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장쩌민(江澤民, 1926년 8월 17일 ~ 2022년 11월 30일)
중국의 정치인이자 소위 '중국 공산당 제3세대 지도부'의 핵심이었던 전 국가주석이다. 1989년 천안문 소요 사태라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되어 당 총서기에 올랐다.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초기 평가를 뒤엎고, 당·정·군 세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며 10년 이상 중국을 통치했다. 재임 기간 동안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확립하고 중국의 WTO 가입을 성사시켜 경제 강국으로 대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공산당의 외연을 자본가 계급까지 넓힌 '3개대표론'을 제창하여 국가 이념을 현실적으로 개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정치인이자 소위 '중국 공산당 제3세대 지도부'의 핵심이었던 전 국가주석이다. 1989년 천안문 소요 사태라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되어 당 총서기에 올랐다.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초기 평가를 뒤엎고, 당·정·군 세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며 10년 이상 중국을 통치했다. 재임 기간 동안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확립하고 중국의 WTO 가입을 성사시켜 경제 강국으로 대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공산당의 외연을 자본가 계급까지 넓힌 '3개대표론'을 제창하여 국가 이념을 현실적으로 개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생애[편집]
1926년 장쑤성 양저우시에서 태어났다. 상하이 자오퉁 대학교 기계전기과를 졸업한 기술 관료 출신으로, 상하이 시장과 상하이시 당서기를 지내며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상하이의 시위를 비교적 온건하고 유연하게 수습하여 눈도장을 찍었고, 실각한 자오쯔양의 뒤를 이어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정권을 잡은 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였으며, 1997년 홍콩 반환과 1999년 마카오 반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2년 소위 '7상8하' 원칙에 따라 후진타오에게 권좌를 넘겨주었으나, 퇴임 후에도 강력한 파벌인 '상하이방'의 영수로서 오랫동안 중국 정계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 만년에는 특유의 큰 안경과 격식 없는 유머러스한 행동들이 인터넷에서 '막구학(膜蛤學)'이라는 일종의 밈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2022년 백혈병과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상하이에서 향년 96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