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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1922년 3월 1일 ~ 1995년 11월 4일)
이스라엘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제5대 및 제11대 총리를 역임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최초의 본토 출신 총리이기도 하다. 군인 시절에는 제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참모총장으로서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았으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는 숙적이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며 중동 평화의 물꼬를 튼 '평화의 사도'로 기억된다. 이 공로로 1994년 야세르 아라파트, 시몬 페레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평화의 결실을 보기도 전인 1995년, 협정에 반대하는 자국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하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스라엘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제5대 및 제11대 총리를 역임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최초의 본토 출신 총리이기도 하다. 군인 시절에는 제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참모총장으로서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았으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는 숙적이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며 중동 평화의 물꼬를 튼 '평화의 사도'로 기억된다. 이 공로로 1994년 야세르 아라파트, 시몬 페레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평화의 결실을 보기도 전인 1995년, 협정에 반대하는 자국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하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2. 생애[편집]
1922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이스라엘의 정예 부대인 팔마흐(Palmach)에 입대하며 군 경력을 시작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부터 참전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1964년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군사 지도자로 부상했다. 퇴역 후 정계에 투입되어 주미대사와 노동당 당수를 거쳐 1974년 첫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후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강경한 안보관을 유지했으나, 끊이지 않는 유혈 사태를 지켜보며 "힘만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신념 아래 평화 협상으로 선회했다. 1992년 다시 총리에 당선된 그는 1993년 백악관에서 아라파트 의장과 오슬로 협정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평화 지지 집회에 참석했다가 유대인 극우주의자 이갈 아미르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