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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크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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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수크레(Sucre, 케추아어: Chuqichaka)

볼리비아의 헌법 및 사법상 수도이자 추키사카주의 주도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있는 라파스가 사실상 행정 수도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수크레에는 대법원이 위치해 있어 공식적인 사법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안데스 산맥 고산 지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온화한 기후와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아름다운 건축 양식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어 도시 전체가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구시가지 유적 내 모든 건물의 외벽을 흰색으로 칠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푸른 하늘 및 붉은 지붕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경관 덕분에 '하얀 도시'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2. 역사[편집]

스페인 식민 침탈 전에는 인카 제국의 마을인 '추키사카(Chuquisaca)'라고 불리던 지역이었다. 1538년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안수레스(Pedro Anzúrez)에 의해 '라 플라타(La Plata)'라는 이름의 도시로 공식 건설되었다. 이후 인근의 포토시에서 채굴되는 막대한 양의 무역을 관리하는 거점으로 성장하면서, 스페인 제국의 남미 식민지 경영에서 사법, 종교,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1624년에는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대학이 설립되기도 했다. 19세기 초, 수크레는 스페인 식민지 중 최초로 독립 열망을 분출한 '자유의 함성(Grito Libertario)' 발발지로서 남미 독립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긴 투쟁 끝에 1825년 8월 6일, 이곳의 '자유의 집(Casa de la Libertad)'에서 볼리비아의 독립 선언서가 최종 서명되었다. 1839년 볼리비아의 공식 수도로 지정되었으며, 이듬해 독립 영웅이자 볼리비아의 제2대 대통령인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Antonio José de Sucre)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도시 이름을 지금의 '수크레'로 개명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포토시의 은 산업이 쇠퇴하고 라파스를 중심으로 한 주석 산업이 부흥하면서 두 도시 간에 주도권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1898년 발발한 내전의 결과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라파스로 이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