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미국 독립 혁명(American Revolution, 1775년 ~ 1783년)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가 영국의 통치에 반발하여 독립 국가인 미국을 수립한 역사적 사건이다. 단순히 식민지 해방 투쟁에 그치지 않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계몽주의 사상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시민 혁명으로 평가받는다. 7년 전쟁 이후 영국 정부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자, 식민지 주민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저항했다. 이 혁명은 세계사적으로 군주제를 타파하고 국정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확립했으며, 이후 프랑스 혁명과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 등에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가 영국의 통치에 반발하여 독립 국가인 미국을 수립한 역사적 사건이다. 단순히 식민지 해방 투쟁에 그치지 않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계몽주의 사상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시민 혁명으로 평가받는다. 7년 전쟁 이후 영국 정부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자, 식민지 주민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저항했다. 이 혁명은 세계사적으로 군주제를 타파하고 국정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확립했으며, 이후 프랑스 혁명과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 등에 영향을 미쳤다.
2. 역사[편집]
1763년 7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막대한 전쟁 빚을 갚기 위해 인지세법, 타운센드법 등을 통과시키며 식민지 압박을 시작했다. 식민지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대부분의 세금이 철회되었으나 차에 대한 세금은 유지되었고,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1773년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영국 배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린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영국이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는 등 강경 탄압으로 맞서자, 식민지 대표들은 1774년 제1차 대륙회의를 소집하고 결속을 다졌다. 결국 1775년 4월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 간의 첫 총성이 울리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식민지 측은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고, 1776년 7월 4일에는 인간의 평등과 자유, 저항권을 명시한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다. 초기에는 훈련된 영국군에 밀려 고전했으나, 1777년 새러토가 전투의 승리를 기점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이후 영국의 부상을 경계하던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가 식민지군을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워싱턴 군과 프랑스 해군의 연합 작전으로 영국군 주력을 섬멸하며 사실상 승리를 확정 지었다. 마침내 1783년 파리 조약이 체결되면서 영국은 미국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