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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 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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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nus Pius, 86년 9월 19일 ~ 161년 3월 7일)

로마 제국의 제15대 황제이자, 로마의 전성기를 이끈 오현제 중 네 번째 황제이다. 선황 하드리아누스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무리한 영토 확장 대신 내치와 재정 안정, 법률 정비에 힘쓰며 로마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기인 '팍스 로마나'의 정점을 구현했다. 공정하고 자비로운 통치로 원로원과 민중 모두의 존경을 받았으며, 사후에 '경건한 자(Pius)'라는 칭호를 받았다.

2. 생애[편집]

86년 로마 근교의 란우비움에서 명망 높은 원로원 의원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재무관, 법무관을 거쳐 120년 집정관에 임무를 수행하며 탁월한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아시아 속주 총독으로서 공명정대하게 지역을 다스렸다. 그의 인품과 능력을 눈여겨본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138년, 그를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지정했다. 단, 하드리아누스는 조건으로 안토니우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를 다시 양자로 삼게 하여 제위 계승 구도를 안정시켰다. 138년 7월, 하드리아누스가 서거하자 51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즉위 직후 선황 하드리아누스를 신격화하는 문제로 원로원과 갈등을 빚었으나, 지혜롭고 끈기 있게 원로원을 설득하여 관철시키면서 '피우스(Pius, 경건하고 의리 있는 자)'라는 경칭을 얻게 되었다. 23년간의 재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로마를 떠나지 않고 수도에서 정무를 돌보았으며, 스코틀랜드 지역에 '안토니누스 성벽'을 축조해 국경을 방어하는 것 외에는 큰 전쟁 없이 평화를 유지했다. 또한 법률에서 고문 규정을 제한하고 노예의 인권을 개선하는 등 인본주의적인 법 개정을 주도했다. 세심한 재정 관리 덕분에 서거 당시 로마 국고에 막대한 통화 예치금을 남겼으며, 161년 에트루리아의 로리움에 있는 별장에서 눈을 감았다. 임종 직전 파수병에게 남긴 마지막 암호는 '평정(Equanimitas)'이었으며, 제위는 미리 약속된 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루키우스 베루스에게 평화롭게 이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