 1918년 카를 1세가 퇴위했고, 수백 년간 이어온 가문의 통치 역사는 종막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