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필터 기능을 활성화하였습니다. 이용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수정됨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기원전 83년 1월 14일 ~ 기원전 30년 8월 1일)

로마 공화정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오른팔로서 갈리아 전쟁과 내전에서 맹활약했으며, 카이사르 사후에는 아우구스투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여 로마 세계를 분할 통치했다. 이후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와 연대하여 로마의 패권을 두고 옥타비아누스와 최종 결전을 벌였으나 패배하며 공화정의 종식과 로마 제국의 탄생이라는 전환점을 제공했다.

2. 생애[편집]

기원전 83년 로마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청년 시절에는 방탕하고 빚에 허덕이는 생활을 보냈다. 기원전 5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휘하 장수로 들어가면서 군사적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고, 갈리아 전쟁과 파르살루스 전투 등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카이사르의 가장 신임받는 심복으로 부상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안토니우스는 뛰어난 웅변으로 민중을 선동해 암살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카이사르의 공식 후계자로 지명된 양자 옥타비아누스, 또 다른 장수 레피두스와 체결한 제2차 삼두정치를 통해 로마의 동방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다. 동방을 통치하던 중 파르티아 원정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와 만났고, 이내 그녀와 깊은 연인 관계이자 정치적 동맹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인 아내 옥타비아와의 이혼, 로마의 영토를 클레오파트라의 자녀들에게 나누어 준 '알렉산드리아 봉헌' 등으로 인해 로마 여론의 거센 공분을 샀다. 결국 기원전 31년, 로마의 지배권을 두고 옥타비아누스와 맞붙은 악티움 해전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후퇴한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압박해오고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했다는 거짓 소문을 듣자 기원전 30년 스스로 칼을 던져 자결했다. 그의 죽음으로 로마 공화정은 사실상 막을 내렸고,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최초의 황제로 등극하며 로마 제국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