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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본래 슬라브족의 거주지로 출발했으나, 17세기 프로이센의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이곳을 제2 거주지로 삼으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에 건축된 상수시 궁전은 프로이센 로코코 양식의 정수로 꼽히며, 포츠담을 유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격상시켰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7월, 이곳의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연합국의 수뇌부들이 모여 포츠담 회담을 개최했다. 이 회담을 통해 독일의 점령 관리 원칙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으며, 이는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냉전 시기에는 동독과 서베를린 사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여 간첩 교환이 이루어졌던 '글리니케 다리' 등이 분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독일 재통일 이후 포츠담은 브란덴부르크주의 행정 및 교육의 중심지로서 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