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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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찰스 2세(Charles II, 1630년 5월 29일 ~ 1685년 2월 6일)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1660년 왕정복고를 통해 즉위한 스튜어트 왕조의 군주이다. 찰스 1세프랑스 출신 왕비 앙리에타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청교도 혁명잉글랜드 내전으로 왕정을 상실한 뒤 망명 생활을 겪었다. 이후 올리버 크롬웰 사후 공화정 체제가 붕괴하자 왕위에 복귀하여 약 25년간 통치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안정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으며, 런던 대역병런던 대화재 같은 대형 재난을 겪었다. 또한 과학과 예술을 적극 후원하여 왕립학회의 발전을 지원하였고, 해군력 강화와 식민지 확장에도 힘썼다. 한편 가톨릭에 우호적인 정책과 프랑스와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의회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

2. 생애[편집]

1630년 5월 29일 런던의 세인트제임스 궁전에서 찰스 1세와 왕비 앙리에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왕위 계승자로 교육받았으나, 1642년 잉글랜드 내전이 발발하면서 왕실은 의회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왕당파가 패배하자 1646년부터 사실상 망명 생활을 시작하였다. 1649년 1월 30일 부왕 찰스 1세가 처형되자 왕당파는 그를 국왕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공화정부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실제로 왕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1651년 우스터 전투에서 패배한 뒤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를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1658년 크롬웰이 사망한 이후 공화정 체제가 불안정해졌고, 1660년 조지 멍크 장군의 주도로 왕정복고가 추진되었다. 같은 해 5월 찰스는 귀국하여 정식으로 국왕에 즉위하였다. 이는 11년간 지속된 공화정 체제의 종식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재위 기간 중인 1665년에는 런던 대역병이 발생하여 수만 명이 사망하였으며, 1666년에는 런던 대화재가 발생해 수도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는 재건 사업을 지원하며 수도의 복구를 추진하였다. 또한 왕립학회를 후원하여 과학 연구를 장려하였고, 해군을 육성해 네덜란드 공화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1670년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와 비밀리에 도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톨릭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보이면서 의회와 갈등이 심화되었다. 1679년 이후에는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었으나, 그는 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1685년 2월 6일 런던의 화이트홀 궁전에서 사망하였다. 왕위는 동생인 제임스 2세가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