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베니토 파블로 후아레스 가르시아(Benito Pablo Juárez García, 1806년 3월 21일 ~ 1872년 7월 18일)
멕시코의 정치인이자 법률가이며, 제26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멕시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포텍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19세기 중반 격동의 멕시코를 이끌며 근대적 개혁을 단행한 인물이다. 보수파 세력 및 가톨릭 교회의 특권을 축소하는 '레포르마(La Reforma)' 개혁을 주도했으며, 프랑스의 무력 간섭과 막시밀리아노 1세 황제 옹립 사태에 맞서 공화정을 수호해 내어 오늘날 멕시코의 국부이자 '공화국의 구제자'로 존경받고 있다.
멕시코의 정치인이자 법률가이며, 제26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멕시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포텍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19세기 중반 격동의 멕시코를 이끌며 근대적 개혁을 단행한 인물이다. 보수파 세력 및 가톨릭 교회의 특권을 축소하는 '레포르마(La Reforma)' 개혁을 주도했으며, 프랑스의 무력 간섭과 막시밀리아노 1세 황제 옹립 사태에 맞서 공화정을 수호해 내어 오늘날 멕시코의 국부이자 '공화국의 구제자'로 존경받고 있다.
2. 생애[편집]
1806년 멕시코 오아하카주의 산파블로겔라타오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가난한 사포텍 인디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으며, 12살 때까지 스페인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할 정도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오아하카 시로 넘어가 독학 및 주변의 도움으로 스페인어를 익혔고, 과학학술원에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해 법률가가 되었다. 변호사로서 소외된 원주민과 농민들을 변호하며 사회 현실에 눈을 떴고, 이를 발판 삼아 정치계에 입문하여 오아하카주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1855년 독재자 산타 안나를 타도한 자유당 혁명 정부의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후, 정교 분리와 교회 재산 몰수, 가톨릭 법정 해산 등을 골자로 하는 과감한 개혁법을 통과시켰다. 1858년 임시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나, 이에 반발한 대지주와 보수파 세력의 저항으로 3년간의 치열한 내전을 겪어야 했다. 내전 승리 후 1861년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재정 파탄으로 외채 지불 유예를 선언하자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침공하는 대위기를 맞이했다. 프랑스가 옹립한 막시밀리아노 1세의 제정 체제에 맞서 미국 국경 지대까지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공화파 정부를 유지하며 항전을 지속했다. 결국 1867년 프랑스군을 축출하고 막시밀리아노 1세를 생포해 처형함으로써 공화정을 전면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대통령직에 연임되어 국가 재건과 근대 교육 시스템 확립에 매진하던 중, 1872년 임기 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