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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내전으로, 찰스 1세가 이끄는 왕당파(Royalists)와 올리버 크롬웰 등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Parliamentarians) 사이의 권력 투쟁이었다. 이 전쟁은 국왕의 절대권력과 의회의 권한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스튜어트 왕조의 국왕들은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통치를 추구했으나 의회는 과세와 입법에 대한 권한 확대를 요구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잉글랜드 국교회와 청교도 세력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정치적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전쟁의 결과 찰스 1세가 처형되고 군주제가 폐지되었으며, 영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공화정인 잉글랜드 연방이 수립되었다. 또한 이후 의회 중심 정치 체제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내전으로, 찰스 1세가 이끄는 왕당파(Royalists)와 올리버 크롬웰 등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Parliamentarians) 사이의 권력 투쟁이었다. 이 전쟁은 국왕의 절대권력과 의회의 권한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스튜어트 왕조의 국왕들은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통치를 추구했으나 의회는 과세와 입법에 대한 권한 확대를 요구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잉글랜드 국교회와 청교도 세력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정치적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전쟁의 결과 찰스 1세가 처형되고 군주제가 폐지되었으며, 영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공화정인 잉글랜드 연방이 수립되었다. 또한 이후 의회 중심 정치 체제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역사[편집]
1625년 즉위한 찰스 1세는 의회와의 협력을 꺼리고 왕권 강화를 추진하였다. 그는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고 반대파를 탄압했으며, 1629년부터 1640년까지 의회를 소집하지 않는 이른바 "개인 통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한 주교전쟁(Bishops' Wars)의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결국 의회를 다시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1640년 소집된 장기의회(Long Parliament)는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여러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에 찰스 1세는 1642년 의회 지도자들을 체포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같은 해 8월 노팅엄에서 군기를 올리며 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전투에서는 왕당파가 우세를 보였으나, 의회파는 군사 개혁을 통해 신모범군(New Model Army)을 창설하였다.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한 신모범군은 높은 규율과 전투력을 바탕으로 1645년 네즈비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왕당파 세력은 급속히 붕괴되었고, 1646년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군에 투항하였다. 그러나 국왕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었고, 1648년 제2차 내전이 발생하였다. 의회파는 다시 승리하였으며 급진파 군인들은 국왕이 더 이상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는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이는 유럽 역사상 군주가 공식 재판을 거쳐 처형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였다. 찰스 1세 사후 군주제와 상원은 폐지되었고 잉글랜드 연방이 수립되었다. 실질적인 권력은 올리버 크롬웰과 군부가 장악하였으며, 크롬웰은 1653년 호국경(Lord Protector)에 취임하여 사실상 군사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을 진압하고 영국 제도를 통합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1658년 크롬웰이 사망한 이후 공화정은 급속히 불안정해졌다. 결국 1660년 찰스 2세가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면서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비록 군주제는 부활했지만, 내전 이전과 같은 절대왕정 체제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이후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영국은 점차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제로 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