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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5세기 말 메로베우스 왕조의 클로비스 1세가 분열되어 있던 프랑크 부족들을 통합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본격적인 왕국의 기틀을 세웠다. 특히 클로비스 1세는 정통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원주민인 로마계 주민들과 서유럽 교회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왕위와 영토를 자식들에게 균등 분할 상속하는 게르만족 고유의 전통으로 인해, 메로베우스 왕조는 후기로 갈수록 극심한 내분과 왕권 약화를 겪으며 궁재(재상)들에게 실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의 침공을 막아낸 카를로스 마르텔 궁재의 활약으로 카롤링거 가문이 부상했다. 그의 아들 피핀 3세는 교황의 지지를 얻어 메로베우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했다.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는 피핀의 아들인 [카를루스 대제] 시대에 도래했다. 그는 서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제국을 건설했고, 800년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황제'의 관을 수여받으며 학문과 문화를 부흥시킨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하지만 카롤루스 대제 사후, 프랑크 왕국은 또다시 고질적인 분할 상속 문제와 제위 다툼에 직면했다.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과 870년 메르센 조약을 거치며 왕국은 서프랑크, 동프랑크, 중프랑크 왕국으로 삼분되었다. 이 분할된 국가들은 훗날 각각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모태가 되면서 프랑크 왕국의 거대한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