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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전개[편집]
1830년 7월 혁명으로 들어선 루이 필리프 정부는 소수의 대지주와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대변했다. 산업 혁명의 진전으로 노동자와 중소 부르주아의 세력이 커졌음에도, 정부는 납세액 기준의 극단적인 제한 선거제를 고수하며 선거권 확대 요구를 묵살했다. 이에 야당과 개혁파 세력은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연회라는 명목으로 대중 집회를 열어 혁명 여론을 확산시켰다. 1848년 2월 22일, 정부가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던 대규모 개혁 연회를 강제로 금지하면서 폭발했다. 분노한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파리 시내로 쏟아져 나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국민방위군을 동원해 진압하려 했으나, 시민들에게 동조한 방위군마저 진압을 거부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2월 23일, 군대의 발포로 시민 수십 명이 사망하자 시위는 무장 폭동으로 발전했다. 결국 사태를 통제할 수 없게 된 국왕 루이 필리프 1세는 2월 24일 퇴위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같은 날 저녁, 온건 공화파와 사회주의파가 결합한 임시 정부가 구성되면서 7월 왕정은 붕괴했다. 임시 정부는 곧바로 공화정을 선포하고 성인 남성의 보통선거권 도입, 노동권 보장 등을 발표하며 프랑스 역사상 두 번째 공화국인 '제2공화국'의 문을 열었다.