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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본래 '창고'라는 뜻의 인디언 거주지였으나, 1536년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데 사아베드라에 의해 발견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산티아고의 외항으로서 소규모 항구에 불과했으나, 19세기 칠레가 독립한 이후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1848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당시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중간 보급기지로 기능하며 남반구 최대의 상업 항구로 급성장했다. 이때 유럽의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도시 곳곳에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과 칠레 최초의 도서관, 신문사 등이 들어서는 등 근대 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그러나 1906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크게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으며, 1914년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항구의 전략적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경제적 쇠퇴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들며 문화적 재생을 이루어냈고, 현재는 칠레를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 관광의 중심지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1848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당시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중간 보급기지로 기능하며 남반구 최대의 상업 항구로 급성장했다. 이때 유럽의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도시 곳곳에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과 칠레 최초의 도서관, 신문사 등이 들어서는 등 근대 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그러나 1906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크게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으며, 1914년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항구의 전략적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경제적 쇠퇴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들며 문화적 재생을 이루어냈고, 현재는 칠레를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 관광의 중심지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