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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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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 1455년 ~ 1487년)

잉글랜드 왕국에서 플랜태저넷 가문의 두 분가인 랭커스터 가문요크 가문이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벌인 일련의 내전이다. 랭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 문장을, 요크 가문은 흰 장미 문장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후대에 "장미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전쟁은 중세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왕위 계승 분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15세기 중반 헨리 6세 치세의 정치적 혼란과 국왕의 정신 질환, 백년전쟁 패배에 따른 귀족들의 불만이 겹치면서 발생하였다. 전쟁은 약 30여 년 동안 단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귀족 가문이 몰락하였다. 최종적으로 헨리 7세가 승리하여 튜더 왕조를 개창하면서 종결되었고, 이는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영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 역사[편집]

15세기 중반 헨리 6세가 통치하던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의 연이은 패배로 인해 정치적·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특히 국왕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왕권이 크게 약화되었고, 이에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요크 공작 리처드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결국 1455년 세인트올번스 전투가 발발하면서 장미 전쟁이 시작되었다. 초기 전쟁에서는 요크 가문이 우위를 점하였다. 1460년 웨이크필드 전투에서 요크 공작 리처드가 전사하였으나, 그의 아들 에드워드 4세가 세력을 규합하여 1461년 토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에 따라 랭커스터 왕조는 일시적으로 몰락하였고, 헨리 6세는 폐위되었다. 그러나 요크 가문의 내부 분열이 발생하면서 전쟁은 다시 격화되었다.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은 에드워드 4세와 대립하여 랭커스터 가문과 손잡았고, 1470년에는 잠시 헨리 6세를 복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바넷 전투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에드워드 4세가 승리하면서 랭커스터 세력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헨리 6세와 그의 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는 사망하였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한 뒤 그의 동생 리처드 3세가 조카 에드워드 5세를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또다시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런던탑의 왕자들 실종 사건이 발생하여 리처드 3세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를 계기로 랭커스터 계통의 왕위 주장자였던 헨리 튜더가 반란을 일으켰다.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가 리처드 3세를 격파하고 국왕 헨리 7세로 즉위하였다. 리처드 3세는 전투 중 전사하였으며, 그는 잉글랜드 역사상 전장에서 사망한 마지막 국왕이 되었다. 이후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의 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여 랭커스터와 요크 양측의 계승권을 통합하였다. 1487년 스토크 필드 전투에서 요크파 잔존 세력이 최종적으로 패배하면서 장미 전쟁은 완전히 종결되었다. 전쟁 이후 튜더 왕조가 안정적으로 정착하였고,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