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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치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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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라치오(Lazio)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이다. 북서쪽으로는 토스카나주, 북쪽으로는 움브리아 주, 동쪽으로는 마르케주아브루초 주, 남동쪽으로는 몰리세주캄파니아주에 접하며, 서쪽으로는 티레니아해와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에서 테베레 강 하류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된 로마 제국의 심장부이자 바티칸 시국을 품고 있는 요충지이다.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도 이탈리아 전체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핵심 지역이다.

2. 역사[편집]

라치오의 역사는 고대 서구 문명의 탄생 및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본래 이 지역은 고대 이탈리아의 부족이었던 라티움(Latium)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라치오'라는 주명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기원전 8세기경 테베레 강변에서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라치오 전역을 통일했고, 이후 지중해를 지배하는 로마 제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 구축된 도로망과 수로, 도시 인프라는 오늘날까지도 주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로마 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고 5세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라치오는 고트족과 비잔티움 제국, 랑고바르드족 등의 끊임없는 침략과 지배 세력 교체를 겪으며 황폐해졌다. 그러나 8세기 중엽,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교황에게 영토를 기증한 '피핀의 기증'을 계기로 교황령의 핵심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황의 통치를 받으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쳐 수많은 유산을 축적했다. 19세기 이탈리아 민족주의 운동인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통일 운동)가 전개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1870년 이탈리아 왕국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면서 교황령은 해체되었고, 라치오는 이탈리아 왕국에 정식 편입되었다. 이듬해인 1871년 주도인 로마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로 선포되면서 라치오는 근대 국가의 행정 중심지로 재도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의 치열한 전장이 되기도 했으나, 전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쳐 현재는 행정, 관광, 첨단 산업이 조화를 이룬 이탈리아의 중심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