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 1900년 6월 17일 ~ 1945년 5월 2일)
나치 독일의 정치인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비서, 나치 당수 총리였던 인물이다. 히틀러의 그림자이자 제3제국의 숨은 실력자로 불렸으며, 전쟁 후반기에는 사실상 히틀러에게 전달되는 모든 정보와 인사권을 통제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나 하인리히 힘러에 비해 낮았으나, 총통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당의 행정과 재정을 완전히 장악했던 권력의 핵심이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궐석재판으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오랜 기간 도주 및 생존설이 돌았으나 훗날 베를린 탈출 도중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치 독일의 정치인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비서, 나치 당수 총리였던 인물이다. 히틀러의 그림자이자 제3제국의 숨은 실력자로 불렸으며, 전쟁 후반기에는 사실상 히틀러에게 전달되는 모든 정보와 인사권을 통제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나 하인리히 힘러에 비해 낮았으나, 총통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당의 행정과 재정을 완전히 장악했던 권력의 핵심이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궐석재판으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오랜 기간 도주 및 생존설이 돌았으나 훗날 베를린 탈출 도중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 생애[편집]
제1차 세계 대전 말기 포병으로 복무한 후, 전후에는 우익 준군사조직인 자유군단(Freikorps)에서 활동했다. 1927년 나치당에 입당하였고, 탁월한 행정 능력과 자금 관리 수완을 발휘하며 당내 입지를 빠르게 넓혔다. 특히 히틀러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고 베르크호프 별장 증축을 주도하며 히틀러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1933년 나치당 부총통 루돌프 헤스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41년 헤스가 영국으로 독단적인 비행을 떠나 실각하자 그 뒤를 이어 당 총리직을 승계했다. 이때부터 히틀러의 개인 비서로서 총통의 눈과 귀를 가리는 막강한 권력을 누렸고, 괴링, 히믈러 등 다른 나치 고위 간부들과의 권력 암투에서 승리하며 제국 내 실질적인 2인자 위치에 올랐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나치당의 각종 반인륜적 범죄와 강제 노동 정책을 행정적으로 기획하고 승인하는 데 깊이 관여했다. 1945년 4월, 소련군이 베를린을 포위하자 히틀러의 지하 벙커에 마지막까지 잔류했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직전 남긴 유서에서 그를 나치 당수로 임명하기도 했다. 히틀러 사후 5월 2일 새벽에 벙커를 나와 베를린을 탈출하려 시도했으나 종적을 감추었다. 이후 남미 도피설 등 수많은 음모론이 제기되었으나, 1972년 베를린 철도역 인근 공사 현장에서 그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청산가리 캡슐을 통한 자살로 결론 내려졌다. 1998년 DNA 감정을 통해 해당 유골이 마르틴 보어만의 것임이 최종적으로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