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본래 17세기 초반 네덜란드 공화국 선원들이 이 지역을 발견해 '북서항(Noordt Wester Haven)' 혹은 '거북이 항구(Harbour of Tortoises)'라 부르며 정박지로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인들은 영구 정착지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섬을 떠났다. 이후 1715년 프랑스가 섬의 영유권을 선포하고 1721년부터 본격적인 식민 이주를 시작했다. 특히 1735년 새로 부임한 프랑스의 유능한 총독 마에 드 라 부르도네의 주도 아래, 외풍을 막아주는 모카 산맥의 방어적 이점을 살려 이곳을 대대적인 해군 기지이자 조선소, 그리고 행정 중심지로 개발했다. 이때부터 도시는 본격적으로 '포트루이스'라 불리기 시작했으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희망봉 항로의 핵심 기항지로 번성했다. 프랑스는 설탕 생산을 위해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많은 노예를 유입시켰다.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10년, 인도양 통제권을 쥐려던 영국이 모리셔스를 점령하면서 포트루이스 역시 영국 지배하에 들어갔다. 영국은 1833년 노예제를 폐지한 뒤, 노동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도 등지에서 수십만 명의 계약 노동자(를 들여왔다. 이 노동자들이 섬에 첫발을 내디뎠던 포트루이스의 관문인 '아프라바시 가트'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아시아-유럽 항로가 바뀌어 한동안 기항지로서의 가치가 급락하며 쇠퇴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항만 현대화 작업을 거치며 인프라를 복구했다. 1968년 모리셔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포트루이스는 정식으로 신생 모리셔스 공화국의 수도로 선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