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윌리엄 4세(William IV, 1765년 8월 21일 ~ 1837년 6월 20일)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과 하노버 왕국의 국왕이다. 조지 3세의 셋째 아들로, 형인 조지 4세가 자녀 없이 사망하자 1830년 64세라는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해군에 입대해 오랜 기간 복무했기에 '선원 왕(Sailor King)'이라는 별칭으로 친근하게 불렸다. 그의 7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재위 기간은 영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기였다. 선거법 개정, 노예제 폐지, 아동 노동 제한 등 사회 전반을 뒤흔든 대개혁이 이 시기에 단행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서자들은 많았으나 왕위를 계승할 자녀를 남기지 못해, 그가 사망한 후 조카인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과 하노버 왕국의 국왕이다. 조지 3세의 셋째 아들로, 형인 조지 4세가 자녀 없이 사망하자 1830년 64세라는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해군에 입대해 오랜 기간 복무했기에 '선원 왕(Sailor King)'이라는 별칭으로 친근하게 불렸다. 그의 7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재위 기간은 영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기였다. 선거법 개정, 노예제 폐지, 아동 노동 제한 등 사회 전반을 뒤흔든 대개혁이 이 시기에 단행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서자들은 많았으나 왕위를 계승할 자녀를 남기지 못해, 그가 사망한 후 조카인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2. 생애[편집]
1765년 런던 버킹엄 하우스에서 태어났다. 왕위 계승 서열이 낮았기 때문에 13세의 나이에 해군 사관생도로 입대하여 아메리카 독립 전쟁 등에 참전하는 등 실제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정계에 복무하는 동안에는 도로시 조던이라는 여배우와 오랜 기간 동거하며 10명의 사생아를 두었으나, 왕위 계승 가능성이 높아진 이후 왕실의 압박으로 1818년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라이드와 정식 결혼을 올렸다. 그러나 아델라이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영유아기에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1830년 형 조지 4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당시 영국은 혁명의 기운과 개혁의 요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고집스러웠던 형과 달리 민의를 수용할 줄 아는 국왕이었다. 1832년 보수적인 귀족원의 반대를 꺾고 투표권을 확대하는 '제1차 선거법 개정(Reform Act 1832)'을 승인하여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1833년에는 대영제국 내의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말년에는 조카 빅토리아의 모친인 켄트 공작부인과의 심한 갈등 속에서도 빅토리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티겠다는 집념을 보였고, 결국 빅토리아가 18세가 된 직후인 1837년 6월에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