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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1949년 7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준비위원회는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앞두고 전국을 대상으로 국기 도안을 공모했다. 약 한 달 동안 3,000개가 넘는 응모작이 접수되었으며, 그중 상하이의 평범한 재무 노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증련송(曾聯松)이 제출한 도안이 주목을 받았다. 원래 증련송의 초안에는 큰 별 내부에 소련의 국기처럼 혁명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는 소련 국기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중국 고유의 주체성과 계급 연대를 보여주는 데 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에 따라 낫과 망치 문양이 삭제되는 수정 과정을 거쳤다.당시 강력한 후보였던 '황색 가로줄이 들어간 도안'은 국토가 분단된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최종적으로 정치협상회의는 심의를 거쳐 1949년 9월 27일 증련송의 수정 도안을 국기로 공식 채택했다. 사흘 뒤인 10월 1일, 마오쩌둥이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개국대전에서 오성홍기를 게양하며 이 국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식 상징으로 전 세계에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