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조지 4세(George IV, 1762년 8월 12일 ~ 1830년 6월 26일)
영국 하노버 왕가의 제4대 국왕이자 하노버 국왕이다. 부왕 조지 3세의 정신 질환으로 인해 1811년부터 섭정왕으로서 먼저 국정을 이끌었으며, 이 시기를 영국의 역사에서 '섭정 시대(Regency era)'라고 부른다. 세련된 예술적 안목과 교양을 갖추어 '영국 제일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나, 정작 개인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당대 대중과 정계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토리당 내각과 대립하며 왕권의 쇠퇴를 겪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브라이턴의 로열 파빌리온 건설, 윈저성 개축 등 영국의 건축과 예술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제4대 국왕이자 하노버 국왕이다. 부왕 조지 3세의 정신 질환으로 인해 1811년부터 섭정왕으로서 먼저 국정을 이끌었으며, 이 시기를 영국의 역사에서 '섭정 시대(Regency era)'라고 부른다. 세련된 예술적 안목과 교양을 갖추어 '영국 제일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나, 정작 개인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당대 대중과 정계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토리당 내각과 대립하며 왕권의 쇠퇴를 겪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브라이턴의 로열 파빌리온 건설, 윈저성 개축 등 영국의 건축과 예술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2. 생애[편집]
1762년 조지 3세와 샬럿 왕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엄격한 부왕의 교육 방식에 반발하며 성장한 그는 청년 시절부터 도박, 음주, 여성 편력에 빠져들었고 막대한 빚을 져 왕실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특히 1785년 가톨릭 신자이자 미망인이었던 마리아 피츠허버트와 비밀리에 불법 결혼을 감행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의회가 빚을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1795년 사촌인 브런즈윅의 캐롤라인과 정략결혼을 했으나, 두 사람은 첫날밤부터 서로를 혐오하며 파경에 이르렀고 외동딸 샬럿 공주를 낳은 뒤 곧바로 별거했다. 1811년 부왕의 병세가 악화되자 섭정왕이 되어 공식적인 통치를 시작했다. 이 시기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1820년 부왕이 사망하자 5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 직후 이혼을 거부하는 캐롤라인 왕비를 왕비 대관식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군대로 가로막는 등 추문을 일으켜 민심을 잃었다. 재임 기간에는 가톨릭교도 해방령 통과를 완강히 반대하다가 웰링턴 공작 내각의 압박에 못 이겨 서명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말년에는 비만과 통풍, 동맥경화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윈저성에 은둔하다가 1830년 6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유일한 적녀였던 샬럿 공주가 이미 산욕열로 요절했기에, 왕위는 남동생인 윌리엄 4세가 승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