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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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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윤치호(尹致昊, 1865년 1월 23일 ~ 1945년 12월 9일)

구한말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 및 대한제국의 관료, 정치인이자 지식인, 종교인이다. 성리학적 질서의 한계를 깨닫고 개화파의 주역으로서 독립협회를 이끌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근대화와 주권 수호 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한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파이자 개신교 신자로서 서구적 근대성을 깊이 동경했던 그는, 역설적으로 조선의 자립 능력을 불신하게 되면서 개화주의가 친일주의로 변절했다.

2. 생애[편집]

1865년 충청도 아산에서 군인 출신 관료 윤웅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하며 근대 문물을 접했고, 이후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와 에모리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신학파 인문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아관파천 이후의 혼란기 속에서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계몽 운동을 전개했으나, 대한제국 정부의 탄압으로 협회가 해산된 뒤에는 지방관을 전전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105인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이후 일제의 압박과 패배주의적 현실 인식 속에서 본격적인 변절의 길을 걸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중기 이후 중추원 고문, 일본 귀족원 의원 등을 지내며 적극적으로 일제의 식민 통치와 전쟁 동원에 협력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 그가 188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영문과 국문으로 남긴 '윤치호 일기'는 당대 구한말과 식민지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를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한 직후 친일파로 몰려 거센 비난을 받던 중, 그해 12월 고향인 아산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