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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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관우(關羽, ? ~ 220년 1월)

중국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이자 자는 운장이다. 유비, 장비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촉한 건국의 기틀을 다진 최고의 명장으로, 오늘날까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의리와 무용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받는다. 의리를 지키기 위해 조조의 파격적인 대우를 뿌리치고 유비에게 돌아간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세월이 흐르며 신격화되어 재물과 정의를 수호하는 '관성대제(關聖大帝)'라는 신으로 숭배받고 있으며, 공자의 '문묘'와 대비되는 '무묘'의 주인공으로 동아시아 문화권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2. 생애[편집]

하동군 해현 출신으로, 고향을 떠나 탁군에서 유비, 장비와 만나 의형제를 맺고 군사를 일으켰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해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유비의 가솔을 지키기 위해 잠시 조조 밑에 머물렀으며, 이때 원소의 명장 안량의 목을 베어 조조에게 보답한 뒤 유비의 생사를 알게 되자마자 미련 없이 떠났다. 적벽대전 이후 촉한의 핵심 요충지인 형주를 마주하여 수비하는 중책을 맡았다. 219년 번성 처형 작전을 감행하여 위나라의 조인을 압박하고 우금의 7군을 수몰시키는 등 중원을 뒤흔드는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관우의 급성장을 경계한 손권의 오나라 군대가 배후를 기습하고, 미방 등 부하들의 배신이 겹치면서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다. 결국 맥성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오나라 장수 반장과 마충의 군대에 사로잡혀 아들 관평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의 죽음은 훗날 이릉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촉한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