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894년 런던에서 태어나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최전방 복무를 강력히 희망하여 참모 장교로 참전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세계 전역을 순방하는 외교 활동을 펼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나,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부왕 조지 5세의 깊은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 월리스 심프슨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다.
1936년 1월 부왕의 서거로 국왕에 즉위했으나, 심프슨 군주와의 결혼 선언은 전 군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성공회의 수장인 영국 국왕이 이혼녀와 결혼하는 것은 종교적, 헌법적으로 용납되지 않았고,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사퇴까지 거론하며 압박했다. 결단을 강요받은 그는 1936년 12월 11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국왕의 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역사적인 퇴위 성명을 발표하고 동생 조지 6세에게 왕위를 넘겼다. 퇴위 후 이듬해 프랑스에서 심프슨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과의 밀월 관계를 우려한 영국 정부에 의해 바하마 총독으로 임명되어 사실상 유배 생활을 보냈다. 전후에는 주로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왕실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1972년 암으로 사망하여 윈저 성의 왕실 묘지에 안장되었다.
1936년 1월 부왕의 서거로 국왕에 즉위했으나, 심프슨 군주와의 결혼 선언은 전 군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성공회의 수장인 영국 국왕이 이혼녀와 결혼하는 것은 종교적, 헌법적으로 용납되지 않았고,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사퇴까지 거론하며 압박했다. 결단을 강요받은 그는 1936년 12월 11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국왕의 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역사적인 퇴위 성명을 발표하고 동생 조지 6세에게 왕위를 넘겼다. 퇴위 후 이듬해 프랑스에서 심프슨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과의 밀월 관계를 우려한 영국 정부에 의해 바하마 총독으로 임명되어 사실상 유배 생활을 보냈다. 전후에는 주로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왕실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1972년 암으로 사망하여 윈저 성의 왕실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