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 1808년 4월 20일 ~ 1873년 1월 9일)
프랑스 제2공화국의 유일한 대통령이자 프랑스 제2제국의 유일한 황제이다. 본명은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éon Bonaparte)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다.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성인 남성 보통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후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로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파리 개조 사업을 단행하여 현대 파리의 기틀을 마련했고, 철도망 확충과 산업 혁명을 주도해 프랑스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다. 그러나 대외 정책에서 무리한 원정을 반복하다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겪으며 실각했다.
프랑스 제2공화국의 유일한 대통령이자 프랑스 제2제국의 유일한 황제이다. 본명은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éon Bonaparte)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다.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성인 남성 보통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후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로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파리 개조 사업을 단행하여 현대 파리의 기틀을 마련했고, 철도망 확충과 산업 혁명을 주도해 프랑스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다. 그러나 대외 정책에서 무리한 원정을 반복하다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겪으며 실각했다.
2. 생애[편집]
1808년 파리에서 나폴레옹 1세의 남동생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나파르트 왕조가 몰락한 후 해외를 떠돌며 망명 생활을 보냈고, 백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두 차례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투옥되기도 했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공화정이 수립되자 귀국하여 정계에 진출했고,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이 가진 대중적 향수에 힘입어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의회와의 갈등이 깊어지자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듬해 친위 쿠데타의 정당성을 묻는 국민투표를 거쳐 황제로 즉위하며 제2제국을 선포했다. 집권기 전반에는 크림 전쟁 승리 등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나, 후반기 멕시코 원정 실패 등으로 지지 기반이 흔들렸다. 결국 1870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 중 스당 전투에서 직접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맞이했다. 황위에서 폐위된 후 영국으로 망명하여 쓸쓸히 지내다 1873년 그곳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