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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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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이탈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주. 주도는 바리이다.

이탈리아반도의 장화 모양에서 '뒷굽'과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아드리아해, 남쪽으로는 이오니아해와 맞닿아 있다. 올리브와 포도, 밀을 생산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농업 요충지이며, 원추형 석조 주택인 트룰리로 유명한 알베로벨로 등 풍부한 문화유산과 천혜의 해안선을 품고 있어 현대에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휴양지로 급부상했다. 영어권에서는 '아풀리아(Apulia)'라고도 불린다.

2. 역사[편집]

고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야피기인(Iapygians)을 비롯한 부족들이 거주했으며, 기원전 8세기부터는 남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와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거점 도시인 타란토(Tarentum) 등을 건설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고대 로마에 정복된 이후에는 로마와 남부를 잇는 아피아 가도가 건설되면서 제국의 핵심 무역 통로이자 대규모 농업 지대로 번영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한니발 장군이 로마군을 완파한 칸네 전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로마 제국 분열 이후에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특성 때문에 비잔티움 제국, 롬바르드족, 사라센 등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다. 11세기 무렵 노르만족의 로베르 기스카르가 풀리아 공국을 세우며 안정을 찾았고,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 치하에서는 '풀리아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총애를 받으며 카스텔 델 몬테를 비롯한 수많은 성곽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들어서는 번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후 앙주 가문, 아라곤 왕국, 스페인 합스부르크, 부르본 왕가 등 외부 세력의 오랜 지배를 거치며 권력의 중심지에서 밀려났고, 해적의 침략과 지주의 수탈 속에 점차 낙후된 농업 지역으로 쇠퇴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 빈곤 문제를 겪었으나, 20세기 들어 대규모 수로 건설과 토지 개혁을 통해 농업 생산성을 회복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고유의 역사적 매력을 살린 관광산업과 제조공업의 발달로 재도약을 이루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