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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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헤르만 빌헬름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 1893년 1월 12일 ~ 1946년 10월 15일)

나치 독일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아돌프 히틀러에 이은 나치 정권의 제2인자이자 후계자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수많은 적기를 격추한 전쟁 영웅 출신이며, 나치당의 집권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정권 수립 이후에는 비밀경찰 게스타포를 창설하고 제국항공장관으로서 독일 공군을 재건했으며, 경제 4개년 계획의 책임자로서 나치 독일의 전시 경제를 총괄했다. 군사적으로는 최고 계급인 제국원수에 올랐으나, 사치스러운 생활과 예술품 약탈, 그리고 전쟁 후반기 공군의 잇따른 패전으로 영향력을 잃었다. 전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집행 전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2. 생애[편집]

1893년 바이에른 왕국 로젠하임에서 고위 관료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를스루에 육군 유년학교와 그로스리히터펠데 사관학교를 거쳐 군 장교로 임관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조종사로 전향하여 활약했고, 전설적인 에이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이 이끌던 '플라잉 서커스' 비행단의 마지막 지휘관을 지내며 최고 무공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를 수여받았다. 패전 후 1922년 아돌프 히틀러를 만나 나치당에 투신했으며 돌격대의 지휘권을 맡았다. 1923년 뮌헨 폭동 당시 총상을 입고 스웨덴으로 망명했는데, 이때 치료 과정에서 처방받은 모르핀에 중독되어 평생 약물 부작용과 비만에 시달렸다. 사면 후 복귀하여 1932년 국회의장에 취임했고, 의회 정치의 마비를 유도해 히틀러의 총리 취임에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정권을 잡은 뒤 프로이센 주 내무장관으로서 반대파를 숙청하고 게스타포와 최초의 강제수용소를 설립했다. 1935년 공식 재건된 공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전격전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영국 본토 항공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연이어 참패하며 입지가 좁아졌다. 전쟁 말기인 1945년 4월, 베를린에 고립된 히틀러에게 권력 이양을 요구했다가 반역죄로 해임당했다. 패전 후 미군에 체포되어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유대인 학살과 침략 전쟁 기획 등의 혐의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사형 집행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감방에서 청산가리 캡슐을 삼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