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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태후(西太后, 1835년 11월 29일 ~ 1908년 11월 15일)
청나라 말기의 최고 권력자이자 사실상의 통치자였다. 본명은 예헤나라 행정이며, 함풍제의 후궁이자 동치제의 생모로서 권력의 중심에 섰다. 동치제와 광서제, 선통제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약 47년간 수렴청정과 막후 정치를 통해 청나라를 지배했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내부 반란으로 나라가 기울어가던 격동기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변법자강운동을 탄압하는 등 보수적인 정책을 고수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린 여성 중 한 명으로, 청나라의 멸망을 앞당긴 악녀라는 비판과 무너져가는 제국을 유지하려 애쓴 정치가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청나라 말기의 최고 권력자이자 사실상의 통치자였다. 본명은 예헤나라 행정이며, 함풍제의 후궁이자 동치제의 생모로서 권력의 중심에 섰다. 동치제와 광서제, 선통제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약 47년간 수렴청정과 막후 정치를 통해 청나라를 지배했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내부 반란으로 나라가 기울어가던 격동기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변법자강운동을 탄압하는 등 보수적인 정책을 고수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린 여성 중 한 명으로, 청나라의 멸망을 앞당긴 악녀라는 비판과 무너져가는 제국을 유지하려 애쓴 정치가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2. 생애[편집]
1835년 하급 관리의 딸로 태어나 1852년 함풍제의 후궁으로 자금성에 입성했다. 함풍제의 유일한 아들인 동치제를 출산하며 지위가 급상승했고, 1861년 함풍제가 사망하자 신유정변을 일으켜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정궁태후인 동태후와 함께 수렴청정을 시작했으나, 동태후와 동치제가 일찍 사망하자 조카인 광서제를 양자로 삼아 황위에 올리고 권력을 연장했다. 1898년 광서제가 강유위 등과 함께 근대적 개혁을 시도한 변법자강운동을 일으키자, 무술정변을 감행하여 광서제를 유폐하고 개혁파를 처형하며 권력을 되찾았다. 이후 의화단 운동을 지원하여 서구 열강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패배하여 시안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말년에는 뒤늦게 광서신정을 통해 근대적 개혁을 시도했으나 이미 국운은 기울어진 뒤였다. 1908년 광서제가 급사한 바로 다음 날, 세 살배기 푸이를 차기 황제로 지명한 후 자금성 의란전에서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