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리타 헤이워스(Rita Hayworth, 1918년 10월 17일 ~ 1987년 5월 14일)
미국의 배우이자 무용가. 탁월한 춤 실력과 매혹적인 외모로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영화 《길다》에서의 매혹적인 연기를 통해 당대 '핀업 걸'이자 팜 파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배우이자 무용가. 탁월한 춤 실력과 매혹적인 외모로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영화 《길다》에서의 매혹적인 연기를 통해 당대 '핀업 걸'이자 팜 파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2. 생애[편집]
1918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스페인 출신의 유명 무용가인 아버지와 무대 무용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마르가리타 카르멘 칸시노'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혹독한 무용 훈련을 받으며 가족 무용단의 일원으로 무대에 섰다. 1930년대 초 할리우드 관계자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이후 컬럼비아 픽처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라틴계 인상을 지우기 위해 헤어라인을 교정하고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한 뒤 '리타 헤이워스'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1년 영화 《딸기 블론드》와 《혈과 사》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으며, 프레드 아스테어, 진 켈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뮤지컬 영화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춤 실력을 입증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녀의 사진은 미군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핀업 걸 사진으로 꼽혔다. 1946년 작 필름 누아르 《길다》에서 보여준 "Put the Blame on Mame" 노래와 장갑을 벗는 관능적인 퍼포먼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화려한 커리어와 달리 개인사는 평탄치 않았다. 천재 감독 오손 웰스, 알리 칸 왕자 등을 포함해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사생활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1970년대부터 점차 연기 활동이 줄어들었고, 말년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알츠하이머의 위험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1987년 맨해튼의 자택에서 향년 68세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