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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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년 10월 16일 ~ 1909년 10월 26일)

일본 제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유신 삼걸'의 뒤를 이은 메이지 시대 최고의 실권자였다. 초대 내각총리대신을 포함해 총 네 차례 총리직을 역임했으며, 일본 제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의회 제도를 확립하는 등 근대 일본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팽창 정책을 추진하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의 주역이자 초대 한국통감을 지냈다. 한국인들에게는 침략의 원흉이자 원수로 기억되며, 1909년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 의해 처단되었다.

2. 생애[편집]

1841년 조슈 번(현재의 야마구치현)의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요시다 쇼인의 사설 학원인 쇼카손쥬쿠에서 수학하며 존왕양명 사상을 접했고, 영국 유학을 통해 서구 문물의 우월함을 깨달은 뒤 개화파로 전향했다. 메이지 정부 수립 이후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으로 서구 열강을 시찰하며 근대 국가 건설의 비전을 세웠다. 1885년 내각 제도를 창설하고 44세의 나이로 초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다. 이후 독일식 헌법을 모델로 삼아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1905년에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초대 한국통감으로서 식민지화의 초석을 놓았다. 통감직에서 물러난 뒤인 1909년,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만주 하얼빈을 방문했다가 안중근 의사의 저격을 받고 사망했다. 사후 일본에서는 국장이 치러졌으며 메이지 국가의 설계자로서 추앙받았으나, 피침략국인 한국에서는 동양 평화를 저해한 침략자로 기록되어 극명한 역사적 평가의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