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0년대 초반 ~ 1400년 10월 25일)
중세 잉글랜드의 시인이자 작가. 당대 지배층이 프랑스어나 라틴어를 문학 언어로 사용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중세 영어로 불후의 명작을 남김으로써 현대 영어의 문학적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대표작인 '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말기 사회상을 생생한 풍자와 유머로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문학가로서뿐만 아니라 외교관, 법원 관료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격동의 14세기 영국 사회를 직접 관통했던 인물이다.
중세 잉글랜드의 시인이자 작가. 당대 지배층이 프랑스어나 라틴어를 문학 언어로 사용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중세 영어로 불후의 명작을 남김으로써 현대 영어의 문학적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대표작인 '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말기 사회상을 생생한 풍자와 유머로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문학가로서뿐만 아니라 외교관, 법원 관료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격동의 14세기 영국 사회를 직접 관통했던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343년경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왕실의 시종으로 들어가면서 귀족 사회와 인연을 맺었고, 백년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을 때는 에드워드 3세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어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국왕의 신임을 받는 외교관이자 세관장, 치안판사 등 요직을 거치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자주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공직에서 물러난 말년에는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집대성한 대작 '캔터베리 이야기' 집필에 몰두했다. 순례자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귀족부터 평민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묘사했으나, 안타깝게도 작품을 완정하지 못한 채 1400년에 사망했다. 사후 그의 예술적 성취를 기려 문인으로서는 최초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코너'에 안장되는 영예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