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필터 기능을 활성화하였습니다. 이용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미티아누스

수정됨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Caesar Domitianus Augustus, 51년 10월 24일 ~ 96년 9월 18일)

로마 제국 플라비우스 왕조의 제3대이자 마지막 황제이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차남이자 티투스 황제의 동생으로, 기원후 81년 형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황위에 올랐다. 원로원을 철저히 배제하고 관료제를 강화한 전제 군주적 통치를 펼쳤으며, 국경 방어선을 정비하고 제국의 재정을 건전하게 재건하는 등 뛰어난 행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치세 후반기 공포 정치를 펼치다 결국 암살당했으며, 사후 원로원에 의해 기록 말살형(기록말살형) 처해지는 불운을 겪었다.

2. 생애[편집]

51년 로마에서 베스파시아누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 티투스가 유대 전쟁과 내전으로 로마를 비웠던 청년 시절, 로마에 남아 플라비우스 가문의 입지를 지켰다. 69년 아버지가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도 오랜 기간 형의 그늘에 가려져 정치적·군사적 실권을 거의 얻지 못했다. 그러나 81년 형 티투스가 재위 2년 만에 요절하자, 군대와 친위대의 지지를 받으며 30세의 나이로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황제에 오른 도미티아누스는 효율적이고 엄격한 통치자로 변모했다. 감찰관 직위를 종신직으로 겸임하며 원로원의 권위를 누르고, 유능한 기사 계급을 등용해 행정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라인강과 도나우강 유역의 국경선(리메스)을 강화하고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는 등 국가 내실을 다지는 데 성공했다. 문화적으로도 로마 대화재로 소실된 건축물들을 대대적으로 재건하고 경기 대회를 개최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과 원로원 억압 정책은 끊임없는 모반 음모를 낳았다. 89년 안토니우스 사투르니누스의 반란을 기점으로 도미티아누스는 극심한 피해망상에 시각을 사로잡혀 무자비한 숙청을 감행하는 공포 정치를 시작했다. 결국 96년, 그의 가혹함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황후 도미티아 로인갈라와 내시, 친위대장 등이 모의한 음모에 의해 침실에서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으로 플라비우스 왕조는 막을 내렸고 원로원은 그를 폭군으로 규정했으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인 오현제 시대의 기틀을 닦은 유능한 관료주의 황제로 재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