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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트(Muhammad Anwar el-Sadat, 1918년 12월 25일 ~ 1981년 10월 6일)
이집트의 군인이자 제3대 대통령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의 사망 이후 정권을 승계하여 이집트를 이끌었다. 제4차 중동전쟁을 주도하여 이집트 군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한편, 이후 외교 정책의 변화를 선택해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 공로로 1978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친서방 정책과 이스라엘과의 화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아랍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샀으며, 결국 1981년 군사 퍼레이드 도중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이집트의 군인이자 제3대 대통령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의 사망 이후 정권을 승계하여 이집트를 이끌었다. 제4차 중동전쟁을 주도하여 이집트 군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한편, 이후 외교 정책의 변화를 선택해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 공로로 1978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친서방 정책과 이스라엘과의 화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아랍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샀으며, 결국 1981년 군사 퍼레이드 도중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2. 생애[편집]
1918년 이집트 나일 델타 지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이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나세르 등과 함께 '자유장교단'을 결성하여 영국 세력과 친영 왕정을 타도하기 위한 혁명 운동에 투신했다. 1952년 이집트 혁명을 성공시킨 후 정권의 핵심 요직을 거쳤으며, 1969년 부통령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나세르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초기에는 나세르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물로 평가받았으나,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수에즈 운하를 도하하는 기습 작전을 성공시키며 '도하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전쟁 이후 그는 실리적인 국익을 위해 소련과의 관계를 끊고 미국에 접근했으며, 1977년에는 아랍 지도자 최초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방문해 연설하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정책 변화는 국내 경제난 및 종교적 갈등과 맞물려 내부적인 위기를 초래했고, 1981년 10월 6일 전쟁 승리 기념식 현장에서 이슬람 지하드 조직원들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