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Franz Ferdinand von Österreich-Este, 1863년 12월 18일 ~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이자 군인이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로, 본래 황위 계승 서열과 거리가 멀었으나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과 아버지의 사망으로 차기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다민족 국가였던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슬라브족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오스트리아 대연방 제국' 구상을 추진했던 개혁적 성향의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1914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조직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했으며, 이 사건은 인류 역사상 거대한 비극 중 하나인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반하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이자 군인이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로, 본래 황위 계승 서열과 거리가 멀었으나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과 아버지의 사망으로 차기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다민족 국가였던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슬라브족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오스트리아 대연방 제국' 구상을 추진했던 개혁적 성향의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1914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조직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했으며, 이 사건은 인류 역사상 거대한 비극 중 하나인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반하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2. 생애[편집]
1863년 그라츠에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남동생인 카를 루트비히 대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형적인 귀족 교육을 받으며 군인으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중, 1889년 황태자 루돌프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1896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제국의 제1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1900년에는 신분이 낮은 보헤미아의 여백작 소피 호테크와 황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귀천상혼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의 황위 계승권을 박탈당하고 황실 내에서 철저한 냉대를 받았으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황태자가 된 후 그는 제국 군대의 총감으로서 군사 개혁을 주도하는 한편, 헝가리 귀족들의 과도한 권력을 억누르고 슬라브족을 포섭하여 제국을 3중 제국 혹은 연방제로 개편하려는 거대한 정치적 구상을 세웠다. 이러한 행보는 대세르비아주의를 표방하며 슬라브족의 독립을 원했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결국 1914년 6월 28일, 군사 훈련 참관 및 아내와의 결혼기념일 여행을 겸해 방문한 사라예보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세르비아 비밀 결사대 '검은 손'의 단원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탄에 아내 소피와 함께 피습당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사라예보 사건 직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 세계를 전란으로 몰아넣은 대전쟁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